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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경제 - 시대의 지성 13인이 탐욕의 시대를 고발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 마이클 루이스 외 지음, 김정혜 옮김 / 한빛비즈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고된 취업 준비 끝에 드디어 월급을 받게 된 그 해에 금융위기가 터졌다. 바로 2008년이었다. 처음 약속했던 연봉에서 25%를 삭감, 최저생계비를 주겠다고 했다. 게다가 임금동결. 기가 막혔다. 내가 이러자고 힘들게 준비를 하고, 오랜 연수를 거쳤던가. 생애 첫 직장이기에 애착과 충성이 남달랐던 회사는 그 거듭된 거짓말과 배반으로 좌절과 분노를 불러왔다. 도대체 세계금융위기가 무엇이기에 주식 한번 하지 않았던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나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거짓의 정도 차이뿐 매 한 가지였다. 그것은 서민을 위한다는 은행이든, 부자 되게 만들어준다는 증권사든 마찬가지였다. 바쁜 일상에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어 그 좋아했던 공부마저 포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 살이라도 젊었던 그때 차라리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할 걸. 뻘 수렁에 나이가 들어갊에 따라 점점 깊게 빠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후회막심이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책에 다시 빠져들기 시작한 건...
이 책 사실 너무 읽기 힘들었다. 책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책은 사실 너무나 매혹적이고 재미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마이클 루이스, 니얼 퍼거슨 등 13명의 저널리스트들이 금융위기의 원인을 취재한 이야기다.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금융위기의 근원지인 월스트리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2부는 금융위기를 진압하기 위한 워싱턴DC의 이야기를 통해 구제금융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인지 밝힌다. 3부는 아이슬란드의 부채와 하버드 대학교의 부도 위기. 4부는 메이드포의 이야기다. 이 책의 특징은 경제전문가들이 설명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아니라 금융위기 당시 현장의 이야기를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풀어내는 르포르타주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힘들어한 것은 인간의 뒤틀려진 끝없는 욕망을 보는 절망 때문이었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얼마나 인간의 욕망을 빨아먹고 자란 기괴한 암덩어리인지.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하는 경제전문가들도 알 수 없는 수많은 파생상품들. 그중의 하나를 예를 들면, 평생 피땀 흘려 이룩한 기업을 A라는 자본가가 삼키려할 때를 보자. 그는 기업을 삼키고 나서 얻는 미래의 수익을 지금 현재 기업을 인수하는데 쓴다. 이 과정에 찌라시를 선동하는 언론, 공정하지 못한 금융당국, 그리고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투기세력이 몰린다. 이렇게 해서 그 기업은 M&A되고 그 기업의 착실한 기술들은 팔려서 자본가의 배를 채워준다. 그 돈으로 자본가는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호화찬란한 생활을 누린다. 이 자본가에게 애초 그 기업을 인수할 돈 같은 것은 있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들을 제어할 방법도 없다. 법은 이들의 편이며 설령 적대적인 법이라 할지라도 이들은 교모하게 회피하면 된다. 이런 사람들이 월스트리트에 차고 넘치며, 스타투자가로 대접받는다. 미국의 똑똑한 학생들은 이들을 롤모델로 삼는다. 끝없는 탐욕을 먹고 자란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이 경제시장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발작을 일으킨다는 닌텐도게임을 보는 듯하다. 그 복잡함에 현기증을, 다카포에 구역질을 느끼게 된다. 1장 베어스턴트스라는 거대한 기업이 몰락하는 데에는 작전 세력의 소문이 작용했을 뿐이다. “자본구조가 아무리 탄탄해도 베어스턴스를 무너뜨렸던 공매자들의 융단폭격을 견뎌낼 수 있는 금융기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베어스턴스는 자본문제로 파산한 것이 아닙니다. 베어스턴스의 파산에 돈을 걸었던 사람들이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고, 그 소문에 흔들린 사람들이 베어스턴스에게 등을 돌리는 바람에 파산했습니다.”(1장)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토요일, 일요일이 되자 그 거대한 소동은 스위치를 내리듯 잠잠해진다. 이유는? 주식시장은 주말과 주일에는 운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얼마나 웃긴가. 죽을 것처럼 난리를 피던 소동이 주말과 주일에는 투자가들이 놀러가야 한다고 조용해지다니. 문제는 이들의 이런 가상현실게임이 현실에서 빵 한 조각을 구하기 위해 토요일, 일요일에도 애쓰는 사람들의 손에서 그 빵조각마저 뺏는다는 데 있다. 이들의 끝없는 탐욕 때문에. ’그 돈은 나와 우리 가족과 모든 피해자들의 돈이에요. 바보같이 메이도프에게 속아 투자했던 성실한 사람들 말이에요.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너무 불쌍해요. 아버지라는 사람이 자식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말았어요.‘ (17장)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황당함과 분노를 여러 번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이 땅에 정착하려고 기를 쓰는 위정자와 기업가, 그리고 그들에게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못난 지식인들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경제사슬의 맨 위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 탓에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해지펀드, 모기지론이 허구이며 그들이 도입하는 신자유주의가 단지 1%를 위해 99%를 빈민으로 만드는가 하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주의사항이 되지 못한다.
그러기에 이 책은 희망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적어도 알아야 농락당하는 것을 면할 수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쉽지는 않다. 구역질이 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