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만 다니지 말고 교회가 되라
권준 지음 / 두란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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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을 후벼 파는 책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손에 잡고 눈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본서의 저자인 권준 목사님은 야고보서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교회가 가져야 할 사명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1세기 교회에게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을 꾸짖었던 것과 같이 야고보서의 담긴 메시지를 재조명해 봄으로 21세기 잠자는 교회들의 믿음을 일으키고 무너진 그리스도인들의 인격을 회복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본서를 저술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본서를 읽으며 놀라웠습니다. 심장을 후벼 파고 가슴을 두드리는 듯한 강도 높은 제목과 달리 본서의 내용을 아주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감돌았습니다. 권준 목사님의 글은 마치 연한 순과 같은 물줄기가 바위를 타고 내려 어느새 모나고 각진 바위를 둥글게 깎아 내고, 작은 틈의 열어 물길을 열어 내는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시련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뢰다.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이다.”(62)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에게 상주시는 분이다.”(65)

   “부흥은 온전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온다.”(74)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용서하셨건만 우리는 자녀가 소중하면 소중할수록 과거를 문제 삼는다.”(78)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지면 아무런 차별 없이 구원을 허락해 주신 그리스도를 뜨겁게 느낄 수 있다.”(80)

   “매 순간 하나님을 의식하라. 하나님을 의식할 때 위선은 사라지고 스스로에게 진실해진다.”(107)

   “용기를 구하는 기도와 말씀에 가까이 나가려는 시도는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변화시킨다.”(175)

   “겸손은 막연하게 끝없이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습 그대로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204)

   “우리가 우리 삶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전부를 알 수 있게 된다.”(271)

 

   위의 열거된 몇몇 문장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교회를 향해 어떤 한부분만을 강조 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두를 표현해 낼지 모르지만, 교회가 거룩함과 거듭날 것과 사랑, 용서와 관용, 겸손과 섬김, 기도와 말씀 그리고 복음 전파에 힘쓸 것 등등 교회의 사명에 관해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교회마다 주신 사명이라는 말로 부분적인 강조와 부분적인 헌신이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마다 주신 사명이라는 부분에 일부 공감하는 바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강조가 약하되어 권준 목사님이 강조하듯 잠자는 교회가 되어 버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사람들보다 더 비인격적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문을 열어가며 “교회도 리콜해야 한다.”라는 이 짧은 문장은 많은 것들을 상고하고 해주었습니다. 그와 함께 던지는 질문은 ‘교회는 과연 믿을 만한 곳인가?’(13) 였습니다. 교회는 바로 나인데, ‘나는 정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믿을 만한 사람인가? 아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을 받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인가?’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한국교회사 속에 그리스도인이나 믿지 않는 자들 모두에게 목사님이라면 존경받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콧방귀를 뀌면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자기들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지만 교회와 믿는 자들로 인해 예수님의 이름을 비방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 말씀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3:5) 저의 삶에 어느 한 자락에서라도 예수님 없이 예수님의 사람인척 살아왔던 제 자신의 모습을 먼저 회개했습니다. 주어진 위치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고, 하나님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드리기 원하는 마음만 가진 사람이 아닌 그 마음에 행동하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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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별이 되어 - 김양재의 가정 잠언록
김양재 지음, 추덕영 그림 / 두란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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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재 목사님의 도서나 설교를 통해서 느끼는 것은 쉽게 귀에 들어오지만, 부드럽게 들어와 가슴 속에 강렬히 머무는 메시지 전달이 늘 인상 깊습니다. 믿음 안에 하나 된 가정 그리고 여전히 가족 구원에 숙제를 안고 살고 있는 모두 가정에게 주는 김양재 목사님의 본서를 통해 마음이 참 따뜻해 졌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자녀이고, 부모이며 그리고 아내와 남편이됩니다. 어느 누구도 부모 없이 이 세상에 난 사람없고, 가정은 부부의 만남으로 인해 형성됩니다. 이렇게 본서는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어조로 성경적 믿음의 가장, 성경적 아내, 성경적 남편, 자녀 그리고 부모의 모습을 그려줍니다. 속이 다 시원한 것은 김양재 목사님을 통해 듣게 되는 성경적 교훈과 적용에는 어떤것에서도 세상과의 타협은 용납하지 않으며, 오직 성경이 말씀하시는 만큼만 전달하시는 그 힘이 문장마다 느껴집니다. 많은 문구들이 가슴에 남아 마음을 따뜻하고 풍부하게 해주었지만, 253페이지에 소개된 글입니다.

