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나

여우와 나 -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
캐서린 레이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0월

어린 왕자가 떠오르는 책이다. 숲을 떠오르게 하는 초록색 책 띠지가 책과 잘 어울린다. 캐서린 레이븐은 자연사 에세이를 쓰며 국립공원에서 레인저로 활동했다. 그녀는 로키 산맥 자락의 인적 없는 땅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사는데 한 여우가 정기적으로 찾아온다. 여우는 언덕을 정탐하며 파란지붕집으로 가는 경로를 점검하고, 오두막 그림자 안으로 달려와 엎드려 있는다. 2미터 사이의 거리, 여우와 그녀는 자연스럽게 서로 교감을 한다. 여우에게 '어린 왕자' 이야기를 읽어준다. 야생동물 여우를 숲에서 만난다면 나는 두려워했을 것이다. 여우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상자에 갇히지 않은 여우와 점점 가까워졌다. 여우를 지켜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었고, 여우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만남은 항상 여우가 결정한다. 야생 여우가 꾸준히 나를 방문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건네고 듣는 행동을 반복하다보면 여우와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우가 찾아왔을 때 자신이 집에 없으면 어떻게 할지 걱정하게 된다.

자연속에서 살며 자연을 온전히 느끼는 동안 그녀는 자연과 하나가 된다. 자연은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 아니라 우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대상이다. 나와 자연은 별개가 아니라, 자연속에 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에세이다. 나도 용기는 나지 않지만 저자처럼 자연을 그대로 느끼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우리는 사람들 개개인을 생김새와 행동거지에 따라 세밀하게 구분한다. 하지만 인간 아닌 동물에 대해서는 하나로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에겐 대체로 전부 똑같이 보이고, 똑같이 들리고, 똑같이 행동하기 때문이다.

360쪽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후기입니다.

사춘기라는 우주

사춘기라는 우주 - 부모 너머 너와 나의 이야기
황영미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9월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는 아이가 참 좋아했던 책이다. 그 책의 저자가 썼다는 이유와 '사춘기'라는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에세이이기 때문에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들을 수 있고,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여는 글'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에세이는 어쩔 수 없이 사적인 내용이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 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들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에세이의 매력이다. 저자가 두 아이를 키운 아줌마라는 공통점 때문에 저자의 생각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닐지도 몰라', '사춘기라는 끝없는 우주', '다만 필요한 건 존중과 믿음, 적당한 거리', '친애하는 청소년의 세계' 이렇게 4개의 장으로 몇 편의 글을 엮어 놓았다.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서 처음 마주했을 때 느끼는 기쁨에 대한 이야기로 글은 시작된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살아간다. 시험을 쳐서 성적을 받아오고, 학원에 다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대처했는지 일기처럼 자연스럽게 들려준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찾아내는 힘은 어릴 적 받은 사랑과 즐거웠던 기억에서 나온다.'는 문장이 있다. 그렇다고 하면 부모가 사춘기를 맞은 자녀에게 가장 우선으로 주어야할 것은 사랑과 행복한 기억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잘 해낼 것이라고 응원하고 지켜봐주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실패했을 때도 남 탓을 하지 않는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자립이라고 한다. 사춘기는 그 자립을 준비하는 출발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없더라도 행복하고 즐겁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아들, 딸이 되도록 무한한 잔소리 대신 믿음으로 지켜줘야겠다.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다정한 물리학

다정한 물리학 -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해리 클리프 지음, 박병철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8월

<다정한 물리학>은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읽는 과학 교양서이다.

과학 영역 중에 물리가 가장 어려웠다. 학교에서 배우는 물리는 친절한 설명보다는 법칙이나 원리 중심어서 좋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정한' 물리학이라는 제목을 보고 물리학을 재미있고 친절하게 알려줄 것 같아서 기대되었다.

저자는 화학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기본 요소들이 특정한 법칙에 따라 반응하고, 분해되고, 변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서 좋아했는데 이 화학의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의 기원을 알고 싶어 물리학을 연구했다고 한다.

