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페이지.
그리 두꺼운편도 아닌데 다 읽어내는데 삼일이나 걸렸다.
가끔씩 피식거리며 김빠지는 소리로 웃거나,
또 그보다 훨씬 더 자주.... 오랫동안 멍한 시선으로 책장을 덮어야 했기때문이다.
물론 헤겔이나 칸트이야기, 또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소설작법에서 시간의 역할등.
내 깜냥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 때문에 읽는 속도가 늦어진것도 있지만,
중간중간 여러번 책을 내려놓고
보관함에 있던 책들중 언급된 책들을 장바구니로 옮겨놓고,
기형도의 산문집을 다시 들춰 보았고,
내 가슴 왼쪽에 가만히 손을 올려 놓아 보기도 했다.
마지막장을 덮고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제가 우는 날입니다...."라고 쓴다.
사랑이 또는 삶이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김연수는 매우 시적인 문장으로, 김영하는 아주 건조한 문장으로 답하겠지만, 나는 그저'치사-빤스'라고 말하련다. 사랑이나 삶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결국엔 빤스마저 벗어버릴 정도로 무장해제시키는 것이니까. '치사'에서 '빤스'로 다시 '빤스'에서 '치사'로 허무하게 왔다 갔다 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랑이고 삶이 아닐는지. 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