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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기 톰의 집에 어서 오세요 판타스틱 픽션 그레이 Gray 5
벤 엘튼 지음, 박슬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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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연극과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 연출은 물론 배우까지 겸하며 자신의 이름을 내건 버라이어티 쇼를 진해하고 있는 작가 "벤 엘튼(Ben Elton)"의 2001년도 작품 "엿보기 톰의 집에 어서 오세요(Dead Famous)"입니다. 연극으로도 만들어진 1996년도 작품 "Popcorn"으로 '골드 대거'를 수상하고, 밴드 "퀸"과 함께 만든 뮤지컬 "We Will Rock You"로 2003 'Theatregoers' Choice Award'에서 'Best New Musical'을 수상하는 등 다재다능한 작가 입니다.

리얼리티 TV쇼 '하우스 어레스트'는 서로 알지 못하는 개성있는 열명의 남녀 출연자들이 9주동안 서른대의 카메라와 마흔개의 도청기가 설치된 '피핑 톰 하우스'라고 불리우는 집에 감금되어 같이 생활하면서 매주 탈락자 후보 두명을 투표로 뽑습니다. 최종 탈락자는 시청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최후에 살아남는 한 명은 50만 파운드의 상금을 거머쥐게 됩니다. 출연자들은 각자 최후의 일인이 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합니다. 비슷한 류의 리얼리티 TV쇼가 하향세이지만 독특한 출연자때문에 초반부터 인기를 끌게된 '하우스 어레스트'에서 27일째 밤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살인 장면은 TV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온 세계에 퍼져 버리고 충격과 혼란 속에 '하우스 어레스트'는 누가 최후까지 살아남을까?가 아닌 누가 살인범일까?란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전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킵니다. 은퇴를 3년 남겨둔 "콜리지" 경감은 자신의 팀을 이끌고 사건을 조사하지만 범인을 가리키는 증거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살인사건 후에도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방송을 하게된 '하우스 어레스트'는 더욱 인기를 끌면서 점점 마지막 회를 향해 달려갑니다.

"우리는 BBC가 아닙니다." 별명이 '교도소장 제럴딘'인 그녀는 인터뷰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B'P'C TV예요. 대담(Bold)하고 도발적(Provocative)이고 문제적(Controversial)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게리의 무의식적이고 무신경한 인종차별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창문을 이 세상에 제공합니다."
콜리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발적? 문제적? 그게 다 큰 여자가 꿈꾸는 야망이란 말인가? 

우승할 확률은 10분의 1. 최종 결정은 시청자들이 내리기에 출연자들은 각자 전략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줍니다. 재기하려는 건방지고 재수없어 보이는 배우,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하루 종일 농담을 해대는 요리 견습생, 배우가 되고 싶은 판매원 등 그들은 우승 상금도 목표지만, 최종 목표는 모두 유명해지기 위해서 입니다. 설사 탈락 하더라도 이 쇼에서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어필한다면 밖에 나가서 유명인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프로그램 제작자 "제럴딘"은 그런 출연자들의 욕망을 이용해 모두가 실패할거라고 예상한 '하우스 어레스트' 이번 시즌을 성공시키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인기있는 출연자는 더 인기를 끌게 하기 위해, 인기가 없는 출연자는 더욱 비호감으로 만들기 위해 맘대로 편집을 하여 방송을 내보냅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절대적으로 원하는건 바로 '섹스'라는 걸. 화장실에도 카메라를 설치해 샤워를 하거나 볼일 볼때도 촬영을 하고, 서로 관계를 가질 기회가 더 쉽게 생길 수 있도록  술의 양을 늘리고, 미션과제도 그런쪽으로 유도를 합니다. 쇼는 성공을 하게 되지만 27일째 되는 밤 잔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살인 사건으로 엎어질 위기의 '하우스 어레스트'는 영국을 벗어나 전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그녀는 방송관계자들에겐 시청자의 알 권리를, 하차 하겠다는 출연자들에겐 전세계가 주목하고있는 너희는 더욱 유명해질거라는 이유 따위 등을 들먹이며 다시 쇼을 재개 시킵니다.  

"그 집에 사는 애들이 우리가 거울 반대편에서 얼마나 자기들을 혐오하는지 안다면...'코후비개', '징징녀', '방구쟁이' 등등 우리가 지어준 심술궂은 별명을 안다면...자기들이 한 말을 맘대로 이리저리 자르고 편집하면서 우리가 뭐라고 떠드는지 안다면...우리가 개네들이 이 프로에 나온 이유를 얼마나 비웃는지 안다면, 차리리 살해당하는게 나았을 거라고 생각할걸요."

