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필요한 시간 - 전시 디자이너 에세이
이세영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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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전 간만에 서울에 갔다. 큰 목표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국립극장에서 하는 체호프의 희곡 <벚꽃 동산> 관람하기, 또 하나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를 보기였다. 시청역에서 내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언덕을 약간 오르니 미술관이 보였다. 평일에도 사람이 많아 붐볐다. 전시 팸플릿을 챙기고 안내를 따라 2-3-1층 순으로 호퍼가 남긴 온갖 작품을 보고 그 옆에 있는 설명을 읽었다. 인터넷으로 많이 본 호퍼의 대표작보다는 오히려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화가가 되기까지 거쳤던 과정, 그리고 그때에 남긴 습작, 화가가 되기 전 업무였던 잡지 표지와 판화 같은 게 오히려 더 기억에 남았다. 왜 호퍼 전시회의 명칭을 잭 캐루악의 소설『길 위에서』와 같은 것으로 정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번 전시회의 의도는 거장 화가 호퍼가 그린 대표작이 아니라 그를 세계적인 화가로 이끈 과정을 충실히 설명하는 것인데, 그 의도에 딱 부합하는 제목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던 중에 마침 호퍼 전을 담당한 전시 디자이너의 에세이가 출간될 거라는 소식을 접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작품을 선별하는 건 큐레이터가 하는 업무다. 그나마 큐레이터에 관해서는 다른 매체에서 접한 적이 몇 번 있지만 그에 비해 전시 디자이너란 직업은 내게 너무 낯설었다. 전시는 종합 예술이다. 그저 유명하고 희귀하고 값비싼 작품을 전시한다고 해서 좋은 전시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관람객과 전시 작품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 그 때에 관람객이 어떤 경험을 하도록 만드는지는 결국 전시 공간이 좌우하는 문제다. 전시라는 종합 예술에서 밑바탕을 담당하는 전시 디자이너가 어떤 일을 하고, 또 어떤 시선으로 예술 작품과 공간을 대하는지 궁금했다. 


  교환 학생으로 해외 생활을 하던 5년 전, 나는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반드시 한 번은 그 지역에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갔다. 그렇지만 내가 가본 곳보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훨씬 더 많다. 이 책에서 소개된 공간은 서울시립미술관을 제외하면 전부 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라서 거의 모든 내용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과 리움 미술관은 다음에 서울을 가면 꼭 가볼 마음이 생겼고,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에 가보면 굉장히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문화 예술 시설이 많은 뉴욕, 런던, 파리 같은 대도시 외에도 텍사스에 있는 저드 재단,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 홍콩 아우펑 예술촌이란 곳을 새로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책에 실린 사진은 한두 페이지 전체에 인쇄되어 더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정말 그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공간을 소개하고 그 다음 꼭지에는 한 페이지로 그곳을 찾아가는 방법과 주변에 같이 둘러보기 좋은 곳을 소개해줘서 여행 가이드북 같은 느낌도 들었다. 


  미술에 관해서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보다 더 적확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식견이 많이 부족해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작품이 있는 공간을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마로니에북스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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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아가씨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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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살 '크리스티네'는 너무나 단조롭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한적한 시골 마을 클라인-라이플링의 우체국에서 근무하지만 별다른 업무는 없다. 한가함을 넘어 무료한 업무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강성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전쟁과 함께 제국의 영광도 빛이 바랬다. 하지만 나라가 패망했어도 여전히 남겨진 이들이 있다. 오늘과 내일을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전쟁으로 크리스티네는 하나뿐인 오빠와 아버지마저 잃었다. 그리고 혼자서 몸이 성치 않은 어머니를 부양해야만 한다. 청춘은 인생에서 가장 발랄한 시기 아닌가? 애석하게도 크리스티네에겐 그런 행복과 여유가 없다. 하루하루가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청춘은 아무 쓸모가 없다. 


  권태로운 일상을 힘겹게 감내해야 했던 크리스티네의 인생에 어느 날 불현듯 균열이 생겼다. 오래 전 미국으로 떠난 이모가 크리스티네에게 보낸 전보가 우체국으로 도착한다. 타국에서 상류층이 된 이모가 스위스 휴양지에서 보낸 전보에는 조카를 그곳으로 초대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자신 이외엔 직원이 없는 우체국을 비워두어야 하는지, 본 적도 없는 이모를 찾아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크리스티네는 고민한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고생밖에 모르고 메말라 바스러지는 게 안타까웠던 어머니는 이런 둘도 없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딸에게 강권한다. 어머니의 성화에 떠밀려 크리스티네는 그동안 자신이 경험했던 좁디 좁은 공간을 떠난다.



