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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9

 

 

캘리그라피 도전!!

서체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있는 분야였는데, 그쪽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할 기회를 찾지 못했었다.
워낙 컴퓨터가 발달하는 바람에 멋진 서체들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세상이 되기도 했고, 인터넷 일을 하다보니 글자를 써야 할 일도 드물어지니 나도 예전 실력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도 항상 내가 가진 재주를 살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맘속 한구석에 늘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캘리그라피라는 게 있다는 걸 접하고 당장 접수해서 오늘 첫수업을 받았다.
오전에 좀 더 일찍 출근해서 대충 업무 좀 마무리해 놓고 가게 문 잠그고 12시에 나섰다.
홈플러스에서 12시 40분부터 2시까지 수업이다.

1급 자격증에 도전해서 문화센터 및 학교 방과후 수업에 강의할 수 있을지...
이것이야말로 내가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분야다.
현재의 쇼핑몰과 병행해도 충분히 가능할거 같고, 캘리그라피 작품으로 단체티나 커플티같은걸 제작해서 상품화시킬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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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어머니 리더십
노유진 지음 / W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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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신사임당의 어머니리더십>
-저자 노유진

동사무소에서 빌린지 4주만에 반납했다.
퇴근후 밤에 잠깐잠깐씩 읽을 여유밖에 되지 않아 기본 대여기간인 2주후 연장신청을 해서 4주나 걸렸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취지는 신사임당을 배워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 남편 박병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을 혹시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첫째 목적이었고, 두번째로는 사춘기를 맞은 딸 유진이와 내가 일한답시고 방치했던 일곱살짜리 민우에게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엄마의 역할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선택했다.
신사임당은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께 효부였지만, 나의 효부노릇이라면 남편과 사이좋게 잘 사는 것만이 양어머니들께서 바라시는 간절한 소망이시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내가 간구하고자 했던 두가지에 대한 해답을 약하게나마 얻은 느낌이다.

신사임당이 자랄때의 친정환경은 매우 자유롭고 가난하지 않았으므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듯하다.
그럼 그렇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조선시대의 여자인데도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자라긴 어려운데 역시 특별난 데가 있었군~ 하면서 나와는 거리가 먼 이질감같은 게 껄끄럽게 느껴져 책을 덮을 뻔했다.
그런데 결혼부분부터 내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남편 이원수가 공부하기 싫어하고 심성이 나약한 사람이었는데도 남편 기를 죽이지 않으면서 채찍질하고 기를 북돋워 늦은 나이에나마 관직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기를 죽이거나 화나지 않게 채찍질하는 방법은 그녀의 말에 달려 있었다.
[그렇게 해도 좋겠지만 이렇게 하면 더 좋을것같다]며 은근히 돌려 말하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항상 자신을 더 낮추는 겸손한 태도에서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나는 남편을 무시해 버리는게 습관이 되어 있는데...ㅡ.ㅡ;;
이 책을 읽은 이후로는 남편을 대할때 한번 더 생각을 하고 말을 하게 된다. 어떻게 말해야 남편이 자존심 상하지 않고 받아들일지, 말할때도 나를 좀 더 낮추고 좀 더 부드럽게 구사할려고 조금씩 노력해보고 있다.
나도 하루아침에 되지 않지만, 남편한테서 미운 반응이 와도 이제는 나도 무디어져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게 좀 더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신사임당은 상대방으로부터 [당신덕분에... ]라는 화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는 지혜를 가졌다.
시어머니나 남편으로부터 [당신덕분에... ]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는데, 나는 언제쯤이면 이 단계까지 갈 수 있을까 싶지만 조급한 마음은 없다.
이미 15년 가까이나 이렇게 살았는데 뭐 ㅋㅋㅋ
앞으로 15년은 더 기다려줄 마음이 생겨졌다. 비록 청춘이 다 지나고 늙어버리겠지만 15년 후에 당신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예쁘게 잘들 컸소. 당신덕분에 내가 인간되었소...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라겠는가.
이 중 후자는 너무 내 과욕인거 같다만 크하하~
남편은 둘도 없는 성실한 사람이다. 내가 맨날 짠돌이라 놀리지만, 세월이 흐르니 이것도 많이 나쁘지는 않다. 나도 이제는 좀 적응이 된 건지 ㅋㅋㅋ
단지 지나치게 심하다는 것과 아직도 나를 믿고 턱 맡기지 못하는 불신이 문제인 게다.
거기다 아이들 교육에도 투자할 줄을 몰라서 내가 몰래 교육시켜야 하니 너무 힘들다. 이런 부분들만 좀 해소가 된다면 그럭저럭 살만한데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15년 후면 해소가 될려나?^^;;