시청자들은 방송 속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보거나 허접한 대화 따위를 들으며 웃고, 여자의 가슴이 잠깐이라고 노출되거나 출렁이는 장면을 기다리고, 누가 누구와 섹스를 하게 될지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결국 시청자들은 살인 사건에 까지에도 열광하면서 중단되어야 마땅한 TV쇼 '하우스 어레스트'는 전세계적으로 방송되기 시작합니다. 출연자들은 시청자들이 자신들을 보며 비웃고 욕하는지는 상관없이 돈과 명예라는 욕망을 위해 가식적인 행동과 거짓말을 합니다. 살인사건이 난 후 모두들 하차를 하려고 했지만 제작자가 내민 미끼를 덥석 물어 서로가 살인자라고 의심하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계속 쇼에 출연을 하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합니다. 살인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콜리지" 경감은 그동안 촬영된 영상들을 보면서 도대체 이렇게 머리가 텅텅비고 멍청한 말들을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살인 사건을 해결해야 하기에 어쩔수 없이 촬영본을 보면서 투덜거리고 한탄을 하는 "콜리지" 경감을 바라보는 젊은 팀원들에게 그는 구닥다리에 따분한 늙은 경감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점점 자극적으로만 변질되는 미디어와 그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한심해 보이고 이해 조차 되지 않는 "콜리지" 경감 역시도 고전 작품을 올리는 작은 연극 모임에 주연을 맡기위한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 무대에서 범인을 밝히기 위해 연기를 하게 되고 주목을 받는 자신을 보면서 엄청난 희열을 느끼며 유명해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음증이라는 욕망을 이용한 리얼리티 TV쇼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이 시대를 반영한 상당히 도발적이고 풍자적이며 '후더닛' 소설입니다. 사람들의 명예욕과 금전욕같은 원초적 욕망, 그걸 이용하는 자극적인 미디어와 누가 잔인한 살인을 한 범인인지에 초점을 맞춘 '후더닛'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이 작품은 중반이 넘어서야 누가 죽었는지를 밝혀서 독자로 하여금 누가 죽었지란 궁금증을 품고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영리함 까지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모인 장소에서 '범인은 당신이야!'라고 밝히는 마지막 장면은 여러 고전 미스터리 소설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요즘 범죄 소설의 추세가 누가 죽였나?가 중심인 '후더닛'보다 왜 죽였나?가 중심인 '와이더닛'인데 이런 참신하고 재기발랄한 소재와 구성에 고전적 '후더닛'의 결합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 옵니다. 스릴러나 미스터리 팬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괜찮은 작품인거 같아서 개인적으로 환영하고 싶습니다. 사건 해결 과정이나 설명 부분이 조금 불친절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관음증을 충족시켜주는 많은 TV 방송과 거기에 열광하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문제적인 시선과 위트있는 문장으로 파헤친 장점 단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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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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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데니스 루헤인(Dennis Lehane)"이 2012년 발표한 작품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Live By Night)"입니다. "운명의 날(The Given Day)"의 후속작인 이 작품은 제목과 표지에서 알수 있듯이 갱스터 소설입니다. 이 작품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는 2013년 '에드거'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 선정한 '올해 최고의 소설'에 유일하게 선정되었습니다.

 