 

“엄마가 무관심했기 때문이야.”

“아빠가 폭력적이었기 때문이야.”

“가난했기 때문이야”

“나는 학대를 당했기 때문이야”

이런 것들은 내 고난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죄와 고난을 환경 탓으로 돌리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은 ‘내가 옳다.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는, 내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결정적이 악입니다.

 

나의 삶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모든 게 환경 탓, 부모님 탓, 동생 탓 그리고 모든 좋지 않은 상황에선 남의 탓을 했습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상대방의 허물이었고, 나는 깨끗하다는 착각 속에 살았습니다. 말씀 속에 나를 잘 들여다보니 심지어 하나님 탓도 하곤 했습니다. 남과 비교하며 공평하신 하나님을 불공평하신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고,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며 하나님을 원망했던 모습들도 떠올랐습니다. 말로 할 수 없는 인생의 아픔을 겪은 후에 참 괴로웠습니다. 그 안에서 감사한 것 위의 본문을 통해서 다시 깨닫게 해 주신 것과 같이 내 죄를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었고 나의 모든 아픔과 슬픔도 씻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가장 미련했던 것은 나는 효도 하지 않으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사랑만 받고 인정만 받으려 했던 것과 따뜻한 부모상이 되어 주지 못하면서 기업으로 주신 자녀를 내 뜻과 어긋난다고 내 마음 대로 하려 했던 것이었습니다. 본서를 보며 느꼈던 것은 나는 가족을 위해, 가정 천국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지도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가족들이 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노력하기만 바래왔던 내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본문 243페이지의 굵은 글씨의 한 문장이 깊이 세겨지네요.

 

책을 보며 추천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성경적 가치관을 통해 건강한 가정을 세우고 싶으신 분들, 가족 구원을 이루고 싶은 분들, 부부와 부모, 자녀와 관계에 갈등이 깊으신 분들로 점차 범위가 확대되는 것을 느낍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아픔들이 치유되고 소망이 넘쳐흐릅니다. 먼저 잘 섬기겠습니다. 열심히 섬기겠습니다. 예수님이 세워주신 천국가정에 행복을 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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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전도 - 세계적인 기독교 미래학자가 예측한 전도 불가능 시대의 전도법
레너드 스위트 지음, 유정희 옮김 / 두란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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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전도의 실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삶 자체이다.

 

즉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는 삶과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성을 듣고, 보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도록 도와주며,

 

하나님의 주도에 응답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 사람들이 이미 그곳에 계신

 

예수님과 접촉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넛지전도 56 中

 

 

 

 

 

 

 

말 그대로 “전도 불가능 시대”라고 외치며 기계적 헌신과 노동을 통해서 행해졌던 행위에서 온전한 헌신과 영혼 구령의 열정을 재정비시키는 책이다. 영혼에 관심에 대하여 잠자고 있던 마음을 깨우고, 전도 불가능이라는 잠재된 부정적인 생각을 부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감각했던 모든 감각을 민감하고 예리하게 살려주는 책이다.

 

넛지 전도에서 소개하는 28-34의 ‘넛지 전도의 5가지 기본 토대’와 ‘넛지 전도의 3가지 공식’을 상고할 필요성이 있다. 넛지 전도의 3가지 공식을 소개하면 '1.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2. 빠르게 확장하라, 3. 삶으로 예수님을 보여 주라' 것이다. 우리를 향한 끝없는 하나님의 관심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점진적이지만 폭팔적인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매순간 맛보아야 할 때이다.

 

넛지 전도란 전인격적인 행동을 통해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이라 말한다. 책의 앞부분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공격적인 전도!, 믿는 사람들만 알아듣는 전도!(소통하지 않는 전도!), 심하게 절제된 전도법으로 인해 드러났던 오점들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독교인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해왔다. 구별됨과 구분의 차이를 계속해서 혼돈하고 있다. 강제적전도! 협박식 전도! 전도하다가 불신자와 싸움을 하고, 논쟁을 펼치는 모습을 볼때에는 같은 믿는 사람이지만, 만일 내가 저와 같이 복음을 들었다면 나도 예수님을 만나러 나가는 데 시간이 참 한참 걸리겠다고 생각을 해본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바쁜길 가는 사람을 억어지로 붙들고 그것도 2:1, 3:1까지 괜찮다 무더기로 붙어서 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전도 역시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 열정만큼은 멋있었지만 오히려 그런한 복음 전도로 인해 멀리서 교회띠나 복음전도지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멀리 돌아서서 피해가게 만들어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복음씨를 뿌린다는 것이 마음 깊이 공감이 간다. 전도의 열매를 맺어가기가 그리고 그 열매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을 인정한다. 자라게 하시고 열매맺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신데 먼저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정직한다면 복음을 듣는 스치는 사람들에게도 점차적으로 스며들어 역사를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가 솟아오른다.

