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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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같은 지옥, 일상 없는 지옥

1. 우리가 평소에 누리고 있는 일상이라는 것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 출퇴근을 위해 버스를 타고, 식사를 하고, 친구들과 카톡을 하는 게 일상이라고 한다면, 그 일상은 팔이 부러지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심지어 전날에 잠을 설쳤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붕괴하곤 한다. 하지만 그 일상이 주는 편안함과 익숙함이 너무 달콤하기에, 우리는 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의 비극들을 외면하고, 현재 누리는 얄팍한 이권들을 부여잡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 일상이라는 것이 탈출하고 싶은 지옥이다. 여성, 외국인, 입시생, 취준생이 사회에서 어느새 약자가 되어 그 존재만으로 절망의 구렁텅이 속을 헤매는 자들은 우리 시야의 밖에서 그들의 울분을 삭히고 있다는 건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들을 착취하는 것 또한 이 시대의 약자이며 결국 약자들이 더 약한 자를 잡아먹는 정글의 모습이다.

2. 손솔지 작가의 단편 소설집 는 그런 사각지대의 약자들, 그래서 일상적인 지옥을 체험하는 이들에 대한 르포라 말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차라리 버림받았으면 하는 이들이다. 시작부터 불행한 이들이었기에 그들이 현재 처한 상황도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그런 인간 군상들의 처절한 일상을 활자 속에 꾹꾹 담아놓았다. 읽다보면 내 삶과 그 주변에서도 발견되는 구조적 학대와 트라우마의 조각들을 마주하게 되어 불편할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8개의 단편들은 한국사회의 만연한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착취의 굴레, 속칭 왕따의 메커니즘을 각기 다른 시점에서 조망한다.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한 떨기 희망의 꽃을 노래하다가도, 장마철 자취방 벽면을 점령한 곰팡이 마냥 다시금 피어오르며 자신의 존재감을 떨치는 이 세계의 비극들을 조명한다. 단편집이라고 생각해서 가볍게 집었다가는 자신의 멘탈이 부숴져 가볍게 흩날리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3.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혐오와 증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동시에 사람에게서 구원을 받는다. 필연과 같은 우연이 반복되며 운명적인 만남으로 그들을 이끌어주는 것이다. 그 끝에는 가족 혹은 가족과 진배없는 이들과의 재회로 이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며 자신의 상처를 보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완벽한 치유는 아니다. 우리는 종종 떠오르는 기억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 기억들은 고통이면서 동시에 증거이기도 하다. 앞에 말했듯,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취약한지에 대해 종종 우리는 잊곤 한다. 일상을 잃는 데는 내 존재의 아주 작은 일부가 상처 받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일상이 지옥 같았던 이들이 그들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죽음이 필요하다. 그것이 상징적 죽음이든 물리적 죽음이든, 그 죽음마저 극복한 이후에야 그들은 일상이 회복된다. 그렇기에 그들을 옥죄는 죽음의 공포와 학대의 기억마저 일상의 회복과 앞으로 보장될 평범한 일상에 대한 증거인 것이다.

4. 소설집 에 있는 8개의 단편 중 는 다른 단편들에 비해 이질적이다. 단편소설이라기보다는 작가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에필로그라고 봐도 될 정도다. 소설을 빙자한 에세이에서, 주인공은 어떤 봄, 제주도를 향해 항해하던 어떤 선박에서 일어난 비극과 집권 세력의 무능,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합당한 분노에 대해 침묵과 망각을 강요하는 세력에 대해 말한다. 또한, 그 세력들을 결국 패퇴시켰던 소시민들 간의 촛불의 연대에 대해서 말한다.

왜 작가는 이 8개의 단편 중 마지막에 이것을 배치했을까? 그전까지 단편들에서 작가는 질문을 던져왔다. 당신들이 보는 이 약자들의, 고통 받는 자들의 삶에 대해서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들이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아마도 작가는 일상이 지옥인자들, 그리고 일상을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연대만이 그 지옥 속에서 그들을 이끌어내고 동시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임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p.238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깊이 가라앉고 있는지를. 불 꺼진 암흑 같은 마음속에서 어떻게 일어서야 하는지도 우리는 배운 적이 없었다. 더 이상 뉴스에서 기대하는 소식을 듣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람들은 불처럼 번지는 마음속 분노와 설움을 잊기 위해서 불에 탄 부분을 싹둑 잘라냈다. 평소처럼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연명하는 데에 쓸데가 없고 타기 쉬운 말랑한 부분부터 잘라내야 했다. 그중 하나가 희망이었다.

