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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우스 - 토벨라의 심장
디온 메이어 지음, 이승재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범죄소설 작가 "디온 메이어(Deon Meyer)"가 2002년에 발표한 세 번째 작품 "프로테우스 : 토벨라의 심장(Proteus / Heart of the Hunter)"입니다. 이 작품은 전작 "오리온"에서 후반부부터 등장해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줬던 코사 부족 출신의 해결사 "토벨라 음파이펠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스릴러로 2003년 남아공 'ATKV 문학상', 2006년 독일 'Deutsche Krimi Preis상'을 받았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비밀정보국(PIU)은 예전에 정보국을 도와서 일 했던 "조니 클레인티에스"를 감시하던 중 그의 딸 "모니카"가 그녀의 아버지 "조니"를 납치했다는 괴한에게 협박을 받아 72시간 내에 루사카까지 하드디스크를 전달해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합니다. "모니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토벨라 음파이펠리"를 찾아갑니다. "토벨라"는 "모니카"의 부탁으로 그녀 대신 하드디스크를 전해주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고 비밀정보국은 공항에서 하드디스크를 수거하려고 계획합니다. 하지만 공항에서 비밀정보국 요원들이 "토벨라"를 놓치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변합니다.
인간이 유인원과 분류된 이 대륙, 최초의 인류가 진흙에 남긴 지문이 화석으로 발견된 이 대륙 위로 흐르는 붉은 피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심지어 모든 지형의 틀을 뒤바꾸고 기괴한 외양의 바위들을 남긴 거대한 빙하가 떠돌던 시절에도 붉은 피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렀다. 땅속 깊숙이 붉은 피가 스며든 대륙. 그 대륙이 바로 아프리카다. 검은 대륙이 아니라 '붉은 대륙'이다. 모든 땅의 모(母)대륙.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잉태한 대륙. 그 생명에 대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 탄생한 죽음은 포식자들을 만들어냈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온갖 종류의 포식자들이 이 대륙에 피를 뿌렸다.
그것은 이 대륙에 완벽한 사냥꾼이 탄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속에서 활동을 했던 "토벨라 음파이펠리"는 자신의 옛 동료였던 "조니 클레인티에스"의 딸 "모니카"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납치되어 루사카의 한 호텔에 있으며 72시간 내에 아버지가 금고에 보관했었던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납치범들이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고로 두 다리를 잃어 의족에 의지하는 "모니카"는 "토벨라"에게 하드디스크 전달을 부탁하고 "조니"에게 과거의 빚이 있던 "토벨라"는 부탁을 수락합니다. 간단할 줄 알았던 부탁은 비밀정보국 요원들이 공항에 등장하면서 꼬이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토벨라"는 오토바이를 타고 옛 동료 "조니"를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려고 합니다. 한편, "조니"가 보관하던 하드디스크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치부와 비밀들이 들어있음을 확신하는 비밀정보국은 비상상황실을 가동하고 기동대응팀까지 동원해서 "토벨라"를 추격합니다.
"당시 음파이펠리 씨는 어떤 선택을 한 셈이잖아요. 그러니까 일자리를 얻기 위해 당신을 찾아간 건데, MK 출신 베테랑이 왜 마약계 거물을 찾아갔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그건 기자 양반이 새롭게 태어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MK 베테랑 출신의 실업자가 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조국을 위해 희생했던 한 남자가 이제는 자신과 동료들이 재건한 조국의 적이 되어 쫒깁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발생한건 정말 우연의 산물이며 모든 것은 정보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이 만들어낸 어이없는 결과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정권이 무너지면서 많은 단체들이 운영하던 정보기관들의(백인정권의 구 국가정보원인 NIS, ANC와 PAC가 운영했던 정보기관들이 통합된 국가정보국 NIS, 비밀정보원 SIS 등) 정보들을 통폐합 하는 업무를 진행했던 "조니"가 비상시를 대비해 하드디스크에 저장한 정보는 당연히 현 정권의 고위층을 차지한 사람들의 치부도 포함되어 있고 소문으로 돌던 이중스파이들의 신분까지 포함됩니다. 이 하드디스크가 다른 나라로 유출될 시 발생할 후폭풍을 두려워한 남아공 정부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하드디스크를 찾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조니"가 납치되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과거의 영웅 "토벨라"가 끼어들면서 상황이 꼬인겁니다.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한창이던 당시 17세의 나이로 ANC(아프리카 민족 회의)에 들어가 투쟁 활동을 했던 "토벨라 음파이펠리"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음베키" 대통령을 배출한 코사 부족의 부족장 혈통으로, 뛰어난 자질을 인정받아 독일과 소련 KGB에게 훈련을 받은 훌륭한 전사였습니다. 유럽에서 '움징겔리(전사, 사냥꾼)'라는 이름의 암살자로 이름을 떨치다 냉전의 종식과 아파르트헤이트의 폐지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온 "토벨라"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외면당하면서 거물 마약상의 해결사로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건(전작 "오리온")을 계기로 암흑가 생활에서 은퇴를 한 후 BMW오토바이 대리점에서 일을 하며 애인, 애인의 아들과 함께 새 삶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과거 투쟁의 시기에 함께 했던 납치된 동료를 위해 72시간 내에 잠비아에 있는 루사카까지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가야합니다. 더 이상 폭력적인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토벨라"는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기동대응팀까지 동원한 비밀정보국의 추격에 상황은 쉽지 않은 전개로 흘러가고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변하게 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치적 상황이 불러온 또 다른 양상의 첩보전으로 인해 비밀정보국 내에서도 또 다른 변수들이 발생됩니다.