 

마음이 아프고 아려온다. 신학부 시절 선교학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중간에 “예배드리고 찬양할 때에는 거룩한 척, 믿음있는 척 온몸과 삶을 다 바칠 것처럼 두손 들고 하면서 돌아서서 학교 정문 나가기도 전에 서로를 비방하고 믿는 사람들 안에서도 하나 되지 못하고 복음 전파의 일은 하고나 있는 거니!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으면서 누구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냐! 학교 오가는 길에라도 옆에 앉은 한사람에게라도 매일 전도하는 습관을 가져라!”라면 하셨던 따끔한 충고의 말씀이 떠오른다. 7-80명이 앉아 그 말을 들었을 때에 우리는 갑자기 조용해 졌고, 아마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10년이 훨씬 넘은 세월을 말을 되새겨 보니 요즘 나의 전도는 부끄럽지만 기계적이고 의무적 행위였다라는 생각에 멈춰선다. 내 입술로 자주 종종 “우리의 삶이 복음을 전하는 통로이며, 우리의 얼굴이 전도지입니다.”라고 말은 야무지게 해왔다. 그것도 참 부분적이었다는 것이 넛지 전도에 나의 삶과 마음을 비추어 본다. 저자의 말대로 제자도를 회복해야 할것같다.

 

눈과 귀, 냄새와 촉감 그리고 맛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해야한다. 내 손에 들고 있는 전도지 중 한가지에는 "더 이상 망설이지 마시고 예수님을 만나세요!"라는 문구가 있다. 익숙해서 당연했던 이 문구가 내가 만날 수 있도록 도왔었나라는 생각에 이 문구를 대할 때마다 심장이 고동치다 못해 터져 버릴듯 뜨겁게 요동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계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전하지 못했다. 성경 책 속에 나의 은혜 속에만 예수님을 가둬두고 세상 밖에서 살아계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껏 표현하지 못했다. 이것이 나도 모르는 순간 특권의식 속에 사로 잡혀 천국의 비밀한 것들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은 보지 못하고 믿는 나만 알 수 있다라는 사고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거두 절미하고 구별된 장소와 구별된 사람들 안에서 부분적으로 믿음있는 척 예수를 전하지 말고. 교회 안과 밖에서 한결 같이 예수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갈때에 레너드 스위이 말하는 진정한 넛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서평을 마무리하며 빌립보서 1장 20-21의 말씀이 떠오른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내가 사랑하는 말씀 중 하나이다. 이 책을 보는 내내 하루에도 몇 번씩 입술로 고백되었던 말씀이다. 사도바울은 내 몸에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고, 내 몸을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기위함이라 고백하며 전생애와 삶을 주님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다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존귀하게 여겨주시기 위하여 몸을 찢으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아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사랑에 감격했기 때문이다.

 

이 감격스러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것이 바로 넛지 전도이다. 모든 감각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경험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본서가 예수님의 사랑을 전인격적으로 전하도록 회복시키고 무장시키는 것을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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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바꾼다 - 망가진 세상에서 부르는 회복의 노래
매트 챈들러 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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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이고 복음 중심적인 사람은 결코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하나님도 언제나 연미의 마음으로 우리의 죄를 다루신다. 그

분이 우리의 죄를 다루시는 것은 사랑하는 우리가

죄의 구렁텅이에서 뒹구는 꼴을 계속해서 보실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창피를 주거나 우리를 위협하기 위함이 아니다.”(『복음이 바꾼다』 202中)

 

 

 

책을 보는 내내, 요즘 나의 생활과 삶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 속에 숨은 돌덩이들은 파헤쳐 던져버리고, 마음을 복잡하게 하며 늘 갈등하게 했던 마음속에 뿌리내린 잡초와 우거진 엉겅퀴들이 뿌리채 뽑아져 내던져 불에 태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속이 다 시원하다. 유쾌, 통쾌, 상쾌 그리고 명쾌하다라는 표현들을 노트에 수차례 적어가며 마음과 머릿속이 정돈되어 참 행복했습니다.

