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영국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모 헤이더(Mo Hayder)"의 2004년도 작품 "난징의 악마(The Devil Of Nankin/Tokyo)"입니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주력 시리즈인 '잭 캐프리'시리즈 첫 작품 "버드맨(Birdman)"이 2001년도에 나왔었는데 무려 12년 만에 작가의 새로운 책이 나왔습니다. 감격스럽습니다.

1990년 도쿄, 20대의 영국 여성 "그레이"가 도쿄 대학교의 중국인 교수 "스충밍"교수를 찾아옵니다. "그레이"는 무턱대고 교수에게 1937년 중국 난징에서 일본 군인들이 저지른 어떤 고문에 관한 16미리 필름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스충밍"교수는 그런 필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하지만 "그레이"란 여성은 쉽게 물러 나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그날은 무려 구년 칠개월 십팔일을 기다렸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끈질긴 영국 여성의 요청에 당황한 교수는 조만간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고, 무작정 도쿄로 온 "그레이"는 신주쿠 가부키초의 유명 클럽에 호스티스로 일을 하며 "스충밍"교수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지난 며칠 동안 도시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버렸다. 난징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속도는 굉장히 느릴 것이다. 매장되지 못한 시민들이 끝까지 놔주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유령들이 바다 속까지 쫓아갈 테니까. 어쩌면 도시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작은 창문으로 쇠창살 너머의 풍경을 내다볼 수 있다. 일본인들이 이 도시에 무슨 짓을 해놓고 가버렸는지. 

십대시절 우연히 집에서 발견한 주황색 책으로만 기억하는 책에서 본 '난징 대학살'의 이야기를 읽은 후, 1937년 일본 군인들이 난징에서 저지른 만행에 유달리 집착한 "그레이"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걸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찾고 있던 사람을 만나러 무작정 도쿄로 옵니다. 자신이 찾던 사람은 도쿄 대학교의 중국인 사회학 교수인 "스충밍". 그는 "그레이"가 유달리 집착하는 일본 군인들의 어떤 만행이 담긴 희귀한 16밀리 필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전 도서관에서 힘들게 찾은 책 속에서 교수의 이름을 발견하고 결국 그를 찾아 낸 것 입니다. "그레이"의 끈질김에 교수는 일주일 뒤에 연락을 준다는 대답을 하고 그의 연락을 기다리기 위해 무일푼이었던 "그레이"는 우연한 만남을 기회로 신주쿠 가부키초의 유명 클럽에 호스티스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후 "스충밍"교수는 "그레이"에게 그녀가 일하는 클럽에 가끔 나타나는 한 노인이 복용하는 약에 대해 알아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필름을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교수가 말한 노인은 도쿄 최대의 야쿠자 조직 후유키파의 오야붕인 "후유키"이기에 "그레이"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바쳐 찾아 헤메던 해답을 포기할 수 없기에 "후유키"에게 접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굉장히 독창적인 방법으로 시민들을 학살했다. 난징 청년들을 목까지만 모래흙에 묻어놓고 탱크로 그들의 머리를 깔아 뭉갰다. 그리고 나이든 여성과 아이들 심지어 가축들까지 강간했다. 또한 목을 베거나 사지를 절단하고 끝없이 고문했다. 심지어 아기들은 총검술 연습에 사용되었다.

이 소설은 버블경제가 사라지고 불황이 시작되는 1990년 도쿄에 온 미스터리한 영국 여성 "그레이"의 이야기와 1937년 난징에서 벌어진 살아있는 지옥을 목격한 "스충밍"의 일기를 교차로 보여주면서 진행됩니다. 우연히 읽게된 책을 시작으로 유달리 '난징 대학살'에 집착을 하던 영국 여성 "그레이"는 자신이 오랫동안 찾던 해답을 찾기위해 무작정 도쿄로 옵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지도 않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동양의 한나라에서 벌어진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집착하는 그녀를 주위에선 미친아이로 취급을 했고 결국 정신병원에 보내지기도 합니다. 외톨이이며 음울한 분위기의 영국인 "그레이"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 도쿄와 참혹한 난징의 자료들과 이야기들 사이의 아이러니 속에서 자신 찾는 해답을 찾기 위해 야쿠자 두목 "후유키"에게 접근하는 위험한 모험을 시작합니다. 1937년, 진링 대학교의 자신만만한 언어학 젊은 교수 "스충밍"은 아직도 중국에 만연한 미신들이 못 마땅합니다. 열렬한 공화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인 그는 미신에 집착하는 자신의 어머니와 태음력 따위에 호들갑 떠는 자신의 아내가 불만입니다. 장제스를 지지하는 국민당을 신뢰하고 총통이 일본군들으 막아 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습니다. 난징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아내를 안심시키고 난징에 남습니다. 일본군들은 민간인을 인도적으로 대해줄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은 문명국 일본 사람들이기에. 하지만 난징을 버리고 떠난 총통과 수뇌부들 소식과 자신의 눈앞에 놓인 시체들의 산을 보면서 불길한 예감을 느낌니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시체들만 밟고 가도 건널 수 있을거 같은 강, 강간당하는 여자들과 어린 소녀들, 불에 태워지는 가족들, 전리품으로 챙겨지는 사람들의 머리 가죽...이런 것들을 목격하면서 점점 "스충밍"은 인간이 이럴 수는 없다고, 차라리 인간의 힘이 아닌 불가항력의 어떤 힘, 미신같은 것들 때문에 생긴 일이길 바라게 됩니다.  이 둘의 이야기는 야쿠자 오야붕 "후유키"의 화려한 아파트와 마치 과거를 강제로 막아버린 일본처럼 아래층을 폐쇄한 낡은 목조 주택을 배경으로 손에 땀을 쥐게하는 결말을 향해 흘러갑니다. 그리고 영국과 중국에서 몇십년 차이로 태어난 전혀 마주칠 일이 없는 두사람을 엮는 "그레이""스충밍"의 슬픈 사연들이 밝혀집니다.

