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산다는 것 - 다산 정약용이 생각한 인간의 도리, 그리고 법과 정의에 관한 이야기
정약용 지음, 오세진 옮김 / 홍익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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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학자이면서 정치가였는데, 모함을 받아 18년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정치적 복권을 열망했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저술활동을 했는데, 1표 2서라 불리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가 대표적이다. 그 중 <흠흠신서>는 형법, 법행정, 살인 사건 판례와 그에 대한 비평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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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있던 시기는 정조 치세였는데, 정조는 사람을 살리는 덕치를 위해 최대한 관용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에 비해 다산은 비교적 엄격한 법 적용을 주장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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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지방에서 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1.해당 지역수령이 조사하고, 관찰사가 있는 도에 보고한다. 2. 이때 진상이 밝혀지지 않으면 관찰사가 직접 나서서 조사하는 시스템이었다.
살인 사건의 경우는 검시가 필수였고 초검은 해당 지역 수령이 초검관이 되고, 재검은 인근 고을 수령이 와서 검시했다. 이는 혈연 지연에 따른 편파수사를 막기 위함이었다. 의혹이 남으면 삼검, 사검, 오검까지 시행했다.
사형은 반드시 왕의 결정이 있어야했다.
판결을 내릴때 중요하게 여기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주범과 종범이 명확하게 특정되어야 한다.
2. 증인의 증언이 분명하게 갖추어야 한다.
3. 사망의 실제적 원인이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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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흠흠신서>중에서 조선의 사례를 담고 있는 <상형추의>, <전발무사>의 사례를 선별하여 편역하였는데, 사건 개요, 다산의 의견, 역사적 설명의 순으로 정리하였다.
총 5장, 36건의 사건 사례를 들어 조선 당시 어떤 사건이 발생했고, 어떻게 수사하였으며, 어떤 법리가 적용되고, 정조는 어떤 입장을 취하였는지,이에 대해 다산의 의견은 어떠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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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신분 사회였고, 정조 또한 왕족, 양반가의 범죄에 대해선 유연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법치 국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비의 죽음에 대해서도 방기하지 않았고, 여자들의 경우는 현대의 입장에서 볼 때 어이없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라에서는 가급적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최근에도 문제가 되는 술에 의한 범죄에 대해서, 정조는 "술이 죄지, 사람이 뭔 죄냐?" 하는 입장이었고, 다산은 "술을 마시면 본성을 잃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걸 알고도 술을 마신 사람이 죄다."라는 입장을 보인다. 또한 고부갈등 등의 집안 범죄에 대해서는 윗대 우선, 남자 우선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입장을 다 보이고 있다. 간통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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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법 집행은 인지상정에 맞아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법은 일반적인 사람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는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조가 가능한 가벼운 판결을 내리려 할 때, 직언을 하곤 했다.
실제로 정조가 친히 점검하고 판결한 1,112건의 사건 중에서 사형 판결은 단 36건에 불과하다.
다산의 '1표 2서'라 불리는 3권 책의 공통 주제는 일반 백성에 대한 흠휼 정신, 인본주의였다. 그렇기때문에 지금도 다산 정약용을 우리는 존경하는 것이다.

책 속으로
p197> 다산이 <흠흠신서>를 지은 이유는 백성에 대한 '흠휼(欽恤)'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흠'은 굽히고 공경하다는 뜻이고, '휼'은 가엽이 여겨 돌본다는 뜻이다. 아무리 비천한 백성이라도 흠휼의 정신으로 대하는 인본주의가 <흠흠신서>를 지은 배경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흠흠신서>는 정약용이 평생을 통해 구현하려 했던 생명 존중 사상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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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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