혼자서 말씀을 보고 듣고 묵상할 때에 위험한 것 중에 하나는 자기식의 판단과 정점에 머무른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조명해주시고 알려주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내 자신을 속이는 결론에 도달했었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표현이 좀 과장된다고 할 수 도 있겠지만 “복음이 바꾼다”는 저를 위해서 출판된 책이 아닌가란 표현을 해봅니다. 그래서인지 프롤로그에 기록된 문장이 다시 한 번 머리를 스치네요. ‘이 책은 바로 당신을 위한 책이다’(17)

내면에 깊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저에게 위로의 말들로 다독여 주시고,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슬픔과 좌절로 주저 앉아있던 저에게 일어나라 다그쳐서라도 나를 바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실감나게 와 닿았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익숙해지고, 당연해지면 내 자신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저자는 69~75에서 자신의 네 가지 도구를 내려놓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①나를 의지 하는 마음을 내려놓다. ②다른 사람의 평가를 내려놓다. ③ 세상 쾌락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다. ④종교를 위한 종교를 내려놓다. 주님의 은혜와 신앙생활에 익숙해지면, 나 자신의 도구들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남은 말씀 앞에 통제 시키려 들면서 정작 나는 이 말씀은 배제하고 저 말씀은 받아들이며 구속의 은혜를 뿌리 깊이 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칭의와 양자의 과정은 받아들이려 힘쓰고 이해하려 들지만 성화의 과정은 ‘해야 하는 데…’로 그칠 때가 많습니다. ‘성화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입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자녀만을 위한 것이다’(119)라고 표현하듯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인데 이유와 핑계가 많은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 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자녀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리를 다하고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통탄할 노릇입니다. 이후의 문단에 참 멋진 표현들이 있습니다. ‘성화는 우리가 값없이 받는 선물이라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는 일이다. … 우리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진행되는 과정이다.’(118)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는 자꾸 무언가 내가 했고, 내가 했더니 내가 이렇다는 것이 참 쉽게도 나옵니다. 본서 전체를 읽어보면 우리의 행함과 움직임과 칭의, 입양, 성화, 살림, 죽음, 믿음 등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다시 주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해서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고 나 자신이 바꾸려 하니깐 안됐던 것임을 책을 통해 다시 새롭게 생각해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 사람으로 슬픔도 하나님이 주신 감정 중 하나라고 여기긴 했지만 그에 대한 대처법에는 참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이 책을 보는 중에 ‘슬픔에 대한 성격적 태도’(93-99)에 한참 머물러 섰습니다. ①내 죄를 분명히 보게 되다. ②죄에 대해 비통하게 되다. ③기꺼이 죄를 고백하게 되다. ④죄에 대한 미움과 새 마음을 받다. 독자의 말을 조금 더 빌자면 ‘슬픔이 죄와 나쁜 태도의 필연적 결과로 찾아오지만,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헛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던 것을 버리고 성경적인 슬픔, 경건한 슬픔을 느껴야 한다’는 의미로 위의 네 가지를 말했습니다. 나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판단의 결과인 슬픔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 시키려 했던 보호막과 방어막으로 사용했었던 모습이 떠올라 괴로웠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며 내 자신이 깨어지고, 생각과 고정관념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자아(고집)가 여전히 생기발랄하게 살아서 주 하나님 아버지와 의 깊은 관계를 훼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웃사랑에 관한 교훈에서도 가장 중요한 본질이자 놓치고 있었던 핵심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면 이웃사랑은 당연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184-5). 모두가 나 자신 나의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비관적이고 특별히 우리나라는 우리라는 표현으로 울타리를 치고, 넘어가지도 넘어오지도 못하게 하는 못된 버릇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데 내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았던 그러한 마음들이 있다면 뿌리째 뽑아지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단원의 작은 제목이 ‘전부를 팔아 복음을 사라!’는 표현부터 부드럽게 타고 들어와 심장에 콱 박히네요. 전 생애와 삶을 드리겠노라며 울며 매일같이 기도합니다. 방금도 금요기도회를 드리는 순간 그와 같은 고백을 했지요. 그럼에도 전부를 드리기 보다는 부분적으로 헌신하고 주어진 시간에만 올인하고 틈을 타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살고자하는 욕망이 강한 사람인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본서는 제가 늘 머리로 알고 마음을 다해 생각하는 척만 했던 복음과 사명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성경적 교훈과 가르침인 ‘세상적인 어떤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복음뿐이다!, 복음이면 다된다!, 복음이 아니면 안된다!, 복음으로 살아라!, 복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말씀으로 심령 깊숙이 끊임없이 고동칩니다. 감성에 젖어 머뭇거리고 당연하고 익숙한 신앙생활로 은혜를 값없이 여겨 이성의 판단은 흐릿해지고, 죄가 죄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혼란의 세대에 이 책은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에게 중심을 잡아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에필로그에 영적빈혈, 영적과식 그리고 영적비만에 대한 표현들이 참 흥미롭습니다. 이후에 모든 분이 궁금하신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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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 故 하용조 목사의 따뜻하고 그리운 말모음
하용조 지음, 이성표 그림 / 두란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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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성도들이 그렇게 많이 회개에 대한 설교를 듣고도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 ‘후회’를 했기 때문입니다. … 회개에는 죄를 후회하고 슬퍼하는 애통이 뒤따르지만

