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려는 마음 없이 지식만 습득했을 때 우리의 마음은 "책을 읽어보니 나는 아직 괜찮아." 라며 지식을 이용해 교묘히 문제를 회피하고 합리화해버린다. 이것이 알코올중독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빠지는 함정이다. 잔뜩 웅크린 채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고만 하던 마음이 활짝 열릴 때 비로소 회복의 시작점에 서게 된다. p 25
몇권의 책들을 읽어보니 아직 나는 이 정도 까지는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회사도 잘 다니고 있고, 일주일에 한두번 운동도 하고 고양이들 밥, 약 잘 챙기고, 집안 상태는 늘 청결하고, 회사에서도 우수한 사원으로 인정받고, 책도 계속 읽고 있고, 간수치도 아직은 정상이고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라고. 문제가 되는 알콜중독자는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직장도 없고, 주변을 챙기지도 못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그랬던 동생 정도는 되어야 그러다 죽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병원에서 중증 알코올중독으로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술을 좋아해서 마시는 수준을 넘어 술을 간절히 원해서 도저히 마시지 않을 수 없는 갈망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본인마저 왜 이렇게 여러 손해를 감수하면서 까지 술을 포기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조차 모호한 상태에 이른다. 더 이상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술을 마셔봐야 죄책감과 수치심만 느낄 뿐인데도 계속해서 술을 마신다. 이것을 강박적인 음주하고 한다. 마치 마약중독자들이 법적 처벌과 죽음을 감수하면서도 마약을 끊지 못하는 것과 같다. p 37
사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어제 술 마신 것을 후회하고, 하루 종일 생각한다. 오늘은 마시지 말아야지. 그러니까 하루 종일 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하고 그렇게 하루 종일 술 생각을 하다가 퇴근하는 길엔 벌써 그날의 안주가 정해져 있다. 집에 오자마자 고양이들 챙기고 청소하고 씻고 배달 시킨 안주와 술을 먹는다. 정말 딱 해야 할 최소한의 것들만 하고 매일 술을 마시면서 마치 꽤나 잘 살고 있는 것 처럼 자신을 기만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술기운에 잠들고, 후회하면서 깨어나고 또 마시고 후회하고 그렇게 매일매일 후회하며 산지 4년이 조금 넘었다.
숙고 단계에서 준비 단계로 까지도 못 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병원에서는 중증이라 했지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왠지 괜찮을 것 같아서?
제정신에는 이 삶을 견디기가 힘들어서?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 이니까?
알코올중독은 죽어야 끝나는 병이라고 믿어서?
알코올중독에 걸렸다고 할지라도 술만 끊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끊으면 그때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술에 빠져 살았던 몇 년간 외면하고 감춰 왔던 문제들은 술을 끊는 순간 냉정한 채무자가 되어 하나하나 나를 찾아온다. 회복의 길은 그 채무를 같아나가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그래서 많은 중독자들은 회복의 길에 접어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회복의 길 주변을 배회하다가 이내 포기해버리고는 한다. p 62
이대로 살다가 죽는 일은 사실 별다르게 노력해야 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대로 살지 않으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대로 살지 않으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 목표도 뚜렷해야 한다고 하는데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오늘 시청한 한 방송에서 유튜버가 한 달 식비를 15만원 쓰는데, 다른 식자재가 꼭 필요할 땐 마늘을 살 수 없었는데 이제는 마늘을 살 수 있게 되어서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좋아했다. 그 순간 '나 생각보다 가진 게 많네...왜 집, 차, 반려인 등 없는 것만 생각하는 거지? 2020년 빚이 1억원이 넘었는데 현재는 빚도 없고, 딱히 아픈 곳도 없고, 반려묘가 있고, 안정된 직장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많은 시간을 가진 시간 부자인데 참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구나' 싶었다.
어떤 뇌 과학자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삶의 의미를 찾으라 하고, 어떤 심리학자는 삶에 의미 따위는 없으니 그저 하루하루
이렇게 저렇게 살아내는 거라고 한다. 큰 의미를 찾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결국 감사하는 마음 인 것 같다.
술을 끊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앞으로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고 나의 정체성을 바꾸겠다는 선언 인 것이다.
