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윌리엄 트레버 지음, 정영목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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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문학 특히 단편의 거봉으로 일컬어지는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이다. 총 12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조율사의 아내들/ 우정/ 티머시의 생일/ 아이의 놀이/ 약간의 볼일/ 비온뒤/ 과부들/ 길버트의 어머니/ 감자장수/ 실추/ 하루/ 데이미언과 결혼하기.
이 소설집은 1996년 작가의 나이 67세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읽는 내내 나즈막하게 읊조리는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각 작품마다, 상처입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주인공만 아픈게 아니다..) 슬픔이 깔려있고, 그렇지만 목 놓아 울부짖거나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그저 아픈 가슴을 부어잡고, 그 슬픈 기억은 묻어두라고, 삶이란 원래 그런거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럼에도, ‘아이의 놀이’에서 보여지듯, 부모의 이혼으로 갑자기 성숙해 버린 아이들의 성장은 슬프다. 가슴아프다. ‘비온뒤’ 의 여주 해리엇이 가지는 혼자만의 여행에서 깨달음에서 답이 나오지 않을 것임을 자각하는 순간은 애처롭다. ‘조율사의 아내들’에서 망자의 흔적을 지우기위해 애쓰는 벨은 안타깝고.
작품 한 편 한 편, 소설이 끝나는 순간,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바로 이어서 다음 작품을 읽을 수가 없다.

1928년 생의 작가 윌리엄 트레버는 사실 낯선 작가이다.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자처하는데도 모르는 작가가 너무 많다.) 단지 무료로 읽을 수 있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는데, 진주를 발견했다. 옮긴이의 말을 가장 나중에 읽었는데,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이 그대로 실려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삶에 깊이 팬 상처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계속 삶을 이어가는 과정을 다룬…이렇게 되고 만 현재를 필연으로 받아들이게 된….관조..”
내가 이제 관조할 수 있는 삶의 나이에 도달해서인가. 어떤 발버둥도 소용없는, 누구에게나 녹록치 않은 생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어서인가. 어느덧, 작가의 눈으로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본다.

비는 숨을 헐떡이는 공기를 달콤하게 적셨고, 천사 또한 신비하게 찾아온다.(비온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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