보스턴을 휩쓸고 간 경찰 파업 사건 이후 해체된 '커글린'가문의 막내 "조 커글린"은 거리의 소년으로 지내면서 성장했습니다. 금주법이 한창이던 1926년 "조"는 친구인 이탈리아 형제 두명과 그 지역 조직의 보스인 "앨버트 화이트"의 도박장을 텁니다. 그곳에서 "에마 굴드"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그 소녀와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조""에마"는 보스턴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우고, 마지막 한탕을 위해 친구들과 은행을 털기로 합니다. 은행에서 일을 마치고 도주하던 "조"와 친구들은 사고로 경찰들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조"의 인생은 알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1919년 유례없는 보스턴 경찰 파업 사태는 명망있는 경찰 간부 "토머스 커글린"의 가문을 해체시켰습니다. 유능한 경찰이었던 장남 "대니"는 사랑하는 여인 "노라"와 보스턴을 떠났고, 법조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차남은 파업 사태 당시 두눈을 다쳐 장님이 된 후 장애인 학교 수위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게됩니다. 연약하고 순수했던 막내 "조"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집을 뛰쳐나와 갱들과 함께 범죄의 세계를 살아가게 됩니다. "조"는 범죄현장에서 만난 지역 보스 "앨버트 화이트"의 정부인 "에마 굴드"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이 속해있던 조직에 까지 손을 뻗은 "앨버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계획을 세운 "조"는 은행 털이 도중 경찰을 죽이게 되고 감옥으로 보내집니다. 감옥은 거리와는 또다른 지옥이었고 그곳에서 이탈리아계 거물 마피아 "마소 페스카토레""조"의 안전을 담보로 "조"의 아버지이자 보스턴 경찰 간부 "토머스"를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맺어진 "조""마소"의 인연으로 "조"는 웨스트 플로리다의 '럼'을 장악하며 '플로리다의 왕'이 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런 인생이 있는 거야. 그 세상 규칙대로 놀고 싶어? 그럼 가서 놀아.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규칙은 병신 같아. 나한테는 남자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규칙이 전부니까."
(중략)
"와우. 너 정말 많이 자랐구나." 대니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조가 말했다.
대니는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모자를 썼다.
"안됐다."

 

'커글린'가의 막내 "조"는 딱히 돈이 필요해서 범죄의 세계로 들어간게 아닙니다. 소질도 있고 재미도 있기에 범죄조직에 들어간겁니다. 권위적인 경찰 간부인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도 한 몫 했을겁니다. 거기다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며, "조"에게 있어 영웅이자 신이었던 큰형 "대니"의 부재 역시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미국이 벌인 기념비적인 희대의 뻘짓 중 하나인 금주법은 이전보다 술 소비량이 더욱 늘게 만들고 미국내 조직 폭력집단들이 엄청난 부를 축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권을 차지하려는 조직들간의 총부림은 1930년대 미국의 밤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거리로 나온 "조"는 당연한 수순으로 갱의 일원이 되어 웨스트 플로리다를 지배하는 위치까지 올라갑니다. 밀주, 밀매, 강탈 등을 일삼으면서도 "조"는 스스로를 갱스터나 조직 폭력배가 아닌 '치외법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될수 있으면 자신의 손에 피를 뭍히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재능은 있지만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욕심도 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잘나가는 "조"를 주위에서 가만히 놔두지 않으면서 피비린내 나는 폭력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습니다. 결국 "조"는 아무리 부정해도 자신은 단지 '조직 폭력배'일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디온을 보고 있자니 문득 열세 살 무렵 처음 보든 스트리트의 신문 가판대를 뒤집어엎었을 때가 생각났다. 우린, 어른이 되기 전에 죽고 말거야. 하지만 최후의 순간 암흑의 나라에 들어가 암흑의 황야를 지나고 안개 강둑을 넘어 미지의 세계로 향해 갈 때, 마지막으로 어깨를 넘겨다보고, 내가 이래 봬도 1만 톤급 군용 수송선을 까부순 사람이야 라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미국 역사에 있어서 금주법 시대가 가장 폭력적이고 낭만적인 시대라고 생각했었다던 작가 "데니스 루헤인""운명의 날"에서 보스턴 경찰 가문 '커글린'일가를 부패하고 미숙했던 1910년대의 미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중심부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에서는 해체된후 남겨진 '커글린'가문의 막내 "조"를 통해 미국의 폭력의 역사 중 한부분을 보여줍니다. 보스턴, 플로리다, 쿠바를 거치는 이 여정에 남자들의 의리, 배신, 사랑, 폭력 등 흔하지만 매력적인 요소가 더 해지면서 훌륭한 갱스터 소설로 완성됩니다. 낭만적이고 우아한 낮과 폭력으로 만들어진 규칙으로 돌아가는 밤의 대조는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이고,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늘 그랬듯이 대사들은 거칠지만 위트있고 문학적입니다. 그리고 탄탄하고 영리하게 짜여진 플롯은 "조 커글린"의 인생을 끝까지 따라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거기다 작가가 지은 허구와 역사적 사실들의 완벽한 조화 역시 큰 매력 중에 하나 입니다. 특히나 당시 보스 중의 보스 "럭키 루치아노"와 실직적인 조직의 브레인인 "마이어 렌스키"의 등장은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오락적인 재미면에서도 훌륭합니다. 현재 미국에 만연한 총기류에 의한 폭력의 뿌리를 보는것 같아 좀 씁쓸하기도 했습니다만 상대를 죽이기 위해 '톰슨'을 갈기는 장면에서는 통쾌함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여담이지만 다 읽고 나서 이 모든 사태는 남자라는 동물들이 아니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쟁심, 투쟁, 미련함, 의외의 어리숙함 등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치않을 특유의 DNA를 유지하는 남자들. 예,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 그래, 재능도 필요하고 열심히 일하면 뭐든 달라지기야 하겠지. 그런 요인도 중요하다. 그것까지 부정하지 않으마. 하지만 삶의 기초는 누구에게나 운이야. 행운이든 불운이든. 운이 삶이고 삶이 운이다. 그리고 운은 손에 잡히는 순간부터 새어 나간단다."

