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으로 피는 신체 기능을 방해하는 화학 부산물을 제거함으로서 생명을 지탱한다. 한마디로 정화다.
피의 은유는 영적 몸인 교회가 가진 고질적 문제인 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개 해 준다. …… 피가 몸의 유해 대사산물을 씻어 내듯이 용서도 참된 건강을 저해하는 죄라는 폐기물을 씻어낸다(242-3).”
필립 얀시의 글은 18년전 「양과 목자」를 첫 도서였다. 이 책을 읽고 심장을 저격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글의 섬세함과 정교함이 짧을 글이지만 강하게 남았다. 그림을 그리듯 영상을 흘러보내듯 글이 참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폴 브래든 박사와 필립 얀시 이 책을 어떻게 그려낼까?
본서에서 그려지는 폴 브랜드 박사의 모습은 마치 책 136에
“예수님의 사명은 질병 퇴치가 아니었다. 그분의 사명은 개개인을 섬기는 것이었는데, 마침 그중일부에게 질병이 있었다. 그분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사랑과 긍휼을 느끼기 원하셨다.”로 예수님의 사명을 묘사해 내는 부분이 있는 데 책 읽노라면 폴 브래드 박사가 고백한 예수님의 모습이 예수님을 닮은 삶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서로의 거울이 되어 주고 있는 듯한 폴 브랜드 박사와 필립 얀시의 필적이 본서를 통해 드라마틱하게 드러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책표지를 펴지 못하고 「몸이라는 선물」의 제목을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를 나 자신으로만 생각했었지, 한 번도 나와 몸을 따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제목을 보는 동안 나와 몸을 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몸에 선물이라는 아름다운 수식어가 붙어 있다니. 과다한 스트레스로 과민한 육체 말할 수 없고 약을 먹어도 통증은 그 때일 뿐 몸이 아플 때면 통증을 주는 부위를 도려내고 싶고 꺼내서 씻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몸을 대하고 생각할 때 항상 그러한 자세였다.
책을 읽으면 문뜩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내가 주인으로 있었던 삶에서 나의 주인이 그리스도로 옮겨 간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아는 당연하고도 중요한 생각.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니며 이후 우리는 성경과 본서에서 말하듯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내 맘대로 살던 내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다. 여기서 삶의 형태, 삶의 모습 살아가는 과정과 태도에 대해서만 생각해봤지 몸 자체에 크게 집중하지 못했던 거 같다. 함부로 대하던 나의 몸이,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면서 내 육체(내 몸의 건강)도 귀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단순히 육체의 건강을 넘어서 시편에 139편 14절에 개역한글에는 “신묘막측”이라 표현하고 개정에는 “심히 기묘하심이라”로 사용하여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찬양하듯이 심히 기묘하게 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더 소중히 여겨야 함을 배우고 깨닫게 해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영접함, 그리스도인 됨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준다.
“그리스도의 몸에 합류하는 과정이 처음에는 손해처럼 보일 수 있다. 내 자율성을 잃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련과 재물과 재능을 바탕으로 남들과 경쟁햐야 했던 옛 가치 체계를 버리고 머리이신 그분께 헌신하면,
역설적으로 내게 갑자기 해방이 찾아온다(88).”
글의 한 부분이지만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에서 그리고 각자의 고통에서 온전한 해방을 경험한다는 머리 속 이론이 심장까지 와닿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글은 매우 정교하고 매혹적이며 아름답고 몰입감이 높은 책이다. 때로 역서를 읽노라면 앞뒤문장을 여러번 읽어도 원서를 읽고 싶을 정도로 답답함을 느끼는 데 이 책은 역자와 출판사의 오랜 노력마저 눈에 들어올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