신사임당은 훌륭하게 살았던 태임이라는 황후를 본받고자 자신의 호를 사임당으로 정하고 태임을 롤모델삼아 태교부터 자녀교육에 신경을 썼다.
스스로 올바른 생각과 마음가짐, 행동으로 본보기를 보이며 아이들과 함께 자신도 늘 글을 읽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에게도 스스로 알아서 즐기는 교육법을 실천했던 듯하다.
이건 나의 교육법과 일치^^
나의 교육법은 이거해라, 저거해라가 아니라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게 하여 스스로 해 보고 싶게끔 유도를 하는 편이다.
풍족하게 뒷바라지해 줄 여력도 없지만, 그렇게 해 줘 봐야 귀한 것도 모를 것이고 쉽게 포기해 바리기도 쉽상이지 싶어서, 하나를 하더라도 귀한 마음을 갖게 하고 정말 하고 싶을 때 하도록 권유를 한다.
거기다 본인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잘 되지 않을 때에도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게 되므로...

신사임당 책을 읽으며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삶만 생각했는데,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다.
바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았던 부분이다.

자기개발에 힘써서 훌륭한 작품들을 남겨 화가로서의 자신의 이름도 남길 수 있었던 사임당의 삶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본받고 싶은 롤모델이다.
이 탓, 저 탓, 이 핑계, 저 핑계로 항상 내 삶은 등한시되고 있었지는 않았는지?
나름 내 일을 갖고 있고, 그걸 즐기며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만족하곤 했는데, 이 책을 본 후에는 내 삶을 재정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졌던 많은 꿈들을 아이들 때문에 내려놓지는 않았는지...
나는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고, 글을 쓰고 싶고, 글씨(서예)를 쓰고 싶다.
미루지만 말고 지금부터라도 조금씩이라도 가까이하면서 살아야겠다.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내 삶도 살아야겠다.

효부는 따로 없다.
이렇게만 살면 그게 바로 효도다.
혹, 고부간의 갈등을 겪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심사임당이 했던 방법대로 끊임없이 나를 낮추는 방법을 시도해봐도 좋을것같다.
하나를 원하면 둘을 내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
쉽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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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어머니 리더십
노유진 지음 / W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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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사임당 일대기를 읽은 후에 이 책 읽으면 더 좋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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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친정엘 자주 못 가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 멀어서이기도 하고.....어쨌든 요즘은 일년에 한번 겨우 갈까말까...하는 정도다.
시댁이 강원도 해수욕장쪽이어서 여름휴가는 아주 당연히 매해 시댁으로 가야 하는게 또 이유중의 하나다.
근데 올해는 남편이 휴가가 없다고 해서 나 혼자 애들 델고 버스타고 강원도 갈 수는 없어서, 결혼하고 처음으로 친정으로 코스를 잡았다. 
여름이라 비수기인데다 크게 벌였던 일들도 잘 마무리되어 큰맘먹고 장장 9일이나 휴가일정을 잡았다.
그렇다고 빠듯한 일정을 잡은 건 하나도 없고, 단지 애들 데리고 가서 느긋하게 쉬고, 언니들이나 친구들 여유롭게 만나고 올 요량이었으므로 편한 마음으로 친정을 향했다. 
11세, 4세 된 딸과 아들을 데리고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을 향했다. 
부산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려니 참 많이도 변했다.
아마도 4호선이었던가?  지하철도 많이 늘었다.  내가 부산에 살던 11년전에는 겨우 1호선 뿐이어서 헷갈릴 일도 없었고 그냥 간편하기만 했는데 표 끊는 일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어디 완전 촌구석에서 살다가 부산간거 같은데...ㅋㅋㅋ
서울근교 경기도에서 살면서 외출은 거의 서울로 하는 서울내기가 된지 그래도 꽤 된 사람이다. 
근데 서울이랑 부산이랑 어째 이리 틀리다냐....ㅠㅠ
허긴 서울지하철은 교통카드로만 다니니 사실 표 끊을때 어찌 끊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정말 어렵다.  초보인 내겐...한참 헤매다가 지나가는 사람 도움으로 겨우 끊었다..ㅋㅋ 