[‘좋아, 아주 좋아.‘ 거울 속 여자가 그녀에게 미소 지었다. 여자는 황급히 복도를 뛰어가 이모의 방으로 갔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니 시원한 실크 드레스의 촉감이 더욱 산뜻하게 느껴졌다. 바람에 실려 떠가는 느낌이었다. 이처럼 가볍게 날아갈 듯 움직여본 것은 어린 시절뿐이었다. 드디어 여자는 변신에 도취하기 시작했다. - p.95]



  기차를 타고 스위스로 가는 길은 마냥 황홀하고 즐겁다. 하지만 고급 휴양지 엥가딘에선 모든 것이 화려하고 빛이 난다. 반면 크리스티네는 한없이 작고 보잘 것 없다. 이모가 준 옷과 화장으로 크리스티네는 들뜬 기분을 느낀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크리스티네를 향해 사교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자신의 이름이 잘못 알려진 것도 굳이 바로잡고 싶지 않다. 구태여 그럴 필요도 없다. 이 순간만큼은 크리스티네, 아니 '폰 볼렌' 양은 어엿한 상류층 여인이다. 하지만 이런 황홀경은 역시 한순간에 그칠 뿐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도취에 찬물을 끼얹은 건 뭇사람들의 시기와 질투였다. 온갖 추문은 물론 크리스티네가 사실은 하류층이란 게 밝혀지면 조카는 물론 이모에게도 치명적이다. 그렇게 원치 않는 휴가를 시작했던 크리스테는 마찬가지로 원치 않았던 방식으로 열흘 만에 휴가를 끝내야 했다.



[어떤 물질이든 외부에서 가해지는 열에 의해 온도가 올라갈 때 그 물질 고유의 임계점이 있다. 그 지점을 지나면 아무리 열을 가해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물이 끓는 비등점이 있고 쇠가 녹는 용해점이 있듯이, 정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행복감 역시 절정에 이르면 더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고통, 절망, 굴욕, 혐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그릇에 물을 부을 때 가득 차면 더는 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 p.234]



  다시 돌아온 오스트리아의 클라인-라이플링에서 보내야 하는 삶은 이제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변한다. 한 번 생긴 인생의 균열은 더 큰 파급으로 이어진다.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향락을 경험한 크리스티네에게 이제 이런 시골 생활은 맞지 않는다.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이런 크리스티네와 마음이 맞는 건 전쟁이 끝나고 귀향길에 손가락을 다친 '페르디난트' 뿐이다.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뭔가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세상을 향한 절망이다. 더이상 기댈 곳 하나 없는 이들은 인생을 뒤엎을 계획을 꾸민다. 극심하게 대조되는 양극화, 나아질 기미가 없는 비참한 인생, 가까운 사람들의 부재 속에서 이들이 택할 수 있었던 방법은, 서글프지만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생전에 발표하지 않고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미완성으로 끝난 이 소설의 결말을, 작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나치의 탄압을 피해 조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아메리카로 가서 브라질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한 츠바이크의 인생을 따라가면, 이 소설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어렴풋이 알 수도 있을 거 같다. 주로 단편과 중편 소설을 발표하며 평소에 집필도 굉장히 빠르게 했던 츠바이크가 왜 끝내 이 소설을 죽는 순간까지 발표하지 않았을까? 아마 오랫동안 집필해오던 이 소설을 츠바이크는 자기 인생과 동일시했던 건 아니었을까? 온갖 역사적 인물의 평전을 쓰고, 소설에서도 등장인물의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하여 표현한 츠바이크조차도 끝끝내 자기 인생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인생은 쉼없이 흘러가기에 글로 표현하기엔 찰나와 같은 순간을 놓치기 쉽다. 츠바이크는 자기가 겪은 경험을 이 소설에서 크리스티네란 인물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했고, 아마 소설에서만큼은 자기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야기를 열린 채로 남겨놓은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 빛소굴 출판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 이벤트에 선정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이 책은『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이숲에올빼미, 2011)』의 판권이 만료되어 새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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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지구의 생명들
데이비드 애튼버러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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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때였다.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가 보라고 추천해준 게 있었다. 드라마도, 영화도,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웬 다큐멘터리였다. 처음엔 뭐 이런 걸 보나 싶었는데 보고 있자니 입이 떡 벌어졌다. 지구는 이렇게 아름다운 환경을 자랑하는 곳이고 그 속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스레 알게 됐다. 그 다큐멘터리는 BBC의 <살아있는 지구 Planet Earth>였다. 북극에서 남극까지 쭉 훑어가며 광활한 대자연과 온갖 동식물을 보여주니 없던 관심이 생겼다. 그 후로 나도 시간 나는대로 나머지 편을 찾아봤다. 그리고 같은 방송사에서 제작한 <아름다운 바다 The Blue Planet>, <생명의 대여정 Life>도 나중에 찾아봤다. 미국식 영어만이 영어의 전부인 줄 알았던 내가 처음으로 꾸준히 접했던 영국 매체였다. 내가 본 BBC 다큐멘터리에는 언제나 정감 넘치는 목소리가 함께 했다. 데이비드 애튼버러 David Attenborough였다.


