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나 피할 수 없는 죽음과 같은 삶의 사실과 대면하는 것이 바로 프로이드류 회화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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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모델과 흡사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가? 프로이드는 말한다. "유사함은 어떤 의미에서 핵심적인 문제라 할 수 없습니다. 어떤 그림이 꼭 닮은 초상화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그 그림의 가치와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렘브란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정신적인 위엄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비슷합니다. 그가 모델의 실제 모습에 아주 근접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3
프로이드 작품의 특징은 특정한 범주의 색채를 쓴다는 것이다. 연갈색, 회색, 흰색, 베이지색, 옅은 노란색, 크림색, 갈색, 검은색이 그것이다. 그는 한때 이 색들을 '생명의 색채'라 불렀는데 여기에는 색채 자체가 주목을 끌 만큼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92

루시안 프로이드, 존 디킨
프로이드의 작품이 전적으로 자연 시각, 즉 자기 고유의 방식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그의 그림에서 중요한 점이다. 그의 작품은 렌즈를 통해 본 것이 아니다. 또 루이 자끄 망데 다게르 시대 이래로 많은 구상회화가 그래왔듯이 그리고 오늘날에는 더욱더 그러하듯이 세계에 대한 카메라 렌즈의 시각에 어떤 식으로든 의존하지도 않는다. 비록 몇몇 사진가들, 예를 들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존 디킨의 작품에 감탄하긴 하지만 그는 사진이라는 매체는 화가인 자신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광선이 어떻게 떨어지는지에 대한 정보는 많이 주지만 그 밖에는 알려주는 것이 거의 없다고 그는 말한다. 97
"초상화에 대한 나의 생각은 사람들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초상화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나는 내 초상화가 사람들을 닮은 초상화가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초상화이기를 바랍니다. 나는 흉내쟁이처럼 그저 유사함을 얻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처럼 그들을 묘사하기를 원합니다. 내게 물감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내게 피부처럼 작용해 주기를 바랍니다." 112
베이컨의 그림이 지닌 힘은 종종 그 그림이 무섭다는 사실에서 얼마간 유래한다. 그의 그림은 으르렁거리는 폭력배의 소리나 위협적인 미소로 보는 이를 맞이한다. 작품 속의 짐승과 사람은 곧 공격할 것 같은 존재를 암시하는 음산한 흐릿함 속으로 사라지곤 한다.
베이컨의 목표는 또 다른 생명체와 마주쳤을 때 보이는 즉각적이고도 본능적인 반응을 포착하는 데 있었다. 그의 작품 속 인물과 동물은 종종 동작상태에 있고, 갑자기 휙 뛰어오르거나 마구 움직일 것만 같다. 그는 거의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리지 않았다. 119


책에는 없지만 베이컨 그림..
호크니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프로이드가 그린 그림에는 100시간 이상의 '층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의 층과 함께 무수한 시각적 느낌과 생각이 덧붙어 있다. 146

루시안 프로이드, 데이비드 호크니
..그가 피카소의 작품을 존경하고 좋아하긴 하지만 피카소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려 했다고 생각한다.
보는 이를 놀라게 만들고자 하는 그림을 그는 혐오한다. 그는 피카소에게는 그 결점 외에도 허위 감정이라는 결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번도 피카소의 청색 시대를 뛰어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그림들은 전적으로 허위 감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미술에서 솔직한 감정과 진실됨에 가치를 둔다는 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난다. 147
얼굴이든 그 밖의 부위든 근육은 프로이드의 영원한 관심사이다. 근육은 그가 미술을 구성하고 있다고 말하는 '형태의 세계'를 이루는 한 부분이다. ....
유화 표면의 섬세한 밀도는 얼굴을 구성하는 탄력 있는 근육과 뼈, 피부의 정교한 실타래와 유사하다. 169

책에는 실려있지 않지만 이를 잘 드러내는 그림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같이 올려봅니다.
루시안 프로이드, 반영(자화상), 1985
그의 작품 중 많은 수가 죽음의 필연성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젊고 건강한 사람을 그린 이미지조차 살의 연약한 아름다움, 피부가 늘어지고 시들어갈 가능성에 대한 감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이미지는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 자각하고 있긴 하지만 그 효과는 소름 끼치지 않고 그저 진실할 뿐이다. 190

역시 책에는 실려 있지 않은 그림이지만
루시안 프로이드, HEAD OF A GIRL
훌륭한 작품은 암기가 불가능하다. 그 작품을 얼마나 잘 알고 있든그 작품은 다시 볼 때마다 항상 다르게 보인다. 나를 이를 프로이드뿐만 아니라 뤽 튀만, 리터드 세라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경험했다. 또 어떤 작품은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른 감정을 불러온다. 이와 같이 작동할 수 있는 능력은 분명 훌륭한 작품이 지닌 특징 중 하나이다. 234
참고 이미지 :

뤽 튀이만, 건축가

뤽 튀이만, EASTER

리처드 세라, BAND

리처드 세라, 기울어진 호
유화는 세계를 향한 긍정적이고 호기심 가득한 관찰자의 초상화이다. 반면 에칭 판화는 자기성찰과 불안, 긴장, 생각에 사로잡힌 한 사람을 담은 초상화이다. 각각은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특정한 시간과 상이한 환경 속에서 이 두 작품은 모든 사람이 지닌 두 가지 측면을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35

루시안 프로이드, 파란색 스카프를 맨 남자(유화) - 머리 초상화(에칭)
+ 덤으로 몇 점의 초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