노포동 지하철역에서 탑승하여 온천입구역까지 가는데 울딸은 마냥 신기해한다. 
모두 처음 듣는 역이름이라 생소하니 역이름이 모두 이상하다고 갸우뚱한다..^^;; 
온천입구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엄마집까지 20~30여분 걸려 반송에 도착했다. 
우와~~~!  정말 정말 많이도 변했다.
도로도 시원시원하게 여기저기 나 있고, 반송입구는 예전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사람 많기로는 정말 변한게 없고.....나는 반송에서 장사하면 완전 대박날것 같은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다...ㅋㅋㅋㅋ 
마중나오신 엄마를 따라 집에 들어서니, 곰팡이 냄새가 확 나는게 가슴이 아팠다. 
따닥따닥 붙은 집들 때문에 환기도 제대로 안되고 작은방이나 화장실은 햇빛도 들지 않고, 대낮에도 불을 켜야만 생활할 수 있으니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남동생네는 너르디너른, 햇살 눈부시게 빛나는 집에서 살고 있는데 엄마 모실려니 엄마가 싫다고 하신다. 
혼자 그냥 편안하게 살다가 죽지 뭐...그러신다...ㅠㅠ
엄마가 갈수록 성격이 더 모가 나는거같고 애기 같아져서 참 속이 상한다. 

부산에서의 첫날은 엄마집에서 자고, 다음날 작은애 낮잠 자는 틈에 큰 애를 데리고 근처 초등학교에 갔다.
오래전에 내가 다녔던 학교다.
학교도 참 많이 변했다.  새로이 체육관도 생겼고, 운동장도 좁아졌다.
아이들이 놀면서 사투리로 말을 하니 울딸이 웃는다.
엄마, 여기 애들은 사투리 쓰나봐~
여긴 부산이니까 당연히 사투리 쓰지~ㅋㅋㅋㅋ  울딸은 사투리쓰는 아이들이 마냥 신기한갑다.
이 학교는 초등5학년 겨울방학 즈음에 전학 온 학교였으므로 내가 실지로 다닌 건 단 한해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실 학교에 대한 정은 없는것같다.  성격도 워낙 내성적이었고, 소극적이라 두세명만 친하게 지냈을뿐 그냥저냥 졸업한 학교라 동창회나 반창회는 여즉 한번도 나간적이 없다.
그런데도 딸 아이랑 같이 손 잡고 학교를 둘러보니 감회가 참 새롭다.
내가 우리 딸 아이 나이때는 어떤걸 원했고, 뭘 하고 싶었는지....간절히 바라는게 뭐였는지....여러가지 생각들을 떠올렸다. 
이 학교로 전학오기 전 친한 친구들이 있었지. 
우리는 우정의 3총사야.....하면서 항상 같이 다니곤 했었지. 
기집애들......다들 어디서 어떻게들 살고 있을까....세월이 참 무심하다.