슬픔 자체가 나를 바구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64 中

 

 

「나의 사랑하는 여러분에게」서 故하용조 목사님을 통한 하나님, 믿음, 예배, 순종, 고난 그리고 인생과 겸손 등등에 관한 가르침들을 한데 모아 다시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온누리교회와 두란노 서원은 믿는 자들에게 도전과 경험을 제공했었고, 하나님께서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행하신 기독교 문화정착은 실로 극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대에 발맞춰 개척자적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한 것들과 보물들을 한국교회에 드러내기 위해서 수고하신 목사님의 노고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이 책에서 느껴집니다.

이 책은 고인의 사역의 업적을 담은 것도, 고인의 이력을 나태려는 것도 아닌 순수하게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들을 전하실 때에 말씀과 삶이 물과 기름처럼 동떨어진 것이 아닌, 물에는 물과 같이 기름에는 기름같이 하나되고 연합되어 어우러진 교훈의 말씀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글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책을 통해서 선인들의 노력을 담을 수 있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1980년 두란노 서원을 설립하도록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는 목사님을 직접 뵌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몇 번 책을 통해서만 만났고, 그 분의 이름만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 파노라만 영상처럼 스쳐 지나갔으니 어떠한 수식어도 필요 없으셨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들려진 갑작스러운 소천 소식에 다시는 ‘어떤 것을 통해 만날 수 없다’라는 생각이 자리했고, 뭔지 모를 절망감과 이별에 대한 서운함도 차올랐습니다. 목사님의 빈자리로 두란노서원에서 출간되는 신앙생활의 고 품격 양서들이 달라지면 어쩌나, 끊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없지 않아 찾아왔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풍부한 기독교적 문화와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어, 야속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매우만족, 만족, 불만족’에서 늘 만족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출간되는 책들을 다 만날 수 없다는 개인적 사정이 야속할 뿐입니다.

특별히 이 책은요. 책장 하나 넘길 때마다 손은 얼어붙고 마음이 떨리고 영혼의 짜릿함을 경험했습니다. 책을 볼 때에는 궁금해도 순차적으로 끝을 향해 빨리 달려야 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이 책은 책장 넘기는 게 아쉽고, 남아 있는 부분이 줄어드는 게 속상했습니다. 더 그립습니다. 비록 영상매체, 사진과 책을 통해서 목사님의 영성과 삶을 접했지만, 참 많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렇게 존귀한 엑기스를 한데 모아주신 두란노서원 관계자분들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기도와 영성 책을 보는 수고와 연구의 결실로 이루어낸 이 아름다운 그들을 다시 한데 모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앉아 여전히 책을 손에 놓지 않으시고 인자한 모습으로 제 바로 앞에서 저에게만 들려주시는 말씀처럼 가슴에 새기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치 제가 천국에 있는 것 같은 평안함이 몰려 왔습니다. 책장을 넘기며 개인적으로 울고 웃고 심령의 평안함과 부족했던 부분들이 가득 채워지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어 보여드릴 수 없지만, 책장을 조금 덜 넘기고 싶어 여배에 색색의 펜들로 말풍선도 그리고 밑줄도 긋고 때때로 그림도 그리며 다시 말씀을 몇 번씩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도달했을 때 왈칵 눈물이 쏟아져 한동안 멈출 줄 몰랐습니다. “여러분 평안하십시오.” 가슴을 고동치며 울리는 목사님의 음성이 들리듯 했습니다. 책을 통해 다시 새롭게 제 심령을 깨끗하게 정비할 시간을 주시고, 새로운 도전을 갖도록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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