 

사실 "미스틱 리버"가 당시 '에드거'상 후보에 올랐을때 수상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미스틱 리버"를 외면해 버렸고 혼자서 MWA에 엄청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2013년에 이 작품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로 '에드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벤 애플렉"이 차기 연출작으로 결정해서 2015년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이런 저런 소식으로 이 책에 대한 기대치는 하늘을 뚫을 정도로 높아져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역시 "데니스 루헤인"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히 갱스터 소설의 새로운 걸작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즐기면서 읽기에 충분할 만큼 부담없이 쉽게 쉽게 읽히지만 가벼움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묵직함을 지닌 작품입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팬분들은 제가 뭐라고 하든 무조건 사실테고 "대부"나 "스카페이스"에 대한 향수를 가지신 분들이나 금주법 시대의 갱스터 이야기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에게도 추천드립니다. 사실 전 이 작품을 읽고 나서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젊은 "럭키 루치아노"로 나왔던 1991년도 영화 "자유시대(Mobsters)"가 떠올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별 시덥지도 않게 글이 길어서 읽기 귀찮으신 분들에게 이 작품이 뭐가 그리 괜찮은지 간단하게 요약 드리자면 "데니스 루헤인이 썼잖아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Jeffrey Smith가 그린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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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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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모 헤이더(Mo Hayder)"의 2004년도 작품 "난징의 악마(The Devil Of Nankin/Tokyo)"입니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주력 시리즈인 '잭 캐프리'시리즈 첫 작품 "버드맨(Birdman)"이 2001년도에 나왔었는데 무려 12년 만에 작가의 새로운 책이 나왔습니다. 감격스럽습니다.

1990년 도쿄, 20대의 영국 여성 "그레이"가 도쿄 대학교의 중국인 교수 "스충밍"교수를 찾아옵니다. "그레이"는 무턱대고 교수에게 1937년 중국 난징에서 일본 군인들이 저지른 어떤 고문에 관한 16미리 필름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스충밍"교수는 그런 필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하지만 "그레이"란 여성은 쉽게 물러 나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그날은 무려 구년 칠개월 십팔일을 기다렸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끈질긴 영국 여성의 요청에 당황한 교수는 조만간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고, 무작정 도쿄로 온 "그레이"는 신주쿠 가부키초의 유명 클럽에 호스티스로 일을 하며 "스충밍"교수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지난 며칠 동안 도시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버렸다. 난징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속도는 굉장히 느릴 것이다. 매장되지 못한 시민들이 끝까지 놔주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유령들이 바다 속까지 쫓아갈 테니까. 어쩌면 도시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작은 창문으로 쇠창살 너머의 풍경을 내다볼 수 있다. 일본인들이 이 도시에 무슨 짓을 해놓고 가버렸는지. 

