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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김성한 지음 / 새움 / 2016년 11월
평점 :
김성한, 《달콤한 인생》 : 다 속여도 네 자신은 못 속여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특이점
‘특이점’은 그 이전과 이후 완전히 달라지게 하는 지점이다. 예를 들면, 특이점을 넘어간 별은 블랙홀이 되고, 특이점을 넘어선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가 된다. 다시 말해, 특이점을 넘어간 존재는 그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도 이전과 이후에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아이와 어른처럼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것이 있는 반면,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도 있다. 그것 중에 하나가 바로 ‘범죄’다. ‘범죄자’의 삶은 죄를 짓는 것을 기점으로 그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달콤할 줄 알았던 인생, 뒤통수를 맞다
범죄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 사람의 똑똑함과 성실함과 상관없이 누구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보다도 범죄 현장을 많이 봐온 검사와 변호사 출신들이 결국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 철창 속에 갇히거나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를 더러 들었을 것이다.
소설 《달콤한 인생》의 주인공인 박상우는 변호사로 아름다운 아내와 잘 나가는 로펌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남자다. 행복이 끊이지 않을 줄 알았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우연히 붙은 시비로 인해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이다.
어떻게 죄 값을 치룰까 고민하던 찰나, 그는 지금의 행복을 잃고 싶지 않아진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관련된 증거를 숨기고 근처를 지나던 다운증후군 청년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 그러고 나선 무슨 배짱인지 그 청년의 변호를 맡는다. 자신의 완전범죄를 꿈꾸면서 말이다.
하지만 박상우 변호사는 계속적으로 진실이 드러나려는 위기에 봉착한다. 이를 은폐하기 위한 그의 선택은 바로 더 큰 범죄다. 그의 손과 정신은 점점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의 죄악으로 범벅이 된다. 그러면서 사건의 방향은 그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신마저 속일지라도 네 자신은 속일 수 없다
책을 읽으며 그리스 비극 중 하나인 오이디푸스가 떠올랐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신을 원망하지 않고 다만 이 비극적 운명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리라 다짐한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것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운명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오히려 예언을 성취하듯, 박상우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오히려 그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 이는 결코 우연히 아니며 그가 여태까지 행해온 탐욕의 씨앗들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날까지만 해도 신을 찾던 그는, 오히려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신을 찾지 않는다. 신조차 저버린 그에게는 이제 고통과 절망의 영역만이 존재한다. 그는 그가 고통스럽다는 사실조차 부모, 아내, 친구 중 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며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유대인들은 질병과 고통마저도 죄의 결과라고 믿었다. 소설의 박상우가 겪는 모든 고통과 고민들은 그 자체로 죄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보여준다. 세상에 모든 이들, 심지어 신까지 속인다고 할지라도 단 한 사람,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삶의 중요성
한 편의 훌륭한 범죄 스릴러 소설이었다. 읽는 동안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특히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일단 시작한 이상 계속적으로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박상우의 심리 묘사가 뛰어난 책이다.
인간은 왜 만족을 모르고 권태라는 함정 속에 빠지는 것일까? ‘범죄자’ 박상우의 삶을 통해 지금 내가 권태롭게 여기는 것들이 실은 정말 귀중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삶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p.8 ‘하나님, 이 모든 일들이 당신의 계획임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 제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테지요. 허나 제게 중요한 것은 지금 이곳에 당신과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p.171 "나는 범인이 지금 이 뉴스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잘 들어두세요.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신이 지금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든, 그 계획은 실패하고 말 겁니다."
p.306 자신은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는 법을 잊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만했다. 날카로웠던 죄책감은 빠르게 무뎌져 갔고 거짓말과 위선들로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행복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지난날 꿈꾸고 바라던 것을 손에 쥐고 난 다음에도 그때의 간절함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p.334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매순간 내 곁을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많았던 기회들을 단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후회라는 감정은 미안해서라도 찾아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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