p.240 나는 절대로 남이 되어보지 않고는 남의 심정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의 뒷모습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어쩌면 세상은 이대로 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검푸른 바닷물 속에 잠들어 있는 진실은 그대로 영영 잊힌 유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p.45 "계집은 요물이야." … "우리를 유혹하기 위한 가느다란 목소리나 긴 머리칼을 봐라. 두부처럼 부드럽고 조기 살점처럼 뽀얀 젖가슴은 어떻고. 그들이 허연 속살을 벌려 보이며 군침을 유도하는 이유는 단 하나야. 저희 몸뚱이에 우리가 홀려버리면 그 뒤엔 우릴 제 맘대로 부리기 위해서지. 눈을 현혹하는 살덩어리와 웃음을 빌미로 우리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려는 거야. 흙탕물 한번 안 디디고 어깨 위에 업혀서 알맹이만 날름 핥아 먹겠다는 심산이지. 하지만, 얘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가여운 족속이냐. 그렇기 때문에 속으면 안 되는 거다."

p.79-80 어쩌면 십일 등이나 십 등이 학교에서 죽는 것은 당연할 일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둥지나 다름없다. 캄캄한 어둠 속을 걸어서 집에 돌아가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등교하는 수험생들은, 집 안의 가구 배치가 바뀌어도 단번에 눈치채지 못할 만큼 집보다 학교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는 것에 익숙해져, 집 안에도 폭신한 침대를 놔둔 채 책상에서 꼬꾸라져 잠드는 아이들이었다.

p.106-107 "나는 사람 아니야."
한밤중에 슬그머니 마당으로 빠져나와 서성이다가 며느리가 중얼거렸다. 그러곤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의 언어로 울었다. 모든 울음은 가엽다. 며느리는 사람이 맞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 아니야."
개도 뱀도 닭도 그런 일로 울지 않는다. 오직 사람만이 그렇게 운다.

p.215-216 "나는 포기했어요. 사람은 고장난 물건 같아요. 좀처럼 맘대로 되질 않죠."
… "마음대로 할 필요가 없죠. 남의 의지는 관할구역이 아니에요. 울타리 밖의 일이니까요."

p.5 한글에는 한 글자마다 주문처럼 큰 힘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단하고 작은 몸 안에 아주 많은 의미를 끌어안고 있어서,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 속에 숨은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되곤 합니다. 소설은 그 글자들을 드문드문 징검다리처럼 이어 붙여, 한 발자국씩 돌을 밟고 따라올 사람들을 내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속으로 인도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p.250-251 얼굴도 모른 채로 살아온 수많은 인파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두려워했던 것의 실체를 깨달았다.
나는 가만히 있는 내가 무서웠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누군가 가만히 옹송그린 채로 눈을 감을 때, 언제나 그래왔듯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를 안전한 세계로 데려가기주기를 기다리고만 있던 관람자인 내가 두려웠던 것이다.

p.249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나아갔다.끝을 알 수 없이 길게 이어지는 초의 행렬은,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가차 없이 잘라내고 살아가려고 해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모두의 마음에 빛을 밝히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순간의 우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의 대답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p.252 나는 초가 된다. 말없이 미소를 건네는 앞사람의 촛불에서 불씨를 빌려와 더 뜨거워진 불덩이를 옆으로 옮긴다. 심지가 뜨거운 초의 마음으로, 찬 바닥 한곳을 밝히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꼿꼿이 선다. 불길은 점점 더 먼 곳까지 널리 퍼져 우리는 다시 물결을 이룬다. 사방이 밝아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나는 그 누군가였다. 스위치를 눌러서 끌 수 없는, 방대하고 광활한 불길 앞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다. 낯설지만 익숙한, 거울에 비친 마음 같은 표정들.
빛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그 은밀하고 그늘진 구석까지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비춰줄 뿐이다. 한순간 바람이 깊이 불어와 심지에 달라붙어 타오르던 불씨를 앗아간다. 그러나 이내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치듯이 푸른 불꽃이 심지를 붙들고 일어선다. 또렷하게 진실을 바라보는 눈동자처럼, 절대로 꺼지지 않을 등대의 불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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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들여다보는 사람 - 한국화 그리는 전수민의 베니스 일기
전수민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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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들여다보는 사람 : 스스로 타협하지 말고 뼛속까지 예술가가 되세요

1.

