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밀매인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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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 범죄 소설 작가들 중 한명인 "에반 헌터(Evan Hunter)"가 필명 "에드 맥베인(Ed McBain)"으로 1956년에 발표한 작품 "마약 밀매인(The Pusher)"입니다. 현대 경찰소설의 효시이자 뼈대가 된 '87분서(87th Precinct)'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인 "마약 밀매인"은 유명한 미스터리 소설 평론가 "앤서니 바우처(Anthony Boucher)"가('앤서니' 어워드의 그 "앤서니 바우처"입니다.) 꼽은 시리즈 초기작 베스트 세 편 중 한 편입니다.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 밤, 순찰을 돌던 순경이 건물 지하실에서 목에 줄을 매어 자살한 듯 보이는 소년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죽은 소년 옆에는 빈 주사기가 있었고 87분서에서 출동한 "스티브 카렐라"형사는 현장을 살펴보면서 이 죽음을 쉽게 자살로 단정하기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부검 결과를 기다리며 죽은 소년의 어머니를 찾아간 형사들은 죽은 소년이 마약 중독으로 인해 매춘부가 된 누나에 의해서 마약을 접하고 그 소년 역시 중독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겨울은 폭탄을 든 아나키스트처럼 다가왔다.

겨울은 과격하게 소리를 지르고, 시근덕거리며, 골수와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 안에서 도시를 가두었다. 바람은 처마 밑에서 포효하고 길모퉁이 주위를 몰아치며 사람들의 모자와 스커트를 들어 올린 다음 얼음처럼 차가운 손가락으로 따뜻한 허벅지를 어루만진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한 겨울, 아이솔라의 빈민가에 있는 한 건물 지하실의 침대 위에서 한 소년이 목을 매어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죽은 소년 옆에는 마약에 사용한 듯 보이는 빈 주사기가 놓여 있고 신참 형사 "버트 클링"과 같이 출동한 "스티브 카렐라"형사는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직감합니다. 부검 결과 죽은 소년은 약물 과다복욕으로 죽은 후에 누군가에 의해 목을 매어 자살한 것처럼 위장된 사실이 밝혀지고, 현장에서 발견된 주사기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지문을 찾아냅니다. 죽은 소년은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출신으로 마약중독자였음을 알게 된 "카렐라"는 왜 범인이 그렇게 허술하게 자살처럼 꾸몄는지 의아해 하면서 "곤조"라는 이름을 단서로 살인범을 추적합니다. 한편, 87분서를 지휘하는 "피터 번스" 경위에게 그의 인생을 뒤흔들만한 소식을 전하는 의문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살인에는 한 가지 성가신 문제가 있다.

정직하게 말해서 살인에는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한 가지는 더 특별했다. 그 한 가지는 버릇이 된다는 점이다. 믿거나 말거나 살인은 습관성 행위일 뿐이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다소 바보 같은 말일 수도 있다. 양치질은 습관성 행위다. 목욕도 마찬가지다. 배신행위 역시 그렇다. 영화를 보러 가는 것 또한 그렇다. 다소 병적으로 되길 원한다면, 삶 자체 역시 어느 정도 습관성을 가진다.

하지만 살인은 예외 없이, 확실한 습관성을 띤다.


마약 중독자이자 공원에서 마약을 팔던 한 소년의 죽음을 조사하는 이번 작품 "마약 밀매인"에서도 작가 "에드 맥베인"의 저력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조무래기 마약상이었던 소년의 죽음을 보여주는 첫 부분부터 "맥베인"은 곧바로 독자들 휘어잡고 마지막까지 내달립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자살처럼 보이게 하려면 그저 주사기만 두면 되는데 왜 목에 줄을 묶어 놓았을까?', '목을 매어 죽은 것처럼 해놓아서 너무 쉽게 타살임이 밝혀짐을 모를 정도로 범인은 멍청한가?'라는 궁금증을 가지게 만드는데 까지도 작가는 전혀 뜸들이지 않고 곧바로 전개시키며, 동시에 87분서를 지휘하는 "번즈"경위를 코너에 몰아넣어 버리니 어찌 쉽게 책을 덮겠습니까? 그리고 이야기를 꼬아놓거나 빙빙 돌리는 기교는 배제한 채 몇 번의 확실한 잽과 정확하고 강력한 스트레이트들만 꽂아 넣습니다. 기본적으로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형사들은 탐문과 조사로 얻은 단서들만을 가지고 수사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오는 스릴과 긴장감은 엄청납니다. 이건 아무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의 특기 중 하나인 재치 있고 생동감 있는 대화들에 대해서는 말하면 입이 아픈 수준이니 넘어가더라도, "맥베인"의 문장이나 문체는 경이로운 수준입니다. 비교적 짧은 문장들을 구사함에도 정말 끝내주게 환상적인 은유와 비유를 사용하는데, 동시에 쓸데없는 수사들은 빼버려 문장 하나, 하나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정말 읽으면서 감탄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만일 제가 읽은 모든 작품들이 "에드 맥베인"이 쓴 작품들 정도 수준만 유지되었다면 제 독서 인생이 지금보다 더 풍요로웠을 것이란 생각이 자주 듭니다. 하지만 아무 작가나 이정도 경지에 오를 수 있는건 아니니 불가능한 일이겠죠.