정말 정 들었던 중학교로 가 볼까 하고 보니 슬리퍼차림에 지갑도 안 가지고 나온 상태라 가 보질 못했다.  걸어갈려니 20여분 걸릴거같고 시간을 보니 저녁시간이 다 되어 가고....애매해서 그냥 돌아올수밖에 없었다.
집 바로 근처 재래시장엘 들렀다.
언제나 재미나고 경쾌한 곳이다.
친정에 오면 시장구경하는 재미에 뭐 살거 없어도 항상 둘러보곤한다.
반찬집에서 파는 김치들도 너무 맛깔스러워 보이고 과일, 야채도 신선해서 막 사고 싶어지고 식욕이 땡긴다.
내가 다닌 대학교도 바로 근처에 있는데 그 곳도 못 둘러보고 아쉬운 마음으로 남동생네로 갔다.
엄마는 며느리한테 뭔가 서운한게 있었든지 안 간다고 튕기셨다.
그래서 올케한테 슬쩍 엄마가 삐치신거같다고 했더니 바꿔 달라기에 바꿔 드렸더니 또 금방 풀어져서 갈 채비를 하신다...@@
사업체가 양산에 있어서 집도 그쪽으로 이사를 했길래 동생네로 갔다. 
버스편으로 다닐려니...흐매....정말 할 짓 아니다.
온천입구에 내려서 양산가는 버스 갈아탈려고 정류장 가려니 가까운듯하면서도 꽤 멀다.
노인네 모시고 애들 데리고 짐가방 끌고 가자니 금새 지친다.
거의 도착할 무렵 한대의 차가 떠나버린다.  20여분을 기다려서 겨우 버스를 타고 갔다.
참 편한 세상에 살다보니 이 정도도 이제는 견디기 힘들만큼 지친다....^^;; 
차가 있었으면 간단하게 갈 텐데....에고....차 없을땐 우찌 살았다냐...ㅡㅡ

동생이 나보다 먼저 결혼해서 조카들이 울애들보다 훨씬 크다.
큰애가 중3, 작은애가 초등6년이다.
조카들 둘 다 우리애들을 어찌나 이뻐들 하는지 가끔은 가까이에서 자주 보며 살고 싶어진다.
내가 일을 하기에 울애들은 거의 천덕꾸러기 신세를 못 면하는데 동생네 가니 동생도 올케도 조카들도 울애들 이뻐서 어쩔줄을 모른다...캬캬캬 
모두들 이래 이뻐하니 너무 행복하다...흑흑...미안하다. 울새끼들아.... 
그 날 저녁에 언니들이랑 다 불렀다.
내가 휴가오기 전에 막창을 주문해 놓고 떠나왔었다...쿄쿄
주소지를 동생네로 해서 말이다.
도착하면 식성좋은 울친정 식구들 모여서 한잔 할려구 20인분을 주문했는데 마침 낮에 도착되어, 저녁이 되니 먹기 좋을 정도로 잘 녹아서 지글지글 구워서 먹었다.  언니가 직접 키웠다는 유기농상추까지 가져와서 맛나게 잘 먹었다.
울친정 식구들은 정말 식성이 좋다...ㅎㅎㅎㅎ 
가리는 음식이 없고, 뭐든 정말 맛나게 잘 먹는다.
소주에 막창구이......정말 푸짐하게, 맛나게, 열심히 잘 먹었다.
형부들까지 합세했다면 턱없이 모자랐겠지만, 술고래 형부들은 빼고 언니 둘만 와서 그나마 조금 남았다.
남동생도 그동안 여러차례 사업을 벌이다가 다 말아먹고, 지금 하는 사업은 몇년째 매출이 꾸준히 잘 증가해서 상당히 안정되어 있었다.  계속 더 크게 벌이려는 남동생과 이쯤에서 안정감있게 진행하자는 올케와 조금씩 대립은 있었지만, 서로를 인정해주고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이 참 이뻤다.
동생네로 휴가를 가려니 올케한테 무엇보다 미안했지만, 올케는 자주도 아니고 첨 오시면서 뭘 그러냐고 편히 쉬다 가시라고 해서 참 고마웠다.
아침 일찍 동생과 함께 출근하면서도 밥이며 국이며 끓여놓고 나가는 올케한테 어찌나 고맙고 미안하든지....
조카들도 방학이라 쉬고 있으니 뭐라고 해 주고 싶어서 뭐가 가장 하고 싶냐고 물으니 통도환타지아에 가고 싶댄다.
그래서 할인권을 알아보다가 그만 아쿠아환타지아를 보게 되었다.
아쿠아환타지아 홈페이지 들어가 본 울딸이랑 조카녀석들......흐매......완전 환장한다.
고모, 아쿠아 가요.  정말 꼭 가 보고 싶었어요....하며 이 녀석들 얼마나 조르는지...
할수없이 그래.... 이 참에 고모노릇 좀 해 보자....싶어서 입장료를 알아보니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큰 조카는 중3이라 어른요금 55,000원, 나머지 두 애들은 40,000원, 거기다 구명조끼 대여하고 수영복 대여하고 그러면 20여만원? 
우와.....정말 비싸다.
다시 통도환타지아 가자고 하니 이젠 아쿠아만 생각나는듯 세 놈 다 고개를 젓는다...ㅜㅜ 
통도환타지아는 내가 초창기 멤버인데.... 통도환타지아 처음 생겼을때 1년쯤 근무했었나?  그땐 우리 직원들한테는 무료권도 많이 나오고, 지인들 오면 무료권도 주고 해서 참 좋았는데.....그때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아직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나도 구경가고 싶었는데 이 녀석들 도무지 말을 안 듣는다.
이 참에 정말 고모노릇 한번 빡쌔게 해 봐?  후~~  아무리 고민해도 이건 정말 아니다...^^;; 
그래서 최대한 저렴하게 갈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봤다.
알아본 결과, 인터파크에서 예매하면 30% 할인이다.
우와~~  대박대박!!!!
근데 요금표를 보니 골드기간이라 일년중 최고 비쌀때다.
그래서 종일권으로 끊지 말고 오후권으로 해서 5시간 놀아도 충분하니 오후에 가자고 겨우 꼬드겼다는...ㅋㅋㅋ 
올케한테 말하니 그럼 어머님 모시고 형님이랑 다 같이 가죠뭐....한다.  그래서 올케랑 나, 엄마, 애들꺼 다 해서 요금을 뽑아보니 맙소사, 5시간 놀고 한 30만원 깨질것 같다.
근데 울엄마는 거기 가셔서 뭐 하고 노신다냐?  했더니 올케 하는 말, 찜질방도 있는거 같던데 찜질하시면 되죠...한다...켁~  그 비싼 돈 들여서 찜질한다고라????
그 참 말이 안되는 거라 내 작은 심장으로는 멋진 고모되긴 틀렸나부다...ㅠㅠ
그래서 생각끝에 애들만 아쿠아환타지아 보내고 우린 통도사 절이나 구경하다가 근처 찜질방에나 가자고 합의하고 애들것만 예매를 겨우 끝냈다.
전날 5시까지 예매해야 한대서 겨우겨우 시간 맞춰 끊었다. 