대단한 삶의 의미는 없겠지만, 지난번에는 마늘을 살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살 수 있으니 참 좋다. 라고 감사하며 살 수 있으면
그 정도면 됐지 싶다. 냉정한 채무자들을 맞이할 시간이 슬슬 다가오는 듯 하다.
중독자는 폐인이 될 때까지나 죽음에 다다를 때까지도 절주를 시도한다. 중독은 술을 원 없이 많이 마시는 병이 아니다. 중독은 죽을 때 까지 절주를 시도하고 실패를 반복케 하는 그런 병이다. p 129
중독자에게 있어 고통받은 마음이란 술을 마시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중독자는 술잔을 내려놓고 마음을 근본적으로 위로하려 하지 않는다. 차라리 상황을 악화시키고 괴로운 감정을 더 키우려 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술 마실 핑계이기 때문이다. p 146
"오늘까지만 마시고 내일부터 마시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은 중독자를 유혹하는 가장 흔한 중독성 사고다, 중독자에게 내일은 없다. 중독자는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술을 끊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 P97
중독성 사고에 빠지면 아무런 근거가 없더라도 미래에 어떤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예상해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일이 잘 풀리고 단주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더라도 중독성 사고를 극복하지 못하면 곧 실패할 것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힌다. (...)막연하게 파멸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스스로 파멸해 버리는 것이 때로는 안심이 된다. - P101
중독자는 수치심에 사로잡혀 있다. 수치심은 죄책감과는 다른 감정이다. 죄책감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배상하고 용서를 구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수치심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감정이다. 죄책감은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야겠다는 동기가 되지만, 수치심은 변화를 포기하고 실의에 빠지게 만든다. - P103
첫 잔을 피해야만 단주를 할 수 있다. 술을 마시는 횟수나 양, 알코올 도수를 제한해봐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중독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은 첫 한 잔의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첫 번째 잔을 마신 중독자는 두 번째 잔을 마시지 않을 능력이 없다. 술이 없는 무인도에 가서 술을 안 마시거나, 몇 개월을 폐쇄 병동에 입원해서 술을 안 마시는 것은 진정한 회복이라고 볼 수 없다. 회복의 과정은 술 없이도 대인관계를 맺고 스트레스를 풀며 감정을 처리하면서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술을 완전히 끊지 않으면 이러한 도전은 영영 보류된다. 새로운 삶은 술이 완전히 사라져야 시작된다. 일주에 한 번이든 한 달에 한번이든 술을 마신다면 여전히 술로 위안을 얻는 삶에 머물게 된다. - P132
감정적 성숙을 도모하는 사람이야말로 회복의 길에 안정적으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회복은 술만 마시지 않는 감정 업는 로봇이 되는 것이 아니다. 회복의 과정은 다양한 감정을 당당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챙기는 과정이다. - P166
"나는 어제도 또 술을 마시고 말았어, 영원히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한 가지 또는 한 순간의 사건을 통해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 단정 짓는다. 작고 세세한 사건 하나하나로 전체를 설명 할 수는 없다. 하나의 실패를 좌절로 단정 짓지 말고 극복하려는 마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 P169
자신을 칭찬하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신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 책망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실수이지 자기 자신이 아니다. 누구나 실수를 반복한 끝에 성숙한다. 그 성숙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충분히 잘해내고 있는 것이다. - P175
핑계일 뿐이다. 술은 몸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현재의 갈망감도 따지고 보면 이전에 마신 한 잔의 술에서 비롯되었다. 스스로 허락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술도 몸에 들어갈 수 없고 그 어떤 생리적 작용도 일으킬 수 없다. 첫 잔 술은 뇌의 중독회로를 켜는 스위치가 될 것이다. - P317
중증 알코올중독자조차 하루 정도는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단주에 성공하는 비법은 매일 아침마다 오늘 하루만큼은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영원히 혹은 몇 개월간 술을 참겠다는 다짐은 모호하다. 왜냐면 중독자는 바로 이 순간, 오늘 하루 동안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만 술을 미시고 내일부터 술을 끊어야지!"라는 생각은 애초에 말이 도지 않는다. 내일 어떤 일이 닥칠지, 오늘 이미 술을 마셔버렸는데 내일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 P327
중독자이기 때문에 한 잔의 술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이다. 중독자가 아닌 사람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 ‘한 잔은 괜찮을 거야.‘ 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당연히 술을 마시지 않는다. - P3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