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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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작가를 알게된 것은 나의 감수성이 아주 예민했던 십대후반

우연히 '담배 피우는 여자'를 읽고 난 후 였다.

세상이 온통 꽉 막혔다고 생각했던 시기 주부인 여성이 자신의 답답했던 생활과 가슴을 우연히 담배를 피우면서 풀어버린다는 것, 소재는 일상적이었지만 그 문체가 신선해 굉장히 깊게 각인되었던 작품이었다.

 거의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 내가 담배 피웠던 그 주부의 연령이 되고 책속의 주인공은 그때의 내가 된것 같은 호환적 느낌으로 새로운 감성을 불러 일으키며 접하게 된 작품 [꽃피는 고래]

 

 고래잡이를 업으로 삼았던 처용포를 고향으로 둔 아랍인의 후예라는 아빠와 인도에서 신라로 시집온 허황옥의 후손이라는 엄마 사이에서 난 '주니은'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고 혼자남은 서울 집을 뒤로한채 아빠의 고향 처용포로 내려와 그곳에서 서서히 삶과 죽음, 소녀에서 어른의 감정을 알아가는  이야기다.

 처용포에 얽힌 신화와 전설, 부모님들과의 추억, 이웃 어른들의 과거 회상과 현실의 삶, 그리고 현실에서 변화하는 처용포의 모습속에서 아무런 준비없이 맞딱드린 부모님의 죽음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고 홀로 남겨진것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할 수 없다는 상실감에 혼란을 겪고 제대로 울어내지도 못하던 방황하는 소녀적 시기에서 가장 절친했던 친구 '나무'를 통해 자신이 갖지 못한 가족과 친구, 자신감과 우월감을 보며 세상에서 밀려난 듯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15살 시집가 일찍 남편을 여의고  첫정이 가장 무섭다며 칠십이 넘은 나이에 한글교실에서 한글을 배우는 '왕고래집 식당 할머니'와 16살에 처음 고래배를 타면서 모든 고래들의 대왕이 되고 포경이 금지된 후에도 고래에 대한 추억으로 살며 고래배를 떠나지 못하고 고래박물관이라는 갇힌 세상이 오는것을 두려워해 결국 고래배와 함께 바다로 사라져버린 '장포수 할아버지'를 통해 어른들의 이상한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며 알아가는 '주니은'의 성장소설은 부모읽은 소녀의 상실감과 혼자 세상을 살아가야한다는 두려움과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현재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조심스럽게 들려주고 있다.

 

 부모 잃은 아이의 방황이 주변의 도움으로 차츰 자립의 의지를 키운다는 성장소설로 한정시키기엔 너무나 거대한 주제, 즉 모든 인간이 과거에 태어나 현실을 살아내면서 미래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당위성을 신화와 전설을 빌어 삶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가 곧 과거의 전설이 된다는 것이며 아직 어린 '니은'이 처음엔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잃을 때마다 마음이 꼬이고 날카로워지는 것 같았다. 어른들이 저마다 이상해 보이는 이유도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 때문인듯 했다."(P144)라는 초기의 결론과  "내가 가장 예뻤을때 ... 이제 죽음 같은건 리코드 연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P223)라는 성숙된 인식은 자신도 곧 어른이 되고 모든것이 과거의 전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부모님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된다는 인식의 확장이 아닐까.

 잔잔하면서 조근조근 들려주는 맛깔스런 어른들의 이야기들이 내 구미에 와 닿았다.

 

 처음 '꽃피는 고래'라는 제목을 접했을때 많이 감성적일거라 생각했지만 "급소를 맞은 고래는 죽기 전에 마지막 숨을 내뿜는데, 그 숨에는 피가 뿜어져나온다.  핏빛 물뿜기가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온 바다  가득 퍼진다. 그걸 꽃핀다 한다."(P103)라는 말은 고래의 아픈 죽음을 두고 한 말이지만 이런 아름다운 표현을 할 수 있던 뱃사람들의 은유가 놀라웠고 우리의 죽음 또한 슬픔보다는 그런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몇번이나 생각했다.

책 자체가 감성적이기 보단 서정성이 높았던 것 같다.

 

 너무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은 없지만 아직도 내 뒷바라지를 해주시는 어머니를 어느땐가 보내드려야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가끔씩 엄습해오는 요즘 피붙이에 대한 죽음을 조금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가르쳐준 책.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삶에 너무 욕심내지 말고 너무 아웅다웅하지 말아야지 생각해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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