아마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저주를 받은 것이리라. 신께서 손수 빚다 손을 잘못 놀린 땅이었기에. 푸른 산과 계곡, 끝없이 펼쳐진 초원, 값비싼 광물자원,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희귀석 등이 넘쳐나도록 풍족했기에......
그러다 신은 자신이 창조한 땅을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풍족하게 만들었으니 그만큼의 시련과 유혹을 견여야 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갈증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대륙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북쪽에 사는 백인들도 불러들여 이 천국을 어떻게 만드는지 두고 봤을 것이다.
탐정 소설이었던 작가의 전작인 "오리온"과는 다르게 이번 작품 "프로테우스"는 기본적으로 추격 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추격스릴러 소설로 중반까지 진행됩니다. 그러다 조금씩 배후에 감춰졌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둘러싼 정치적 음모들이 드러납니다. 전직 MK 베테랑이자 뛰어난 전사인 남자가 주인공이어서 언뜻 보기엔 액션 위주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읽고 나니 의외로 추격전이라는 외피를 입은 첩보 소설이었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훌륭한. 사실 그래서 더 이 작품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처음 책을 펼치며 기대한 부분을 뛰어넘어 의외의 전개로 흘러가는 부분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관통하는 쫓고 쫓기는 스릴넘치는 추격전 장면들과 시시각각 발생하는 흥미로운 변수들, 그리고 여러 정치적 상황들이 얽힌 현실적인 첩보전 부분들도 훌륭했지만 개성있는 사실적인 등장인물들 역시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 입니다. 과거를 잊고 새롭게 태어나려는 주인공 "토벨라"는 물론이고 흑인정권, 거기다 남자들이 대부분인 정보기관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추격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정보국 서열2위인 백인여성 "야니나 멘츠", 정부가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상황의 양상을 바꾸는 케이프 타임스의 기자 "엘리슨 힐리", 분노로 가득차 있는 기동대응팀의 지휘관 "타이거 마지부코"대위 그리고 후반부 "토벨라"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전작 "오리온"의 주인공 "자토펙 판 헤이르던" 등 모든 인물들이 생생하고 매력적으로 묘사되어 소설의 재미를 더 해줍니다. (여담인데 오토바이 매니아인 작가 "디온 메이어"는 주인공 "토벨라"가 BMW R 1150 GS를 타고 도망가게 하는데 작품 내내 이 기종에 대한 묘사가 거의 찬양수준이라 작가가 BMW R 1150 GS를 위해 이 작품을 썼나?란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카루와 크게 달랐다. 마치 신이 손에 든 팔레트의 색이 남쪽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이곳의 초록은 훨씬 더 푸르렀고 능선의 색은 훨씬 짙었을 뿐 아니라, 잔디 색, 하늘 빛깔도 훨씬 더 강렬했다.
이 다채로운 색깔이 이 나라를 이 모양,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서로 다른 색깔 때문에.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의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남아공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와 음모들이 엮여 진행되는 첩보전 그리고 남아공의 역사 속에서 변화하는 한 남자의 삶의 이야기가 결합한 이 작품 "프로테우스"와 전작인 "오리온"을 연달아 읽고 나니 이젠 작가 "디온 메이어"의 작품들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오락적인 면에서도 수준급이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나라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어두운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도 알 수 있는 일류 스릴러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더 출간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출간하면 무조건 우선적으로 읽어야 할 작가가 되었습니다. 제발 작가의 "Benny Griessel" 시리즈들과 나머지 작품들도 국내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