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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평점 : 
특별한 이유 없이 시작되었지만 평생을 좌우하게 되는 사건이 되어버리는 일도 있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것 같지만 우리에게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부모 없이 둘이서 살고 있던 형제에게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형 츠요시는 정말 특별한 이유가 없었고 단지 이삿짐을 나르면서 본 적이 있는 곳,
그곳을 선택했다.
츠요시는 아무런 계획도 없었고 단순히 돈만 조금 가져오려고 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엄청난 살인을 저질렀고,
그의 지병은 그를 감옥으로 향하게 했다.
학생이었던 나오키는 갑작스럽게 형을 잃었다.
감옥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그는
학교에서도 살인자 동생이라는 차별적인 시선을 느껴야 했고,
당장 살 곳도 생활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건도 변변치 않았다.
그래서 대학의 꿈도 포기하고 겨우 졸업한 후 직장인으로 살아가게 되지만
가는 곳마다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사실은 낙인으로 옥죄어 온다.
그런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으로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내는 츠요시.
책을 읽으면서도 그의 행동은 참으로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 편지는 동생이 면회를 가기 전 일방적으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그의 편지 속에서는 형은 엄마의 목소리로, 가끔은 아빠의 걱정어린 시선으로
글로 담아 동생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측은하기는 커녕 점점 동생을 더 자유롭지 못한 구속으로 다가간다.
이런 부분이 읽으면서 동생 나오키를 더욱 극적인 인물로 서술해 가는 것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형의 이런 행동은 이해가 되기 보다는
오히려 보는 독자로부터 왜 이런 행동을 자꾸 하는 것인지 불편함을 유발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작가는 그런 불편함을 유지하게 해 소설의 종반까지 끌어간다.
그러면서 5장 '이매진'에서 그 모든 것을 풀어 젖힌다.
동생이 형의 면회를 가지 않고 답장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노래하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 된 상황에서도
형의 범죄로 활동할 수 없을 때에도
좋아하는 여인과 사랑은 할 수 있지만 결혼하지 못하도록
그의 부모로부터 종용을 당해야할 때에도
형의 일방적인 편지는 답답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결국 소설의 말미에서 밝혀진 것처럼
그 편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가 될 수 없고
오직 형이 자신을 위한 편지로
오랜 기간 타인을 힘들어하게 하는 도구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용서의 의미를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진정한 용서라는 것은 과연 누가 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누구도 요구할 수 없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없다.
오히려 형의 편지를 피해 달아나려고 고군분투하는 나오키의 몸부림이 너무나 안쓰럽다.
우발적인 살인을 하게 된 형,
그리고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된 동생,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피해자 가족,
피해자 동생을 피해자와 동급으로 보는 사회적인 시선...
그런 여러 관계와 시선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기에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글의 힘으로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고민으로 다가와 감동으로 느껴진다.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
그런 건 상상에 불과해.
인간이란 차별과 편견을 갖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동물이지."(p.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