참으로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이방인, 페스트의 소설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까뮈. 그는 그의 저서인 시지프스 신화를 이렇게 시작한다.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와 달리, 인간은 자유로운 다리를 가진 대신, 그 자유의 대가로 계속 흔들리며 동시에 종종 자신을 뒤덮는 죽음의 그림자에 공포를 느끼며 무너지곤 하는 존재다.

P.14 사실 매년 아무도 모르게 유서를 써왔어요. 나름대로는 '언제 죽어도 괜찮을 만한 준비'를 늘 해왔달까요. 진심으로 죽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쓰다 보면 이상하게도 결국에는 '만약에 내가 산다면 얼마나 잘 살지' 다짐하는 글이 되어서, 매년 유서 내용이 더 나아지곤 했죠. 매번 죽을힘을 다해 이룬 목록은 빼고 다시 썼으니까요.

공교롭게도 전수민 화가의 오래 들여다 보는 사람도 자신의 유서 쓰는 버릇을 언급하며 자신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넋두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도 까뮈를 읽은 것일까? 그토록 아름답기로 유명한 베니스로 행하는 비행기를 타면서도, 이로 인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고 그녀의 까뮈가 말한 부조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향하게 됩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우리가 마음속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삶의 길을 따라가도록 용기를 주는 거죠.

동시에 <공항에서 일주일은>에서 알랭 드 보통이 만난 히드로 공항의 목사의 말이 떠올랐다. 과연 그녀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았을까? 그리고 거기서 퍼올린 용기로 자신의 예술 활동을 지속하는 것일까? 몇 쪽을 읽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차올랐다.

2.

p.45 베니스는 마치 꿈결 같았어요.

모든 것이 물빛이고 햇빛이고, 온통 빛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베니스에서 그녀는 예술가들이 사는 공간에 입주를 하고, 베니스를 유람하며 예술 활동을 지속해나간다. 그녀는 여행이 주는 낯섦에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이 주는 쾌감과 신선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곧이어 이어지는 베니스에 대한 찬사. 하지만 동시에 발이 닿지 않는 물을 무서워하는 그녀에게 베니스는 종종 날선 긴장을 선사하곤 한다.

여행은 흥미롭게도 지리적이라기보다 심리적인 활동으로 읽을 수 있다 - 외적인 여정은 내적으로 욕망하는 여정의 은유다. - 여행을 예약하는 자신이 이런 활동을 즐기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여행은 심리적인 활동이라 지적한다. 여행은 일종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곧 일탈이다. 자신이 현재 일상에서 느끼는 구태와 권태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시위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 가더라도 이런 탈출의 서사로는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 먹는 것과 자는 곳이 달라질 뿐, 결국 삶의 양식이 똑같이 때문이다.

p.96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된 이후로 비슷한 사람들이 주변에 늘어나면서 마음 놓고 맘대로 하는 나를 발견했어요. 직장생활을 할 때는 누려 보지 못한 호사랄까요.

그때는 내가 뭔가를 솔직히 얘기하면,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상하려면 몰래 이상해야 했고,

난 직장생활에 철저히 적응하고 편입되어야 했지요.

그러나 저자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애초부터 삶이 여행이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화가가 되는 과정에서 겪어왔던 수많은 죽음의 그림자들을 극복해왔다. 그런 그녀이기 때문에 베니스는 단순히 새로운 공간에 스스로를 던지는 일탈적 행위가 아니다. 새롭게 관계를 맺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치유의 공간이 된 것이다.

p.23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스튜디오의 내 방.

낯선 곳에서, 우리는

누구나 '최초의 인간'이 된다.

최초의 인간. 그것은 아마 자신을 둘러쌌던 많은 맥락들과 구속들에서 벗어난 나신(裸身)의 인간일 것이다. 모든 것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자신의 본성대로 자신의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인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명소맛집에 취해 자신의 색깔을 확장시킬 기회를 포기하고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것과 같은 기념품의 굴레 속에 스스로의 여행을 구속한다.

3.

p.146-147 '예술가에게 예술은 밥보다 큰 의미인가' 하는 문제로 토론한 적이 있어요.

글쎄요, 먹고사는 문제보다 크고 작고를 떠나 먹고사는 문제만큼 절박한 것 같긴 해요. 늘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전시를 열어야 내가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먹고사는 방법은 많잖아? 그저 먹고사는 게 중요해서 예술을 하는 것 같진 않아. 우린 뭔가 어쩔 수 없이 타고났고, 그것을 해소하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인 게 아닐까?"

