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토토와 똘똘이라는 요크셔 믹스 강아지 두마리가 있었다. 토토는 16세, 똘똘이는 유기견이 였던 관계로 정확한 나이를 알순 없지만 10세쯤에 별이 되었다.
지금도 이 아이들이 떠난지 3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생각만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미안함이다.
내가 돈이 더 많았더라면, 비싼 치료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치료했더라면 더 살았을텐데....
그렇게 방치해두고 고통속에서 떠나게 하지 않았을텐데하고
끊임없이 자책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이 아플때 제대로 치료도 못해주는
반려인은 자격이 없다는 생각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현재 나는 고양이 두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침대에서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내 곁에서 잠든 이 두녀석을 보면서 내가 이 아이들을 지킬수 있을까? 이 아이들이 떠날때 이 책의 주인공 노튼처럼
편안하게 보내줄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튼은 파리로 여행도 다니고 수많은 펜을 가지고 있는 아주아주 유명한 고양이다.
하지만 그가 정말 행복했던건 아마도 피터 같은 반려인과 함께 16년동안 깊은 유대감을 쌓은 것이라고 생각하다.
노튼이 암에 걸렸을때
피터는 정말이지 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노튼을 살리고자 하지만 결국 노튼은
사랑하는 피터의 품안에서 조용히 잠이든다.
얼마전에 지인의 고양이가 갑자기 고양이 별로 떠났다.
그 녀석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된지 불과 이틀만에 그렇게 홀연이 지인들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나의 고양이들도 언젠가는 떠나겠지.
나의 고양이들은 나와 함께해서 행복할까?
매일매일 사랑한다 말해주는것
가능한 좋은 사료와 모래를 제공해주는것
많이 많이 쓰다듬어 주는것.
이것이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데는 정말이지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하다.
때때로 힘에 부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가장 편안하게 거짓없이 행복하게 웃을수 있게 해주는
이 작은 네발 달린 털복숭이들의 존재감은
왠만한 큰 두발 달린 벌거숭이들 보다 훨씬 크다.
가끔은 이 아이들과 함께 할때만이 비로소 내가 순수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미국이나 유럽은 반려동물 사랑이 각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암담하다.
물론 선진국에서도 긴 여름 휴가철에 버려지는 동물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은 알고 있지만,
또 그만큼 대책도 세워져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다르다. 길위에 개와 고양이는(특히 고양이는 이유없이 요물이라 하여 더 미움받는다)
때로는 차사고로 때로는 보신용으로 그리고 더 많은 경우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다.
나는 일명 캣맘이다. 내 어머니도 그렇다.
사료값은 적지 않게 지출되지만
이것이 내가 살생한 수 없는 다른 생명들에 대한 죄책감을 모른척 할 궁여지책이다.
인간을 보면 우선 도망쳐야 살수 있는
길위의 생명들이 없는 세상..불가능한것일까?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