과음 또한 약간의 일탈로 시작했다. 알 게 뭐야. 남자라면 명절에 술을 마셔야 하지 않겠어? 물론 그렇고말고. 그것을 금지하는 법도 없다. 하지만 과음은 가끔 객기를 이끌어 내고 그 객기는 때때로 원시적인 감정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알 게 뭐야. 남자라면 명절에 싸움박질도 해야 하는거 아니겠어? 물론 그렇고말고. 하지만 과음이 이끈 싸움박질은 때때로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게 만든다.


가상의 도시 아이솔라의 한 구역을 담당하는 87분서의 모든 형사들이 범죄를 수사하는 이야기인 '87분서' 시리즈는 아시다시피 현대 경찰소설의 효시 또는 원조라고 불리웁니다. 물론 그전에 경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_"스티븐 킹"의 말을 빌리자면_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는 장르소설에 리얼리즘을 최초로, 그것도 아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시리즈입니다. 가상의 도시가 배경이지만 경찰활동 묘사는 철저하게 실제 수사방법을 기초로 썼기에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뒤로 영미권 범죄소설 그것도 경찰소설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저 멀리 스웨덴에서 그의 소설을 번역하던 한 부부가 북유럽 스릴러 사(史)에 길이 남을 걸작 "로제안나","웃는 경관" 등이 포함된 "마르틴 베르크"시리즈를 쓰게 되는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뿐 아니라 80년대 미국에서 7여 년간 방영된 걸작 경찰 드라마 "힐 스트리트 블루스(Hill Street Blues)"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라치면 번스 휘하의 형사들은 사건 투입 통보를 받곤 했다. 예를 들어 그로버 공원에서의 칼부림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기 때문에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크리스마스 기분에 들뜬 분서의 경찰들은 명절을 축하하며 크리스마스트리라도 꾸미듯, 기꺼이 옅어진 녹음과 피바다로 어우러진 공원의 장식을 시작했다. 지난주에만 공원에서 열여섯 건의 칼부림이 있었다.


국내에 여러 번 출간된 시리즈 첫 작품 "경찰 혐오자"를 포함해서 시리즈 중간작들인 "킹의 몸값", "살의의 쐐기", "아이스", "조각 맞추기"가 나온 후 다시 앞에서 순서대로 "노상강도", "마약 밀매인"이 나왔습니다.(그전에도 몇권 나왔습니다만 제외하겠습니다.) 아마도 이제부터 순서대로 내줄 것 같은데 남은 시리즈가 엄청나게 남았습니다. 시리즈가 총 55권 정도(?) 되는걸로 알고 있는데 거기다 단편들까지 합치면... 개인 출판사인 '피니스 아프리카에' 출판사 사장님이 '87분서' 시리즈 전권을 내는 것이 일생의 숙원이라고 하시니 부디 책이 아주 잘 팔려서 숙원을 꼭 이루어 내시길 바래봅니다.

이 작품 "마약 밀매인"은 경찰소설을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 보셔야할 작품입니다.(뒷부분 '저자의 말'은 꼭! 나중에 읽으셔야 합니다.) 56년도에 써진 작품이지만 휴대폰이 없다는 것만 빼고 지금 읽어도 촌스러움이나 흔해빠진 설정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됨을 갖춘 일급 범죄소설입니다. 사실 '87분서' 시리즈 전부 그렇긴 합니다만. 전 요즘 자주 방영되는 국내의 수사, 범죄 드라마를 쓰는 시나리오 작가들이 기본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제발 좀 읽어봤으면 하는 시리즈입니다. 기쁘게도 이번 달 말쯤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The Con Man"이 출간된다고 합니다. 저를 포함한 '87분서' 시리즈 팬들에겐 올 한해가 상당히 즐거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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