이 에세이는 여행기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깝다. 실제 여행에서 체험한 것들은 한 장의 사진과 몇 줄의 문구로 대신 되고, 대개는 작가 본인의 인생과 자신이 꿈꾸는 예술에 대한 진솔한 고백들로 가득 차 있다. 나에겐 이것이 비단 예술만이 아니라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바치는 따뜻한 위로로 들렸다.

p.173-174 "이것 봐요, 뼛속까지 예술가가 되세요. 먹고사는 게 그리 중요한 것이었다면 직장을 그만둘 이유가 없었지 않나요."

, 그래요. 먹고사는 것만으로는 갈증을 채울 수 없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그림을 시작한 거죠. 하지만 그 꿈을 너무 일찍 이루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리고 내가 이룬 꿈이 내가 기다리고 기대하던 꿈이 아니면 또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러면 이제는 우리처럼 꿈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을 도와주면 돼요. 이제 다른 사람의 꿈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자신을 다듬고 지켜나가요.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아껴야 다른 사람들도 건드리지 못하는 겁니다. 힘들었던 지난 과거는 이미 일어난 일이지 바뀌는 게 없어요. 하지만 미래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바뀌잖아요?"

"부디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스스로 타협하지 말고 뼛속까지 예술가가 되세요."

다시금 까뮈로 돌아오면, 그는 자살이 답이라 말하지 않는다. 까뮈는 절망도 그렇다고 덧없는 희망도 거부한다. 까뮈는 반항의 삶을 제안한다. 나의 실존을 위협하는 부조리에 대해서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마치 시지프스가 신의 저주를 받아 결국 다시 굴러 떨어질 돌을 굴러올리듯이 묵묵히 할 일을 임하는 삶의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나는 이 에세이에서 전수민 화가를 통해 까뮈가 말한 부조리에 반항하는 삶의 모습을 보았다. 일상과 구태,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나아가는 삶. 어떻게 보면, 극복의 대상인 한국사회의 일상이 아니라, 베니스라는 일탈의 장소이기 때문에 또렷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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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
김진명 지음, 박상철 그림 / 새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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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한국사 X 파일 : 철저한 자료조사에 광활한 상상력

1. 엘리트적 꼰대주의 VS 아마추어적 상상력

근대 전까지 모든 학문은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귀족들의 아마추어적 탐구심이나 실용성에 초점을 맞춰 연구되어 왔다. 학문이 박사 학위를 마친 엘리트들에 의한 전유물이 된 것은 학문의 분업화와 고도화가 이루어진 20세기부터 일어난 현상이다.

지식 엘리트 그룹의 탄생은 학문 발전에 높은 기여를 했지만, 대신 대학을 정점으로 한 엘리트적 구조는 점차 경직성을 띠게 되었다. 다만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서 엘리트적 꼰대주의가 득세하고 학위 하나 없는 아마추어들의 상상력은 근거 없는 헛소리로 일축된다.

2.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과 김진명의 역사 발굴

가장 아마추어를 무시하는 학문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역사학계일 것이다. 역사의 시작이 아마추어 저술가 헤로토도스공자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시작된 것을 생각해보면 얼핏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역사라는 게 정권이 바뀌자마자 조선왕조실록이 수정됐던 것을 보듯, 패권을 쥔 사람들에 의해 쉽게 수정 되어왔고, 구체적 증거와 연구 없이 조작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분야라서 검증 되지 않은 사람들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결국 여기도 기득권층은 있을 수밖에 없고 새로운 해석이란 게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역사가가 역사계의 파란을 일으킨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사례는 바로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이다. 물론, 그가 발견했던 것은 트로이가 아니었지만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신화가 아니라 실존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이후 고고학 붐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만 하다. 그렇다면 당시 역사학계의 반응은? 하인리히 슐리만의 업적을 분석하기보단 사기꾼이라고 몰아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마추어 역사학자로 대차게 까이는(?) 분이 있는데 바로 소설가 김진명이다.

3. 왜 우리나라엔 댄 브라운이 나오면 안 되나?

