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고 지적이며 유쾌하다. 이러한 이유로 2025년 최고의 책이다.
이런 부모를 가진 행운이 부러웠고, 그러한 행운에 감사할 줄 아는 다정한 어른인 것도 부러웠다, 그동안 무신론자로서 무언가 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종교와 과학에 관한 답답함을 과학적이면서도 경험적으로 이야기해준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신앙을 갖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삶.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신앙인의 삶이기에 특정 종교를 믿지 않아도,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며, 자신과 타인에게 다정해야 하고, 때로는 자신 보다 타인을 위해 희생 할 수 있어야 하며, 줄곧 옳다고 믿었던 사실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을 때도 힘들지만 받아들일 수 있어야 신앙인이라 생각한다.
과학적인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좋은 어른이 된다는 말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틀린 것을 인지하고 바꿀 수 있는 사람.
이렇게 글로 쓰기는 쉽지만 사실 쉽지 않다, 그렇기에 보고 배울 어른 보다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싶은 어른이 주위에 더 많은 이유이다,
50세, 나도 이미 주위에 본보기가 되어야 할 나이가 되어버렸다,
감히 저렇게 살아야지 라는 본보기는 될 수는 없어도, 저러지 말아야지 싶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읽고 쓰고 배우고 행하고, 고치는 일을 놓지 말아야지. 하고 새해를 맞아 새롭게 다짐해 본다,
이 책을 읽고 오히려 성경이 더 궁금해졌지만, 성경 자체를 읽을 엄두가 나질 않아서, 만화책으로 읽어보았다, 만화로 된 신약을 읽고 내가 느낀 바는, 예수님은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런 세상에서 천국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을테니.
그리고 역시 가장 궁금해진 책은 코스모스다, 당연히 구입했고 또한 당연하게도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고 싶었으나 한국에서는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여하튼 2026년 올해 목표 중 하나는 코스모스 완독이다, 조금씩이라도 천천히 끝까지 읽어 볼 것. 매일 느리지만 조금씩 달라고 있는 것처럼.





남들에게는 슬로우 조깅인 속도지만, 나에겐 꽤나 애쓰고 있는 러닝 속도다, 10K 마라톤 컷오프가 1시간 30분. 지금보다는 좀 더 빨라야 한다. 대구 마라톤 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다치지 않는 선에서 조금 더 애써보자,
잘하면 즐겁고 즐거우면 더 잘하고 싶어진다. 대게 모든 배움이 그렇게 학습된다. 즐겁게 하고 싶어서 좀 더 잘하고 싶다.
술, 밀가루 다 끊고 계란 ,닭가슴살 소량의 흰밥만 먹었다. 식욕억제하는 마운자로 주사도 맞았고.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중간에 정체기 때는 40시간 정도 단식도 했었다. 단주한지는 75일차 이다, 3개월동안 9키로정도 감량했다, 아직도 체지방을 3키로는 더 빼야 건강 몸무게이다, 지금 처럼 거의 매일 뛰고 근력운동 주 2~3회 하고 식단하면 언젠가는 이 지방들도 내 몸에서 좀 사라지겠지.
100세 시대를 이야기들 하지만, 그때까지 살기도 싫고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아마도 80후반쯤이지 싶은데, 대략 30년 정도 남았나...어떤 새로운 도전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긴 시간이다. 살아온 날들보다는 짧은 시간이지만 30년, 절대적으로 짧지는 않은 시간들. 점점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체육관으로 간다.
이 신들이 고대인들이 소망과 불안을 헤쳐나가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불경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리스 신화를 역사가 아니라 문학으로 읽었다, 내가 <하가다>를 대하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건 우리 조상들이 믿었던 것이라고, 여기에 지혜, 통찰, 시가 담겨 있지만, 이걸 진짜라고 믿지는 않는다. 84
부모님은 낮에 일하는 도중에 대두된 논쟁을 저녁 식사 때 까지도 이어가곤 했는데 이런 일들이 내 사고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부모님은 아주 복잡한 개념까지도 나에게 설명해주려고 애썼고 그것도 절대로 무시하는 태도 없이 지적이고 다정한 존중심을 보여주며 그렇게 했다, 나를 마치 작은 아이의 몸안에 갇힌 교수처럼 대했다, 부모님이 이러한 태도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과학자가 아닌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99
과학과 기술을 통해 서로의 삶을 보고 서로의 언어를 말하고 서로의 관습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광대한 우주 속 우리 세계가 얼마나 작은지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다정함을 키워야 한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당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내버려두라, 수천억 개의 은하 가운데서도 또다른 사람 하나를 찾을 수가 없을 테니까." 나는 우리의 원죄는 성이나 지식욕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잔인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죄해야 하는 건 그것이다, 큰 잔인함뿐 아니라 작은 것이더라도. 106
오류 수정이야말로 과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과학자들은 틀리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 오류를 범했다, 과학과 종교의 결정적 차이는, 나보다 앞에 왔던 사람들, 내가 그 어깨를 디디고 서는 선각자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준 사람(교사, 영웅, 멘토)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입증하면 좋은 과학자가 된다는 점이다, 그러면 과학자는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러니 좋은 목사, 랍비, 성직자, 수도사는 반대로 전통을 고수하는 이다,
아버지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과학자는 종종 '그거 아주 좋은 논증입니다, 내 생각이 틀렸습니다' 라고 말하고 자기 생각을 수정하고 다시는 이전 생각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과학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사실 이런 일이 지금보다 더 많아야 한다, 하지만 과학자도 인간이라 변화를 겪어내기가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맞는 말이다, 내가 틀렸어, 내가 실수했어, 내가 잘못했어, 이기적이었어, 치사했어, 어리석었어, 생각이 없었어, 미안해, 이런 말을 하기가 왜 그리 어려울까? 사람은 누구나 다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인데도? 121
