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의 핵심은 새로움이 아니다. 아방가르드는 '새로움'과 '저항'의 결합이다. 새로움이라는 범주와 저항이라는 범주가 겹쳐지는 유일한 장소는 아방가르드뿐이다. 대중문화는 새로움을 내세우지만 주류 대중문화에는 저항이 없다. 아방가르드는 비판 정신의 은유이며, 아방가르드의 참된 정신은 '긍정성'으로 변화한 예술에 대한 저항이다. 20세기 초반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저항이 이후 대중문화화 자본주의에 포섭되었다 하더라도 아방가르드의 정신까지 종말을 고한 것은 아니다. 저항 정신이 종말을 고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아방가르드가 궁극적으로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저항 정신이 살아 있고 긍정성으로 변화한 예술에 대한 도전이 여전히 시도되고 있다면 아방가르드는 살아 있는 것이다. 아방가르드는 결코 죽지 않는다. 단지 다른 모습으로 재등장할 뿐이다. P117-118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건 아마도 어느 케이블 방송의 패션관련 프로그램이였던것 같다.

"참 아방가르드한 룩이네요"-근데 이거 한국말 맞나?- 뭐 이런 말을 진행자가 했는데

뭔소린가 싶어 사전도 찾아 보고 했지만 머리속에 딱 이거다! 싶게 정리가 되질 않았었다.

그렇게 궁금은 했지만 딱히 꼭 알아야 하는건 아니였기에

잊고 지냈는데, 요근래 읽는 책들 여기저기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이놈의 아방가르드...그래서 결국 도움이 될까 싶어 사회학자 노명우의 책<아방가르드>를 구매했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노명우.

알아먹게 써준다.

아방가르드를 구매하면서 함께 구매한 <인권>은 읽어 내려가기가 어찌나 힘든지

그 얇은 책을 며칠을 걸려 겨우 끝냈다. 그렇게 어렵게 읽었는데도 머리속에 남는게 거의 없다는게 더 허망하다.

그에 비해 장석준의 <사회주의>와 노명우의 <아방가르드>는 

읽기도 좋고 머릿속에도 가슴속에도 많은 것들이 남았다.


<인권>,<아방가르드>,<사회주의>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김규항의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이 각각의 다른 책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거대한 힘이 있다.

그것은 바로'시장 즉 자본'이다.

돈 때문에 인권은 목구녕이 포도청이란 말로 그 권리를 자의로 또는 타의로  버리거나 짖밟히고,

돈 때문에 새로움과 저항의 표상이던 아방가르드가 미술 애호가의 사치품으로 변질되고.

돈 때문에 가장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올라갈수 없는 자신의 계급속에서 절망한다.

그런 자본주의를 이겨낼수 있는 오래된 미래가 바로 사회주의가 아닐까.


김규항은 말한다. 남들보다 돈이 많은것 자체가 죄악으로 생각되어지는 세상을 만들지 않고선,

이놈의 자본이 좌지우지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를 끝낼수 없다고.

예수님 말씀, 그대로만 하자고.

"부자가 천국에 가는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것보다 힘들다"-이건 불가능하단 말이다.-

라고 말씀하신 그것 그 날것 그대로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



이렇게 불타오르는(?) 글을 남기는 중에.

일금 천만원 정도를 요청하는 전화를 받고.

기운이 빠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류를 다 사랑할순 있지만,

난  아직까지 아니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랑할수 없을꺼 같습니다.....


이상의 진보성, 현실의 보수성.

크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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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4-04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잘 몰라서 하는 얘긴데요, 현실에서 '못줍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건가요?

아무개 2014-04-04 11:43   좋아요 0 | URL
'못줍니다'를 못하니까
기운이 빠지는...뭐...킁!

후애(厚愛) 2014-04-04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근하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아무개 2014-04-05 14:06   좋아요 0 | URL
넵 후애님도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