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엄청난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다가, 엄청난 지루함에 책을 덮어 버렸던 기억때문에 다시 나쓰메 소세키를 읽게 될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렇게 재미있다니.
올추석은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보내게 될듯.
이 생각만 많은 한량인 주인공에게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것은 내 여자를 먹여살려야 한다는 책임감뿐이라는게 뭔가 참 씁쓸하네. '먹는 존재' 인간이란 모든 형이상학적 사유를 뛰어 넘는다....
게다가 그는 현대 일본 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왠지 모를 불안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 불안은 사람들 사이에 서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야만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그는 그런 심적 현상 때문에 심한 동요를 느꼈다. 그는 신을 숭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한 매우 이성적이어서 신앙을 가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서로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신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었다. 서로가 의심할 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신은 비로소 존재의 권리를 갖는다고 해석하고 있었다. 따라서 신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일삼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은 신에 대한 신앙도, 인간에 대한 믿음도 없는 나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그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경제사정에 있다고 결론지었다.p158-9
그는 인간이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반대로 인간은 태어나서야 비로소 어떤 목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어떤 목적을 만들어서 그것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은 그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태어날 때 이미 빼앗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따라서 인간의 목적이란 태어난 본인 스스로가 만든 것이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그것을 마음대로 만들 수는 없다. 자기의 존재 목적은 자기 존재의 과정을 통해 이미 천하에 발표한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p179-80
그때 그는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활력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굶주린 행동을 단번에 실행하려는 용기와 흥미가 부족하니까 스스로 그 행동의 의미를 도중에 의심하게 된다. 그는 그것을 권태라고 부르고 있었다, 권태에 사로잡히면 논리에 혼란이 일어난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가 행위 도중에 '무엇 때문에?'라는 앞뒤가 뒤바뀐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은 바로 권태 때문이었던 것이다. p181
한참을 묵묵히 미치요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니, 그녀의 뺨에서 핏기가 점점 사라지면서 평소보다도 더 눈에 띌 정도로 창백해졌다. 그때 비로소 다이스케는 더 이상 오래 미치요와 마주 앉아 있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의 정분에서 나오는 서로의 말이 당장 이삼 분 안에 무의식중에 그들로 하여금 어떤 한계를 넘어서게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p239
몰래 옆방으로 가서 평소에 마시던 위스키를 컵으로 마시고 올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거리낌 없이 평소의 태도로 상대방에게 공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자기의 진심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기운이라는 일종의 장벽을 쌓아서 그것의 엄호를 받고서야 비로소 대답해진다는 것은 비겁하고 잔혹하며 상대방을 모욕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의 관습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입장을 취할수가 없게 되었다. 그 대신 미치요에 대해서는 조금도 비도덕적인 동기를 가지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니, 스스로를 비열하고 인색하게 만들 여지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가운데 다이스케는 미치요를 사랑했다. p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