십대시절 우연히 집에서 발견한 주황색 책으로만 기억하는 책에서 본 '난징 대학살'의 이야기를 읽은 후, 1937년 일본 군인들이 난징에서 저지른 만행에 유달리 집착한 "그레이"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걸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찾고 있던 사람을 만나러 무작정 도쿄로 옵니다. 자신이 찾던 사람은 도쿄 대학교의 중국인 사회학 교수인 "스충밍". 그는 "그레이"가 유달리 집착하는 일본 군인들의 어떤 만행이 담긴 희귀한 16밀리 필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전 도서관에서 힘들게 찾은 책 속에서 교수의 이름을 발견하고 결국 그를 찾아 낸 것 입니다. "그레이"의 끈질김에 교수는 일주일 뒤에 연락을 준다는 대답을 하고 그의 연락을 기다리기 위해 무일푼이었던 "그레이"는 우연한 만남을 기회로 신주쿠 가부키초의 유명 클럽에 호스티스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후 "스충밍"교수는 "그레이"에게 그녀가 일하는 클럽에 가끔 나타나는 한 노인이 복용하는 약에 대해 알아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필름을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교수가 말한 노인은 도쿄 최대의 야쿠자 조직 후유키파의 오야붕인 "후유키"이기에 "그레이"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바쳐 찾아 헤메던 해답을 포기할 수 없기에 "후유키"에게 접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굉장히 독창적인 방법으로 시민들을 학살했다. 난징 청년들을 목까지만 모래흙에 묻어놓고 탱크로 그들의 머리를 깔아 뭉갰다. 그리고 나이든 여성과 아이들 심지어 가축들까지 강간했다. 또한 목을 베거나 사지를 절단하고 끝없이 고문했다. 심지어 아기들은 총검술 연습에 사용되었다.

이 소설은 버블경제가 사라지고 불황이 시작되는 1990년 도쿄에 온 미스터리한 영국 여성 "그레이"의 이야기와 1937년 난징에서 벌어진 살아있는 지옥을 목격한 "스충밍"의 일기를 교차로 보여주면서 진행됩니다. 우연히 읽게된 책을 시작으로 유달리 '난징 대학살'에 집착을 하던 영국 여성 "그레이"는 자신이 오랫동안 찾던 해답을 찾기위해 무작정 도쿄로 옵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지도 않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동양의 한나라에서 벌어진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집착하는 그녀를 주위에선 미친아이로 취급을 했고 결국 정신병원에 보내지기도 합니다. 외톨이이며 음울한 분위기의 영국인 "그레이"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 도쿄와 참혹한 난징의 자료들과 이야기들 사이의 아이러니 속에서 자신 찾는 해답을 찾기 위해 야쿠자 두목 "후유키"에게 접근하는 위험한 모험을 시작합니다. 1937년, 진링 대학교의 자신만만한 언어학 젊은 교수 "스충밍"은 아직도 중국에 만연한 미신들이 못 마땅합니다. 열렬한 공화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인 그는 미신에 집착하는 자신의 어머니와 태음력 따위에 호들갑 떠는 자신의 아내가 불만입니다. 장제스를 지지하는 국민당을 신뢰하고 총통이 일본군들으 막아 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습니다. 난징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아내를 안심시키고 난징에 남습니다. 일본군들은 민간인을 인도적으로 대해줄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은 문명국 일본 사람들이기에. 하지만 난징을 버리고 떠난 총통과 수뇌부들 소식과 자신의 눈앞에 놓인 시체들의 산을 보면서 불길한 예감을 느낌니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시체들만 밟고 가도 건널 수 있을거 같은 강, 강간당하는 여자들과 어린 소녀들, 불에 태워지는 가족들, 전리품으로 챙겨지는 사람들의 머리 가죽...이런 것들을 목격하면서 점점 "스충밍"은 인간이 이럴 수는 없다고, 차라리 인간의 힘이 아닌 불가항력의 어떤 힘, 미신같은 것들 때문에 생긴 일이길 바라게 됩니다.  이 둘의 이야기는 야쿠자 오야붕 "후유키"의 화려한 아파트와 마치 과거를 강제로 막아버린 일본처럼 아래층을 폐쇄한 낡은 목조 주택을 배경으로 손에 땀을 쥐게하는 결말을 향해 흘러갑니다. 그리고 영국과 중국에서 몇십년 차이로 태어난 전혀 마주칠 일이 없는 두사람을 엮는 "그레이""스충밍"의 슬픈 사연들이 밝혀집니다.

"이해가 안돼요."
나는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 수 있는지."
"뭐가 말이예요?"
"누군가가 요리를 하고 있어요."
나는 아내를 돌아보았다.
"이게 말이 되나요? 이 동네에 남은 사람이 누가 있다고. 류선생 집에도 고기는 없을 텐데..."

