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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글에서 읽은 것이 있다.
세상의 모든 아들은 아버지들의 기대에 어긋난다고,
이 책 또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어른 중 한 인물인 퇴계이황 선생의 남아있는 편지 3,000통 중 권오봉 교수가 [퇴계서집성]이라는 다섯권의 방대한 책으로 엮은 것들 중 맏아들 '준'에게 40세부터 55세까지 보낸 164통의 서신을 간추려 현대인들이 읽기 쉽게 옮겨놓은 편지글들을 엮은것이다.
물런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끝없는 염려와 걱정이 가득실려 있지만
우리가 존경하는 철학의 대가인 이황선생께서 자신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그 존재만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겸허한 마음을 지니게 만든다.
자신이 23살에 나은 첫아들 '준'에게 40세부터 보낸 이 책의 편지들은 대부분 아들에게 공부에 게으리지 말것과 처가살이에 관한 생각, 선생의 친가와 처가에 관한 문제, 심지어 노비의 결혼문제나 싸움과 관련된 뒷처리와 농사철 씨뿌리는 일부터 기와 굽는일, 목화따는 일등의 농사일과 집안의 관,혼,상,제를 행할때의 대소사를 처리할때의 방식까지 큰 공무의 일부터 사사로운 개인의 문제를 일일이 아들에게 가르쳐주며 당부하는 개인적 편지글이 어떤날은 하루에 몇통을 기록하고 있다.
평소 자신의 건강이 좋지않아 국가의 계속된 부름에도 벼슬을 하지 않으려고 귀향을 계속 꿈꾸던 선생이었지만 당시에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려면 과거에 급제하여 기본적인 벼슬살이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자손들이 세속적인 일에 끌려 학업의 뜻을 그만두게 되면 마침내는 시골의 시대에 뒤떨어진 쓸모 없는 사람이 될 뿐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냐?(74)는 편지글과 손자인 '몽'에게 글자쓰는 붓등을 보내며 교육에 힘쓸것을 당부하시는 모습, 조카들에게 일일이 공부하여 입신할것을 염려하시는 선생의 모습에서 현재를 아무 생각없이 보내는 우리에게 끝없는 공부를 당부하시는 모습 같아 많은 반성을 했었다.
특히 자신의 계당서당 문짝이 도둑맞은 것을 도둑의 죄가 아니고 자신의 수치이며 아들의 부끄러움이니 "네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학문이 아니니 어찌 내가 시작한 것이 허물어지지 않기를 바랄수 있겠느냐?"(216)라는 일침은 아들의 과를 나무라는 아버지의 말로써 이 편지를 받았을때 아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생각하며 과연 이 편지에 대한 준의 답신은 어떠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처럼 공부와 학문에 남다른 신경을 쓰신 선생이지만 서모와 처가 가족들의 안위와 며느리와 손자의 건강에 일일이 신경쓰시는 일상의 편지들에서 어쩜 나라의 일을 보시는 분이 개인적 일에도 그렇게 세심할 수 있을까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런 아들에게 보낸 사사로운 공부의 가르침과 가정사에 관한 개인적 이야기가 주였지만 나라의 공무를 보면서 겪는 절차나 관아에서 부릴 수 있는 종의 수나 조선의 사가독서제, 국가의 시험과 군역에 의무, 조선중기 아들, 딸 구별없이 재산상속 등을 하였다는 시대적 사회상도 알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가장 놀라웠던것은 그많은 가족들에 일일이 윗대까지 시제를 지내며 주변의 친지와 친구들의 부모상까지를 염려하며 자식들의 올바른 도리와 자세를 가르치는 모습에서 부모님이 병약한 자식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 아닌가하며 문득문득 아들 '준'의 처지가 못내 안타깝게 느껴졌는데 아무래도 아들'준'이 꼼꼼한 아버지 '이황'을 어떻게 대했을까 그 일면이 더욱 궁금하기도 했다.
"혀를 차고서 준다면 길 가던 사람도 받지를 않고, 발로차서 준다면 거지도 깨끗이 여기지 않는다는 말을. 내가 잘 부탁하지 않은 것은 혀를 차거나 차서 주는 밥을 가지고 모친게 나아가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282)라는 부분에서 처가의 재산분배 때 처남들과의 불편했던 관계를 표현해 선생의 안타까운 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말은 현재를 사는 내가 모든면에서 참고로 삼아도 좋겠다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더것은 이황선생이 안타까워하거나 좋아할때 반복된 감탄사를 사용해 그때의 감정을 나타내는데 안타깝고 안타깝구나, 기쁘고 기쁘구나! 등의 표현이 고어로 어찌 되었을까 사뭇 궁금해 이 책의 원서인 [퇴계서집성]이 더욱 궁금해졌다.
또한 기쁘거나 근심의 일로 인해 잠을 이룰수 없다는 표현이나 자신이 가난하여 자식도 가난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아들과 가족의 건강을 항상 염려하는 편지글에서 철학적 딱딱한 사고의 선생만 생각하다 참으로 감성적이며 마음이 따뜻한 분이시구나 하며 몇번을 미소를 짓기도 했다.
아버지인 선생이 아들에게 보낸 서신들의 일률적 나열이기에 어떤 편지는 답신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기도 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큰아버지의 편지라고 생각하며 읽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편지글이다.
사실 세살에 아버지를 여읜 나로서는 아버지라는 대상을 먼 추상적개념으로만 알고 있고 어릴때는 많은 형제들과 어머니의 사랑으로 아버지의 필요성을 모르고 지내다 어른이 되어서야 내게도 인생의 바른길로 인도 해주며 도움을 주셨던 아버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일말의 아쉬움이 많은 요즘, 이 책으로 인해 내게 없는 아버지의 부정을 많이 배운 책이다. 또한 내게 없는 자식이지만 조카들에게 나 또한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겠다 새삼 다짐했던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