"이해가 안돼요."
나는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 수 있는지."
"뭐가 말이예요?"
"누군가가 요리를 하고 있어요."
나는 아내를 돌아보았다.
"이게 말이 되나요? 이 동네에 남은 사람이 누가 있다고. 류선생 집에도 고기는 없을 텐데..."

인간이 저지른 가장 참혹한 학살이라고도 불리는 '난징 대학살'을 정면으로 다루는 이 소설 "난징의 악마"는 많은 나라에 번역 출간이 되었지만 정작 미스터리 소설 강국 중 하나인 일본에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잭 캐프리'시리즈는 몇권 출간이 되었지만 '난징 대학살'이라는 거부하고 싶은 자신들의 과거가 어쩌면 이 작품을 아직까지 외면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그만큼 난징 학살의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참혹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복잡한 감정을 가진 한국인인 저도 책을 읽으며 상당히 힘겨웠습니다. 물론 소설이기에 백퍼센트 사실이 아니긴 하지만 1937년 난징에서의 이야기 부분에선 한 페이지 조차 한 번에 읽는게 힘들고 무거워 잠시 담배를 피운게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우경화 되는 일본의 현재가 더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일본에 많은 반감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일본에서 7년 동안 살지 못 했겠죠. 오히려 일본 문화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하던 쪽이었습니다. (만리장성을 같이 쌓았던 일본 여자들도 좋았...아 이건 아니군요.^^;)  어쨌든 평범한 일본인들 모두 나쁜건 아니라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그레이"가 평화롭게 잘 사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저들은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중국에서 벌인 행동들에 대해 얼마나 알까?'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다시 한번 예전에 제가 일본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많은 것들을 상기 시켰습니다.     

한 미모 하시는 작가 "모 헤이더"누님의 "버드맨"을 읽고 느꼈었지만 이 누님, 여자이면서도 상당히 잔인하고 음울한 묘사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거기다 에로틱과 음탕함의 중간...뭐 랄까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한 묘사도 독특하고. 이 소설 "난징의 악마"가 일본과 중국의 이야기를 그냥 잘 알지 못하는 서양인이 동양에 대한 어설픈 상식을 가지고 썼다고 그냥 넘기실지도 모르는데 작가 "모 헤이더"는 상당한 일본통입니다. 주인공 처럼 실제 일본에서 호스티스를 했었습니다. 당시 자신의 눈 앞에서 야쿠자에게 자신의 친구가 강간당하는걸 목격한게 아직도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무대가 되는 다카다노바바, 가부키초 등은 년도 차는 있지만 제가 꽤 오래 살았던 곳들이라 어설펐다면 바로 눈치 챘을 겁니다.
작가는 난징 학살 이야기 부분은 "아이리스 창""난징의 강간", "혼다 가츠이치"의 "난징 대학살" 등 많은 문헌들을 참고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걸 알고 책을 읽으니 더욱 섬찟했습니다. 난징 이야기를 제외 하더라도 책 자체가 상당히 음울하고 무겁습니다. 재미를 추구해야하는 스릴러로써도 이런 음울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한 몫 합니다. 예를 들자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 도쿄를 묘사하면서도 작가는 일본인들이 죽인 수많은 영혼들의 흔적들을 끼워 넣어서 도쿄란 도시 자체를 무덤위에 세워진 파라다이스 처럼 묘사를 합니다. 그래서 평범해 보이는 장면들에서도 갑자기 예상치 못할 무언가가 튀어 나올것 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숨 가쁜 추격전은 귀신이라도 튀어날올 것같은 목조 주택을 배경으로 해서 엄청난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자신있게 일급 스릴러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용기 있는 지성으로 어둠 속에서 '난징'이라는 이름을 꺼내준 아이리스 창(1968~2004)에게 바칩니다. - 모 헤이더

십대때 학교를 그만두고 일본에서의 호스티스 생활을 포함해 많은 직업을 거쳐 작가가 된 "모 헤이더"는 국내엔 아주 생소한 작가이지만 수상 경력이나 판매량 면에서 세계적으로 이미 수준급 작가의 반열에 올라있습니다. 2012년에는 '잭 캐프리' 시리즈 다섯번째 작품 "Gone"으로 이 방면에선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에드거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이 작품 "난징의 악마"는 신생 스릴러 전문 중소 출판사 '펄스'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알라딘에서만 구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도 다음주 부터 다른 곳에서도 구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난징의 악마"가 잘되서 작가 "모 헤이더"의 다른 작품들도 볼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또 12년을 기다리기엔 저도 이젠 너무 늙어서... 그리고 스릴러를 전문으로 하는 '펄스'라는 출판사도 잘되서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구요.
이 작품 "난징의 악마"는일본 군인들이 집단적 광기를 표출한 '난징 대학살'과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비극들, 인간의 삶에 대한 욕망을 주제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잘 엮은 일류 스릴러입니다. 꼭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아마도 쉽게 쉽게 읽지는 못 하실겁니다. 우리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일본이란 나라가 만든 비극의 대상이었던 한국에서 태어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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