인터넷을 딱 끄는데 남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울산에 계시는 작은아버님이 방금 돌아가셨단다.
순간 머리가 멍~했다.
미리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던 상태였지만 가슴이 울컥 아파왔다.
작은아버님의 사연이 남달랐기에.....
작은아버님은 물론 시작은아버님이시지만, 내가 어릴때부터 인연이 있던 분이셨다.
내가 중학교 다닐무렵 세 들어 살던 집 주인아저씨였다.
그땐 이발소를 운영하셨는데 참으로 부지런하시고 성실하신 분이셨다.
그때가 아마 서른후반쯤 되셨을 것이다.  부인이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고 몇해 후에 재혼을 하셨는데 새로 들어온 후처가 손이 커서 여기저기 빚도 많이 지고 살림을 완전 거덜내셨다.
작은아버님은 정말 평생 근검절약하시면서 돈을 모아 꽤 괜찮게 사셨는데 환갑이 되기 전에 집 한채없이 완전 거리에 나 앉으셨다.
이런 일을 겪으시기 전에 이 분이 지금의 내 남편을 소개시켜 주셔서 우리가 결혼하게 되어 더 특별한 인연이 되었었다.
결혼하고 시댁이 낯설때 작은아버님이 낯설지 않도록 더 배려해 주시고, 분위기도 잘 띄워 주시곤 하셨는데 이런 일을 겪은 후 완전히 삶을 자포자기하셔서 매일을 술로 지내셨었다. 
내가 병이 나서 병원에 가면 약 사 주지 말고 술을 사 주라.  얼른 가게....하시던 분이셨다.
항상 유머스러하고 웃는 얼굴이 멋있었던 분이셨는데 생각할수록 참 가슴이 아프다.
많이 병약해지신거같아서 다음주에 마지막으로 고향에서 친지들 모두 모여 얼굴 보자고 약속했었는데 그 한주를 못 기다리시고 눈을 감으신게다.