인간이 저지른 가장 참혹한 학살이라고도 불리는 '난징 대학살'을 정면으로 다루는 이 소설 "난징의 악마"는 많은 나라에 번역 출간이 되었지만 정작 미스터리 소설 강국 중 하나인 일본에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잭 캐프리'시리즈는 몇권 출간이 되었지만 '난징 대학살'이라는 거부하고 싶은 자신들의 과거가 어쩌면 이 작품을 아직까지 외면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그만큼 난징 학살의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참혹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복잡한 감정을 가진 한국인인 저도 책을 읽으며 상당히 힘겨웠습니다. 물론 소설이기에 백퍼센트 사실이 아니긴 하지만 1937년 난징에서의 이야기 부분에선 한 페이지 조차 한 번에 읽는게 힘들고 무거워 잠시 담배를 피운게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우경화 되는 일본의 현재가 더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일본에 많은 반감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일본에서 7년 동안 살지 못 했겠죠. 오히려 일본 문화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하던 쪽이었습니다. (만리장성을 같이 쌓았던 일본 여자들도 좋았...아 이건 아니군요.^^;)  어쨌든 평범한 일본인들 모두 나쁜건 아니라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그레이"가 평화롭게 잘 사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저들은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중국에서 벌인 행동들에 대해 얼마나 알까?'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다시 한번 예전에 제가 일본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많은 것들을 상기 시켰습니다.     

한 미모 하시는 작가 "모 헤이더"누님의 "버드맨"을 읽고 느꼈었지만 이 누님, 여자이면서도 상당히 잔인하고 음울한 묘사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거기다 에로틱과 음탕함의 중간...뭐 랄까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한 묘사도 독특하고. 이 소설 "난징의 악마"가 일본과 중국의 이야기를 그냥 잘 알지 못하는 서양인이 동양에 대한 어설픈 상식을 가지고 썼다고 그냥 넘기실지도 모르는데 작가 "모 헤이더"는 상당한 일본통입니다. 주인공 처럼 실제 일본에서 호스티스를 했었습니다. 당시 자신의 눈 앞에서 야쿠자에게 자신의 친구가 강간당하는걸 목격한게 아직도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무대가 되는 다카다노바바, 가부키초 등은 년도 차는 있지만 제가 꽤 오래 살았던 곳들이라 어설펐다면 바로 눈치 챘을 겁니다.
작가는 난징 학살 이야기 부분은 "아이리스 창""난징의 강간", "혼다 가츠이치"의 "난징 대학살" 등 많은 문헌들을 참고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걸 알고 책을 읽으니 더욱 섬찟했습니다. 난징 이야기를 제외 하더라도 책 자체가 상당히 음울하고 무겁습니다. 재미를 추구해야하는 스릴러로써도 이런 음울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한 몫 합니다. 예를 들자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 도쿄를 묘사하면서도 작가는 일본인들이 죽인 수많은 영혼들의 흔적들을 끼워 넣어서 도쿄란 도시 자체를 무덤위에 세워진 파라다이스 처럼 묘사를 합니다. 그래서 평범해 보이는 장면들에서도 갑자기 예상치 못할 무언가가 튀어 나올것 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숨 가쁜 추격전은 귀신이라도 튀어날올 것같은 목조 주택을 배경으로 해서 엄청난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자신있게 일급 스릴러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용기 있는 지성으로 어둠 속에서 '난징'이라는 이름을 꺼내준 아이리스 창(1968~2004)에게 바칩니다. - 모 헤이더

십대때 학교를 그만두고 일본에서의 호스티스 생활을 포함해 많은 직업을 거쳐 작가가 된 "모 헤이더"는 국내엔 아주 생소한 작가이지만 수상 경력이나 판매량 면에서 세계적으로 이미 수준급 작가의 반열에 올라있습니다. 2012년에는 '잭 캐프리' 시리즈 다섯번째 작품 "Gone"으로 이 방면에선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에드거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이 작품 "난징의 악마"는 신생 스릴러 전문 중소 출판사 '펄스'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알라딘에서만 구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도 다음주 부터 다른 곳에서도 구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난징의 악마"가 잘되서 작가 "모 헤이더"의 다른 작품들도 볼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또 12년을 기다리기엔 저도 이젠 너무 늙어서... 그리고 스릴러를 전문으로 하는 '펄스'라는 출판사도 잘되서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구요.
이 작품 "난징의 악마"는일본 군인들이 집단적 광기를 표출한 '난징 대학살'과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비극들, 인간의 삶에 대한 욕망을 주제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잘 엮은 일류 스릴러입니다. 꼭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아마도 쉽게 쉽게 읽지는 못 하실겁니다. 우리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일본이란 나라가 만든 비극의 대상이었던 한국에서 태어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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