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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공선옥 작가를 잘 모른다. 아니 그녀를 개인적으로 모른다기 보다 그녀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다.
그녀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님의 교직 퇴직 기념 문집 "어른아이 김용택"을 읽었을 때였다.
신인 소설가로 문인들 모임에 갔을 때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에게 김용택 시인은
"선옥아, 밥 묵자, 우리집 가자, 밥 묵자, 짐치에다가..."
라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김용택 시인의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일테데, 나는 괜히 공선옥 작가가 부러웠다. 자기 집에 가서 밥 한끼 먹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할까? 김용택 시인이 가장 아끼는 소설가가 되었다는 공선옥, 그녀의 작품을 꼭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을 때 이 책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때" 책 표지를 보면 말괄량이 삐삐같이 생긴 여자가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을 뒤로한 채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속 파인 옷을 입고 민들레 홀씨를 불고 있다. 공선옥이란 작가를 몰랐다면 가벼운 칙릿 소설쯤으로 여기고 읽기 패스를 했겠지. 이름이라도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이 책을 펴 들었다. 그녀의 이름을 믿으므로...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 부릴 기회를 잃었버렸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나는 너무나 안절부절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중의 일부를 인용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80년대초 계엄령이 내려진 어느 날 , 딸 다섯 중 네째 해금이는 친구들과 미팅에 나가서 몇 명의 남학생들을 알게 되어 모임을 만드는데 그 모임이 이름하여 "수선화 모임"이다. 해금,경애, 태용, 진만, 수경, 승규, 정신,승희,만영 모두 꽃같이 예뻐야 할 20살의 젊은이이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그들의 나이만큼 밝고 예쁘지는 않다. 계엄령 내려진 전라도에서의 삶, 가난하고 힘없고, 자유까지 없는 젊은이이기때문이다.
가난과 억압이 팔자 소관이라고 살아온 부모님과는 다르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이 젊음들은 서서히 자신들을 짖누르는 무언가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시위 도중에 죽어버린 젊은이, 죽어버린 친구 때문에 괴로워 자살하는 젊은이, 아빠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젊은이, 위장취업을 하며 노동 운동을 하는 젊은이, 학생운동하다 잡혀 억지로 군대에 끌려가 의문사를 당하는 젊은이, 내 자리가 어딘지 몰라 하염없이 헤매고 다니는 젊은이, 열심히 일하고도 착취만 당하고 월급도 못 받는 젊은이, 자기 아이도 아닌 아이의 아빠가 되려는 젊은이, 이 젊은이들의 젊음은 80년대에 실종되었다. 하루 종일 걸어도 행복한 연인에게도 먹고 사는 것이 고민이었고, 자유를 박탈하는 정부를 향해 울부짖어야했다.
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며 지금 당장 우리를 인간답지 못하게 몰아세우는 각종 힘을 향해 달린 젊음들.
라일락 향기를 즐기면, 쾌락을 쫓으면, 편리함을 쫓으면, 개인의 부를 쫓으면 죄가 되는 줄 알았던 젊은이들의 삶이 있었다. 그 삶의 그늘을 오늘까지 짐짝처럼 끌고 온 사람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의 편안함이 있다는 것을 지금의 젊은이들을 알고 있을까?
공선옥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나는 그녀의 아픈 젊음을 잘 안다. 밝을 수 없었던 그들의 청춘.
과연 그들이 가장 예뻤을때였다. 그리고 지금도 아름다울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