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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구 : 흙의 장벽 1 ㅣ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5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5월
평점 :
2018년 스웨덴 한림원의 성추문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이 불발로 끝났던 그해, 그 대안으로 제정된 뉴아카데미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마리즈 콩데.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작가다.
이 책 ‘세구_흙의 장벽’은 18세기 세구 왕국(현 아프리가 말리 공화국의 도시)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세구 왕국의 귀족가문인 트라오레가문의 역사를 삼대에 걸쳐서 보여준다. 트라오레 가문의 수장인 두지카가 처첩에게서 얻은 네 아들, 티에코로, 나바, 시가, 말로발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당시의 아프리카 사회가 토속 신앙과 강력하게 전파된 이슬람교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무너져가는지, 또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가 생각지도 않던 삶을 살게 되는지, 형제이지만 노예에게서 태어난 자식의 험난한 운명이라든지 등이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 만큼 끝없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티에코로의 아들 모하메드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끝나는데, 역자에 의하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사회, 문화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아프리카 사회 신분 제도 (그 안에서도 계급 차이는 극명했다), 민족 및 인종 차별(흑백혼혈이 흑인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인식!), 강력한 가부장제하에 신음하던 여성들(부자 상속뿐 아니라 형제상속도 있음- 어떤 경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경우, 아내들도 상속됨), 조상을 모시고 늘 함께하는 종교적 생활 및 의식 (가문끼리 모여 살며, 마당 한 가운데 신수 및 제단이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자세 등 내적인 요소들과 외적인 요소들(거리 묘사, 건축, 의상, 음식 등). 소설이라고 그냥 치부할 수 없은, 가치있고 풍부한 인류학적인 자료도 담고 있다. 자료의 역사적 가치는 따져봐야겠지만. 자주 인용되는 그리오(일종의 음유시인)들이 부르는 노래 속에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겨있다.
서구에 의해 침탈되어가는 아프리카 사회, 뻔히 미래가 예견되나 어찌 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당시 아프리카인의 서글픔이 그대로 느껴졌다. 일부는 그럴수록 더 전통으로 똘똘 뭉쳐가나 그 끝은 파국으로 향하고, 다른 한편 문명으로 나아가나 백인들의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남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를 대표하는 소설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불’ 등이 계속 떠올랐다. 소설 속 그네들의 삶에 우리의 역사가 투영되어 있다. 이 책 또한 그러하다. 추천.
에세서포터즈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