일상 이야기 속에 과학이 담겨 있으니 물리학자에게는 일상이 과학인가보다. 저자의 아버지 역시 화학자로 어릴 때부터 과학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사과파이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질문에서 물리학이 시작된다.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사과파이를 만들려면 먼저 우주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칼 세이건은 말했다. 그리고 사과파이를 쪼개고 쪼개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를 설명한다. 가장 작은 조각, 원자의 구성성분, 원자핵, 별, 입자, 우주까지 하나하나를 사과파이 조리법과 관련지어 소개한다. 사과파이 조리법으로 우주의 탄생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거기 사용되는 전문적인 과학 용어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왜, 그리고 어디서 온 거죠?"라는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탐구한 물리학자들이 있었기에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다.

감염인간 낸즈

감염인간, 낸즈 ㅣ YA! 7
문상온 지음 / 이지북 / 2022년 9월

팬데믹을 겪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얼마나 인간의 일상을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우리는 경험하였다. 그동안 이렇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바이러스를 경험하지 못했고,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바이러스와의 전쟁 때문에 바이러스가 문학작품의 소재로 많이 쓰이고 있다.

<감염인간, 낸즈>는 바이러스 감염 후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청소년 문학이다. 낸즈는 Not Alive, Not Dead Syndrome,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인간이다. 나상일 박사는 암치료제인 캔서큐어를 완성하지만 임상 실험에 참여한 암 환자가 모두 사망하고, 아들은 코마 상태에 빠진다. 그로인한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가 일시적으로 회복된 자를 감염인간, 아직 감염되지 않은 자인 순수인간 이렇게 둘로 나누게 된다. 주인공인 지민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그로부터 부모님 이야기와 함께 자신에게 감염인간을 치료할 수 있는 면역 항체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니 지민은 유일한 구원자이고, 그를 통해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

과학의 발달로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게 된 지금도 우리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인간으로 인해 생겨난 바이러스,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후기입니다.

이야기 전달자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 ㅣ 오늘의 클래식
도나 바르바 이게라 지음, 김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뉴베리 100주년 대상 수상작이라니 엄청 기대하며 읽었다. 뉴베리 수상작은 작품성에 보장되는 책이라서 해마다 꼭 구입해서 읽고 있다.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는 뉴베리 대상이자, 푸라 벨프레 대상 수상작이다. 책을 읽고 전체적인 배경과 내용은 다르지만 '기억 전달자'가 떠올랐다. 기억 전달자보다 조금더 따스하고, 어린이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네가 여행에 가져갔으면 하는 게 있다, 페트라. 네 13번째 생일에 이 할미는 거기에 없을 테니까..."

리타 할머니는 페트라에게 흑요석이 박혀 있는 태양 모양 은 펜던트를 주셨다. 유가탄 사람들은 흑요석에 죽은 사람들과 재회할 수 있는 마법이 있다고 믿는다는 말씀과 함께. 누구보다 따스하게 페트라를 지켜주던 리타할머니와 헤어짐을 페트라는 맞이하고 싶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페트라가 새로운 행성으로 부모님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신다.

할머니는 항상 페트라에게 쿠엔토(스페인어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페트라는 할머니처럼 이야기 전달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가 아니다.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에 할머니의 이야기가 더해져서 수백 년동안 이어져오는 그런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는 '나'가 있고, 우리들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페트라를 온전히 사랑해주는 지지자인 할머니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의지가 되는지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의 여정이 시작된다. 2061년 지구와 핼리 혜성이 충돌하고 페트라는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세이건이라는 새로운 행성으로 간다. 콜렉티브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과거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산다. 페트라는 완전히 잠들지 않은 각성 상태로 기억을 가진채 깨어나게 된다. 그래서 페트라는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전달한다. 페트라는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들었던 쿠엔토를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자신의 이야기가 새로운 행성에서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장면을 보며 웃는 모습을 떠올린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