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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제21호 - Summer, 2011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나에겐 문학집 하면 습관처럼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다닥다닥 붙은 골목길, 하숙방, 먼지 낀 격자무늬 유리창, 낡은 책상, 할로겐등의 따뜻한 빛, 밤 새워 읽던 기억. 그리고 알 듯, 말 듯한 언어의 미로와 유희들. 어젯밤도 그랬다. 나는 ASIA를 밤새 읽고, 창밖에는 밤새 비가 내렸다. 책속에는 여러 나라 작가들의 글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집트, 팔레스타인, 오만, 이라크, 튀니지, 요르단. 여러 나라들의 글이 만화경처럼 나를 유혹했다. 대한민국 서울, 구로의 자취방에서 그들의 긁을 읽고 있는 사이, 그들은 그들의 밤을 무슨 고민을 하며 보내고 있을까? 지금도 혁명 시위 중인 리비아의 밤에, 총성이 울려대고 있을 팔레스타인의 밤에, 이집트의 밤에, 모든 게 적막할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 몽골의 밤에, 튀니지, 요르단, 오만의 밤에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신의 천막에서 글을 쓰거나, 시국을 걱정하고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즐겁게 글을 읽었다
돈이 되지 않기에 문학을 포기하고 경영학을 배우고 있지만, 십대 시절의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 꿈은 꽤 진지했던 듯싶다. 그 후 가끔 공룡 화석을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나는 문학수상집들을 읽곤 한다. 그러면서 나는 안도하곤 했다. 그들의 소설은 마치 현실을 닮았다. 그래, 그렇기에 현실은 아니다. 마치 연극처럼.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기를 진짜 현실이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실과 닭은 현실이 아니기에 나는 편안해했던 것이다. 지금 밖에서 비가 내리고 나는 안에서 읽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ASIA는 내게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를 나라들의 글로 가득하다. 처음 보는 작가들의 글로 가득하다. 나는 그들이 혁명 과정에서 흘린 피눈물도, 그들의 진지한 고민도 잘 알지 못한다. 맥락에서 떨어져 지금 내 앞에 덜컥 놓여있는 그들의 생각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보이지 않았다.
이 글의 구성은 참 묘하다. 아시아 여러 작가들의 글이 한글과 영어로 소개되어 있다. 아마도 아시아 여러 나라 작가들의 글을 한국이라는 범주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시아를 넘어 좀 더 세계로 나아가고 싶어했던 것기도 하다. 또 한국어와 영어권 사용자를 동시에 고려해서 ASIA라는 공통범주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참신하다. 그런데 왜 하필 아시아 작가의 글을 소개하는데 왜 하필 영어일까. 뭔가 이질감을 느꼈다. 오히려 그 나라 작가의 고유언어와 한국어 번역을 동시에 싣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 번째, 도대체 아시아의 범주를 모르겠다. 처음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를 나라들이라고 한 것은 그저 투정이 아니다. 아시아는 대체 무엇 하나 공통범주가 없었다. 종교, 문화, 인종, 지역 무엇 하나 일관되고 공통되는 것이 없었다. 내가 느낀 아시아는, 서양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한쪽으로 몰아넣은 것들을 가리켜 모두 아시아라고 지칭하는 것 같았다. 반물질을 정의하는데 물질이 필요하듯. 아시아를 정의하는데 ‘서양의 것을 제외한’ 이라는 공통 기준 외에는 다른 기준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역동적이기는 하나 산만했고, 다양하긴 했지만 집중하기 어려웠다. 정의가 명확하게 되지 않았기에 아시아에 대한 여러 논의(321~333쪽)들이 내게는 피상적으로 느껴졌다.
Editor`s corner에서는 ASIA의 주제의식과 형식, 의의에 대해서 설명해주었고, 특집기사로는 아랍작가의 눈으로 본 자스민 혁명이 소개되어 있다. 파크레실레, A.J.토마스, 살와바크르, 나기브마프즈라는 분들의 글이 실려 있었다. 가장 ASIA다운 글들이 실려 있었지만 나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후맥락에 대한 나의 이해가 부족했기에 배경 대한 편집자의 보충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대담이 있었다. 한국작가가 같이 해서 그런지 조금이나마 아랍 정세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현실감이 있다고 할까. 다음은 한 인물의 생각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기사인 블록렌즈. 아시아 여러 작가의 시, 소설 등 문학이 실려 있고, 창립기념리뷰와 기고, 논문이 차례로 실려 있다.
ASIA는 분명 단순한 문학집이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현안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하는 깊이 있는 책 같았다. 나에게는 분명 어려운 책이었지만 앞으로 계속 읽어가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는 말할 수 없지만 분명 그런 매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