남편은 그 날 밤차로 내려와 바로 병원으로 가고 나는 다음날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아쿠아환타지아 어른들꺼는 안 끊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참 이기주의적이고도 현실적인 나다..ㅠㅠ
작은아버님이 부산에 계셨으면 엄마집에 머물때 한번 찾아뵐까 했는데 울산아들네 가 계신대서 그럼 다음주에나 뵈야겠다....했는데 이리 가실 줄이야.... 
다음날 병원에서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 새벽 일찍 장의차를 타고 장지로 떠났다.
장지는 가족묘가 있는 시댁쪽이어서 얼떨결에 시댁까지 다녀온 셈이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갑작스레 가셔서 산에 묻고 내려오는데도 영 실감이 나질 않는다.
시아버님 형제가 다섯분이신데 이 분이 마지막으로 모두 돌아가시고 이제 큰어머님과, 우리 시어머님, 작은시어머님들만 남으셨다. 
장례식 내내 참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아버님 자제로는 아들 둘에 딸 하나가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군대제대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이제 아들,딸만 남았으니 참 단촐했다.
작은아버님 형제들도 아무도 안계시고 여자들만 있으니 그리 큰 역할은 못하고 그 자식들과 사위, 며느리, 손주들만 상주를 하니 정말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손자라고 해 봐야 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고 다들 초등생이니....마지막 가시는 길이 그리 쓸쓸할 줄 작은아버님은 아셨을까...
이제 좀 마음이 편안해지셨을까..... 
이제 좋은 세상에서 마음 편하게 웃으실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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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
노무현 지음 / 새터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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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님 서거후 tv 몇 화면에서 <여보, 나 좀 도와줘>라는 책 표지가 얼핏 보여서 검색하여 망설임없이 구매했다.
노무현님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역사를 판단하고 싶어져서....
정치, 경제 분야에는 손톱만큼도 관심없는 나인지라 일단 제목에서부터 거부감이 들지 않아 바로 선택했다.
정치, 경제에 관심은 없지만 역사는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아래....
이 책을 주문하면서 또 다른 서적이 있나 검색하다가 <바보 노무현>을 한권 더 선택하고,
이어 오바마에 관한 서적 두어권이랑 이것저것 해서 대여섯권의 책을 골랐다.
<바보 노무현>은 예약제로 같이 배송되어 오질 않고, 주문했던 다른 책들만 먼저 배송되어왔다.
책을 받아서도 2-3일을 바빠서 읽을 엄두도 못내다가 지난 금요일 밤에 <여보, 나 좀 도와줘>를 꺼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화들을 중심으로 쓴 책이라 읽기는 비교적 쉬웠다.
책을 펼쳐든지 만 하룻만에 다 읽고, 다른 책을 들려다 다시 덮었다.
이 책에 대한 느낌이나 소견을 잊어버리기 전에 내 나름의 평을 작성하고 싶어 펜부터 든다.

이 책은 노무현님의 자서전이라 보기엔 너무 유치한 필적들이라 읽는내내 아쉬운 맘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노무현님의 젊은 시절은 너무나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격체라는데서 조금 놀라기도 했다.
대개의 위인들은 어렸을때부터 평범하지 않았다거나 뭔가 특출난데 반해 이 분은 정말이지 평범 그 자체인듯했다.
고시공부를 하던 똑똑한 형님 빽만 믿고 거드름을 피웠다거나, 별다른 의식없이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에 가담하였다거나 하는 부분들은
읽는 내내 실망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관심을 갖고 공부도 하여 비로소 훌륭한 인격체가 된듯하다.
덜 완성되었을때의 인격체로서 실수도 하고, 개념없이 행동하며 살았던 부분들에 대해 너무 솔직하게 고백한게 좀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솔직하고도 담백함이야말로 바로 노무현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만약 내 일생을 서술한다면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부분들을 이 분처럼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 인생에서 정말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일이 무엇일까...
지금껏 살면서 정말 내가 잘 한 일은 무엇일까...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어떤 모습으로 나의 자취는 남아 있을까....
죽기 전 그동안의 일생을 돌이켜 볼때 가장 아쉬운건 무엇이 될까.....
여러 생각들을 하면서 단숨에 한권의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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