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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이성계. 조선을 세운 사람, 아들들을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잃어버린 아버지가 되고, 말년에는 함흥차사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타지에서 외로움에 힘들어했던 아버지.
한 나라를 세운 사람인데, 나는 "아버지"의 이미지로 이성계를 그리고 있다. 권력을 잡았으나 권력으로 인해 힘든 인생을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했기 때문이겠지.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알고 있는 권력의 슬픔 외에도 이성계의 또 다른 면을 보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무시당하던 북방의 한낱 무사에서 권력의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참 많이 궁금했다.
이 책의 시대는 고려말, 우왕 6년 지리산 근처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쳐부순 황산대첩의 하룻밤 이야기를 그려낸 이야기이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했으므로 결론은 이미 나 있다. 황산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결론보다는 어떻게 이겼을까가 이 책을 펼치게 만든 동력이다.
역사에 무지한 나는 이성계와 관련된 유적이 대한민국에 남아 있을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있다면 서울쪽에나 있을까? 대부분 북한, 혹은 중국쪽에 있지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까운 지리산에 있다니, 지리산이 우리 민족의 영산이 맞기는 맞구나 싶었다.
우리나라에 쳐들어와 백성들을 괴롭히고 재산, 식량을 뺏들어 가는 일본 무리들을 이때껏 단순히 왜구라고만 알았다. 오늘날 소말리아의 해적처럼 남의 재산과 목숨을 뻿어가는 못 먹고 못 사는 무리들말이다. 하지만 책을 시작부분을 읽으며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화살이 꼽히지도 않는 튼튼한 갑옷을 입고 기마대를 이끌고 있으며 수적으로도 월씬 더 많으니 왜구가 아니라 왜군이다. 다른 나라의 군대가 침입한 것이므로 철저하게 대비를 하고 막았어야지, 귀찮은 파리떼 쫓듯이 이성계로 하여금 나가서 이겨라 했다. 게다가 이성계를 시골 칼잡이로만 아는 몽골족 상위 신분 제찰사 변안열, 원나라 파견관 박티무르, 명나라 사신 수행사 박티무르가 지켜보는 가운데 명령적 체계의 우위에 있지도 않는 상태에서 말이다. 하하.. 일본 왜구를 얕잡아 본 건지, 이성계보고 나가서 죽으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여자이지만 사나이들의 뜨거운 우정, 변하지 않는 의리에 눈물 흘릴 줄 안다. 그래서 삼국지를 울며 웃으며 밤세워 읽었지. 이 책을 읽다가 뭉클했던 장면이 참 많았는데, 그중의 한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여기 모인 병사들은 남원성 보병들을 빼고는 모두 나의 기병대야. 나와 형제애로 피를 섞은 살붙이들이야. 처명, 퉁두란, 나무토루, 우수루, 옌즈하라 모두 나의 혈족이야, 많게는 수십년, 아니면 수년동안 매일, 같이 별을 보고 잤고 같은 해를 보고 달렸어. 대의고 충성 같은 것은 머릿속에 아예 담지도 않고 말이지."(P51)
고조부부터 아버지까지 원나라 벼슬을 살았던 함흥 지역 출신이었던 이성계는 원나라 사람들과 유대를 쌓을 수 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고려에 귀화하자 이성계도 고려의 장군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성계를 따르는 무리들중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귀화하여 이성계를 목숨처럼 따르며 지켜주는 것이었다.
사람을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결코 돈, 명예, 권력으로는 사람을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이성계가 가별치라는 사조직을 이끌고 나아감에 있어 그의 행보를 믿어 주고, 그의 지시를 어김없이 실천하는 사람들. 이들을 혈족이라 부른다. 피를 나눈 관계. 전쟁터, 일상생활에서 그가 보여주는 아량과 덕이 아니라면 이룰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적장 아지발도,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름도 버리고, 아내도, 아이도 죽여버린 비정의 사나이에게 우리 백성들이 아기장수라는 뜻으로 아지발도란 이름을 지어준다. 정도 많아라...우리 민족...
아지발도의 전략을 한 눈에 읽고 단계에 맞춰 싸움을 벌리는 이성계의 머리싸움이 재미나고, 4자 회담도 아닌데, 감놔라 배놔라 참견해대는 외국사신과 변안열때문에 열받아 책의 진도는 잘 나간다.
승리를 위해 여기저기 배치해 놓은 승리의 실마리가 눈에 띄여 읽는 재미도 있다.
어떠한 반전으로 황산전투가 황산 대첩이 되는지, 한 번 들 읽어보시라.
참, 안타까운 점. 하나. 이 책의 저자가 이 책을 출간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재미난 역사 소설을 더 많이 만드실 역량이 있는 분인데 안타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