그때는 너무나 평범하게 보였던 것이 이제는 성스러울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버지와 같이한 모든 시간, 사소한 일들, 대화, 우리끼리만 아는 농담, 조용한 순간들을 더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게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그러나 죽음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무언가의 부재를 겪지 않고는 그것의 진짜 가치를 알 수가 없다, 우리가 헛발질 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속죄하지 낳고는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없듯이.126
나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지구상에서의 작은 순간 하나하나가 의미 있다는 생각을 나 자신에게 계속 각인했다, 그리고 만약 삶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삶이 더는 소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언젠가는 틀림없이 죽을 테지만 지금은 살아 있고 그게 매우 운 좋은 일임을 되새겼다,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결국은 여행을 떠나기 저보다 더 행복한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삶이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게 아니라,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게 나에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 같았다, 나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 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 다, 아는 것이 축복이며, 기쁨을 얻으려면 때로 공포를 직접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우리의 시간은 얼마나 짧은지를 진심으로 인정하고도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자,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성장의 정의에 '두려움을 마주한다'는 의미가 들어가기도 한다, 무언가 힘든 일을 하고, 자신을 해방하고, 내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이 성인이 되는 관문이다, 운전면허를 따는 것처럼 심상한 일이라도 그렇다. 142
생명활동이 극도로 강력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일화이기도 하다, 아우구스티누수는 이렇게 사로잡힌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사악한 일로 생각했다, 사실은 통제할 수 없으므로 더욱 신비롭고 놀라운 것인데 아우구스티누수는 그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초월적 경험에서도 그러하듯 섹스는 자연에 굴복하기 때문에 신성한 경험이다, 우리는 계절의 변화, 일몰과 일출, 사랑에 빠지는 경험 등 우리 삶에 가장 큰 전율을 안겨주는 일들 앞에서 무력하다, 이런 일들을 통해 살아 있다는 사실의 막대함을 맛보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이를 어떻게 찬미하지 않을 수가 있나? 219
나는 달이 월경주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설명을 왜 들어본 적 없는지가 늘 의문이었다, 둘 다 한달을 주기로 일어나는 일이니까 당연히 상관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딸에게 이런 아름답고도 시적인 이야기를 해준다면 정말 특별한 일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머지않아 네 몸이 38만 5000킬로미터 높이에서 우리 주위를 도는 거대한 바윗덩이와 연결되고 너는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될거야, 신화 못지않게 멋진 이야기인데 애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249
나는 내가 엄청난 특권을 갖고 태어났다는 걸 안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세계 곳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또 부모님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셨기 때문에 마루하가 우리집에서 같이 살면서 내 삶을 더 큰 사랑과 자식으로 가득 채워줄 수 있었다, 이모든 것을 누렸던 건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고 내가 어떤 노력을 해서도 아니다, 그저 엄청나게 운이 좋았을 뿐이다, 순전한 운, 복권을 사지도 않았는데 당첨된 것과 비슷하다. 264
우주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든 우리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쁨을 느낄 것이고 고통을 느낄 것이고 거대하고도 광활한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로서의 존재를 다양하게 경험할 것이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 각각의 삶의 기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힐지라도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살았다, 우리는 이 거대함의 일부였다, 살아 있음의 모든 위대함과 끔찍함, 숭고한 아름다움과 충격적 비통함, 단조로움, 내면의 생각, 함께 나누는 고통과 기쁨, 모든 게 정말로 있었다, 이 모든 것이 , 광대함 속에서 노란 별 주위를 도는 우리 작은 세상 위에 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축하하고도 나을 이유가 된다, 343
봄과 관련된 전설들은 하나같이 수난의 시간이 끝나고 가슴 벅찬 기쁨이 찾아오는 이야기다, 모든 게 사라진 듯 보일 때 비밀, 감춰진 기적, 희망을 다시 찾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봄이란 그런 것이다, 재생, 재탄생, 부활,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이라는 주제에서는 종교적 이상이 자연과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식물의 생태로부터 영감을 받아 종교의식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 P85
나는 ‘3월‘이라고 하면 행진하다라는 동사가 생각나고 4일이라고 하면 앞으로 라는 부사가 떠오른다, 사실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어느 날짜를 택하든 상관없다, 어쨌든 3월4일은 회개하기에 다른 어떤날 못지않게 좋은 날이다, 회개의 날이 인간적인 결함을 자책하는 날일 필요는 없고, 옳지 않은 것을 떨쳐버리고 개인적, 철학적 미지의 영역으로 과감하게 나아가는 날이면 좋을 것이다, - P124
성인의 삶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해당하는 성인식은 사회와 문화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시실 성인식으로 기념하는 변화의 공통적 본질은 뇌하수체에서 생식샘 자극 호르몬이 분비되고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지고 섹스, 임신, 출산, 책무 등의 가능성이 새로 열렸다는 것이다, 킨세아네라, 바르 미츠바, 가톨릭 견진성사, 사교계 데뷔 무도회 , 스위트 식스틴 파티 등을 축하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파티는 생명 활동, 성적 성숙, 종의 보존과 관련이 있으며 그들이 죽은 뒤에도 DNA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공동체의 소망을 표현한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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