김진명은 그의 책 한국사 X파일에서 이태까지 그가 추적해온 역사의 진실에 대해서 적고 있다. 200쪽이 조금 넘는 만화책으로 미용실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릴 때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개인적으론 한국사 X파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사 전체를 다룰 것이라 기대했지만, 조선시대와 근현대사 위주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광개토대왕비에서 사라진 글자를 추적하는 부분이나, 명성황후의 시해 과정에서 있었던 천인공노할 일을 밝히는 부분이 충분히 흥미진진한 편이라 그가 썼던 소설의 뒷이야기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김진명 작가의 책을 읽으면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등으로 유명한 댄 브라운이 떠오른다. 댄 브라운은 심지어 소설에서 예수를 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극찬을 받았는데, 왜 김진명 작가에게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그가 하는 새로운 해석은 요새 거의 청춘물과 로맨스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트렌디 사극에 비해서는 온전한 편인데 말이다. 그의 저작이 헛소리만이 가득했다면 과연 독자들이 선택했을까? 그의 작품엔 철저한 자료조사에 덧붙여 광활한 상상력이 덧붙여졌음을 한국사 X파일은 보여주고 싶어 한다.

4.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근대까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던 랑케의 사관이 득세했다면, 현대에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말했던 E. H. 카의 사관이 자리를 잡았다. 소설가 김진명은 스스로가 소설가라는 지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기성 역사학자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역사의 이면을 제시한다. 그가 내리는 해석이 언제나 옳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이 나라의 역사가 어디까지나 한반도에만 머물러 있다거나, 미국과 중국 등 열강에 의해서 휘둘려왔다는 해석보단 가끔은 세계사의 중심이 아닐까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유쾌함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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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 - 5천만 경제 호구를 위한
선대인 지음, 오종철 기획 / 다산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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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 : 경제호구들을 위한 실전 경제 지침서

1. 카나리아와 카산드라

과거 광부들은 산소를 체크하기 위해 새장에 카나리아 한 마리를 넣어 갱으로 내려갔다. 산소의 농도가 떨어지면 그 어떤 생명체보다 산소에 민감한 카나리아는 세차게 울어대는 것을 활용한 것이다. 카나리아는 광부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참된 경고를 하는 존재다.

하지만 위기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항상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트로이의 공주이자 예언자였던 카산드라는, 오랜 전쟁 끝에 그리스인들이 퇴각하면서 남기고 간 목마가 함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로이인들은 믿지 않았고, 결국 그리스인들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2. ‘한국의 닥터 둠선대인 박사, 대한민국 경제를 말하다

카나리아와 카산드라. 앞으로의 위기를 예언하는 자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두 가지 모습이다. 위기를 알려주는 카나리아에게 카산드라처럼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종종 냉혹해지기도 한다. 앞으로 위기가 올 것이라고 하는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듣지 않고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자들을 주위에 두다가 패망한 지도자들의 예는 굳이 많다. 즉 우리 주위에 있는 비관론자와 위기론자들의 말을 일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의 근거와 실제 위기의 가능성에 대해서 따져보고 같이 토론해보아야 한다.

미국에 2008년 경제 위기를 예측해서 유명해진 비관론적인 경제학자 닥터 둠마크 파버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줄곧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빠질 것이라 주장하는 한국산 닥터 둠선대인 소장이 있다. 2016년에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폭락할 것이니 집 사지 말라는 주장을 했다가 강제 하차 당하기도 했던 선대인 소장의 모습에서 카산드라는 물론, 지도자에게 간언을 했다가 목이 날아간 충신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그는 강연과 방송에만 머무르지 않고 저서 활동도 활발하여 최근 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이란 책을 냈다.

3. ‘멘큐의 경제학선대인의 경제학

선대인 소장의 책 대한민국 경제학은 그 두께나 크기로 보아하야 경제학의 유명한 교과서 중 하나인 멘큐의 경제학을 연상시킨다. 다만 이론과 공식들로 채워져 있는 멘큐에 비해, 선대인 소장의 책은 실제 대한민국의 현실과 앞으로의 전망과 대안들에 대해 논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멘큐가 경제학도를 꿈꾸는 새내기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과서라면 선대인 소장은 수천만의 경제 호구들이 경제적 지식을 갖추게 하기 위한 실용서를 썼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어쨌든 둘 다 읽어본 사람의 입장에선 대중서인 이 책이 훨씬 쉽고 이해가 잘 간다.

이 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그리 낯설지 않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던가, ‘수출 대기업 중심 경제 체제’, ‘저출산 고령화’, 그리고 요새의 화두인 ‘4차 산업혁명’, ‘트럼프 정권2017년 경제의 핵심 키워드가 되고 미래를 결정할 요소들에 대해 비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특히 이렇게 저성장이 지속된다면 더 이상 젊은이들이 집을 사지 않을 것이고, 또한 앞으로 어르신들이 집을 팔게 되는 시기가 오면 부동산이 폭락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주장은 수출과 부동산 두 축으로 유지되는 한국 경제의 취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4.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비관론과 낙관론이란 두 날개

혹자들은 선대인 소장의 주장이 터무니없고 너무 부정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부동산 가격은 쉽게 낮아지지 않을 것이며, 세계의 경기가 호전된다면 오히려 계속 오를 가능성이 많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한다. 새는 한 쪽의 날개로만 날지 않는다. 낙관론으로만 운영되는 경제는 또다시 1997IMF2008년 서프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경제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비관론과 낙관론, 두 날개로 잘 조정하여 앞으로의 위기를 줄이면서 동시에 성장동력을 찾는 관점이 필요함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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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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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논쟁! 철학배틀

1.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특정 현상에 이름을 붙이면서 우리의 지적 체계 안으로 편입시킨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세상을 지각하는 범위는 저 파랗고 멀리 있는 것하늘이라는 것을 알면서부터 점차 넓어져 점차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영역, 예를 들면 상대성 이론이나 빈부의 격차같은 것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이름 붙이기관계를 맺는 것이기도 한데, 시인 김춘수가 에서 당신이 나를 꽃이라고 불러줬을 때 나는 당신에게 가서 꽃이 된다는 시구는 언어로 관계를 맺는 과정을 보여준다.

2.

그렇다면 이 언어를 만드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우리에게 대개 철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민감한 감각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느끼거나 누구보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이 세상의 법칙을 모두 탐구하고자 노력했다.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 철학자들은 그들의 사상에 두 가지를 담았다. 하나는 진단이다. 지금 현재 이 세상의 본질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왜 이렇게 문제들이 많은지에 대한 자신들만의 해석을 내놓는다. 다음은 대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 문제들을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들과 그것을 위한 실천 내역들이다. 예를 들면, 사르트르의 경우 인간이 불안하고 괴로운 이유에 대해 세상에 갑자기 던져진피투성(被投性)에서 찾았고, 인간 실존이 바로 서기 위해선 개인이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타인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

세상을 파악하는 방식인 언어’,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낸 철학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괴로운 일이다. 그럴 때는 가벼운 입문서로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대논쟁! 철학배틀은 앞서 말한 철학자들 중 핵심적인 인물들의 사상들을 명확하고 쉽게 잘 정리해놓았다. 그리고 게임 역전재판의 일러스트를 맡았던 이와모토 다쓰로가 철학자들의 일러스트를 맡아서 생동감 있고 선이 굵은 캐릭터들을 만나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시작을 알린 소크라테스를 필두로, 37인의 철학자들이 벌이는 지식의 아레나(Arena)는 한 쪽 편이 우세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게 전개된다. 흥미롭게도 가장 최대 출전 철학자는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인데, 역시 칸쇼니(칸트+쇼펜하우어+니체)’라고 불리는 18~19세기의 독일 사상사에 대한 깊은 일본인의 관심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이 책이 일본 책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도 많다. 예를 들면, 소년에게 처벌대신 교화를 우선시 하는 소년법이라던가, 일본 평화헌법 상에 전쟁할 권리가 없는 등의 요소, 그리고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일본인 철학자에 대해선 한국 독자들은 의아할 것이다.

애초에 이 책 자체가 철학자나 교수가 쓴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로 치면 설민석이나 최진기 같은 학원 강사가 철학사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쓴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어디까지 입문서라는 것. 하지만 이 정도만 읽어도 어디서 입 터는 데 지장은 없다.

4.

대논쟁! 철학 배틀은 내용도 쉽고 만화 덕분에 술술 읽히는 대신에, 뭔가 깊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를 추천한다. 전자는 다들 집에 한 권씩 꽂혀있을 거고, 철학카페에 경우, 철학을 어떤 식으로 삶의 서사를 읽는 데 적용할 것인가 통찰을 주는 책이다. 이걸로도 부족하다면 마이클 켈로그의 철학의 세 가지 질문이나 매트 로렌스의 철학 한 잔도 괜찮다. 지금 언급한 책들 모두 당신의 빈약한 철학적 체계를 한 걸음 진보하게 해줄 좋은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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