  인간은 환경에 정말 크게 영향을 받는 생물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인류는 대부분 북반구 중위도에 살고 있다. 너무 춥지도, 너무 덥지도 않고, 강수량과 기온이 적절한 곳이기 때문이다. 사는 곳에 따라 인간은 건물과 의복을 알맞게 발명했지만 다른 동식물처럼 신체를 크게 바꾸진 못했다. 오늘날 지구에 남아있는 인간은 결국 모두 호모 사피엔스라는 단일종이라서다. 하지만 동물과 식물은 다르다. 인간이 도저히 살 수 없는 극한 환경에서도 살고 있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했다. 같은 종이라도 서식지에 따라 모습이 크게 다르며 아예 다른 종으로 분화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화산이 폭발하면 주변에 모든 것이 황폐해진다. 하지만 인도 신화에서 시바라는 신이 파괴와 창조를 동시에 관장하는 것처럼, 화산은 생명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화산에서 여정을 시작한다(1장). 지구 상에서 가장 추운 극지방과 고산지대는 화산과 너무 다른 환경이지만 여전히 생물이 존재한다(2장). 체온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식물을 부각한다. 북쪽 숲(3장)과 밀림(4장), 그리고 풀의 세계(5장)에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식물이 어떻게 잎을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 수분을 관리하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은 농사를 위해 풀을 태우지만 풀은 아주 강한 생존력을 지녀 언제든 싹을 틔울 수 있다는 게 참 경이롭다.


  왕성하게 자라는 풀도 제대로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사막이다(6장). 일교차가 극심하고 모든 생명 활동에 필수인 물도 부족한 곳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도 생물은 수분을 지키고 열을 발산하는 식으로 살고 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보기도 하고(7장), 인류 문명 발상지의 필수 조건인 강, 즉 민물에서 어떤 생물이 사는지도 보여준다(8장). 강은 흘러 바다와 접하는데, 민물과 짠물이 교차하는 곳에서 염분을 배출하는 생물도 많다(9장). 강이 흘러가는 바다는 너무도 거대해 우리가 사는 대륙과 섬을 멀리 떨어뜨리기도 한다. 다른 지역과 고립된 곳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종을 많이 관찰할 수 있으며, 그 중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것도 있다(10장). 오늘날 우주보다도 알려진 바가 적다는 먼바다(11장). 이곳에서는 빛도 아주 희미하고 해류는 거세지만 그럼에도 생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은 오늘날 대다수 인류가 거주하는 도시에 관한 부분이다(12장).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환경이지만 먹이도 많고 상대적으로 기온도 일정해 도시를 보금자리로 삼는 생물이 부쩍 늘었다. 우리는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존재지만 말이다.    


  1926년에 태어난 애튼버러 경은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책을 읽었기에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순 없었다. 하지만 책에 실린 설명을 읽으니 저절로 내가 알던 그 익숙한 목소리가 머리 속에 맴도는 기분이다. 책 중간에 실린 사진도 아주 고품질이라 맘에 들었다. 본문 중간중간에 조그맣게 삽입된 것보다 본문보다 더 질 좋은 종이에 인쇄된 동식물을 보니 책 내용을 한결 수월하게 이애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생존이라는 답을 찾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물론 이 한 권에 다 담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데이비드 애튼버러를 또다른 다큐멘터리, 또다른 책에서도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 까치 출판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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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에르 드 부아르 11호 Maniere de voir 2023 - '자유' 없는 자유 마니에르 드 부아르 Maniere de voir 11
안세실 로베르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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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 무적 강렬하다. 그리고 역설적이다. 자유에 '자유'가 없다면, 우리는 그걸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뒷받침한 인권선언문에 자유(Liberté), 평등(Egalité), 우(Fraternité, *. 일본어 번역투인 '박애'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 의미인 형제에, 동포애를 충분히 포함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라는 3가지 개념을 정의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자유'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평등'이란 법이 모든 사람에 대해, 그것이 보호이건 처벌이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을 뜻한다. 흔히 자유, 평등, 우애를 동일선상에 놓지만 기실 자유와 평등은 상충하는 가치다. 대혁명 이후 특권층이었던 귀족, 사제 계급을 대신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권리를 원했던 부르주아들은 자유를 '공세적 이념'으로, 이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들은 평등을 '수비적 이념'으로 택했다.


  이처럼 자유와 평등은 한 쪽이 커지면 한 쪽은 작아지는 제로섬 게임에 놓인 셈이다. 어느 한 쪽만 편들기도, 그렇다고 반대 가치를 버리기도 힘들다. 자유와 평등 모두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애가 필요하다. 헤겔이 주장한 변증법에선 정, 반, 합, 즉 상충하는 가치를 묶어주는 매개 인자가 있다. 자유와 평등 사이에 있는 간극을 메꿔주는 것이 우애다. 같은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힘은 정말 강력하다. 각종 반전 시위와 민주화 운동 같은 성공 사례가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민의 결집이 위축되는 것 같다.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홍콩의 민주화 운동,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위는 정부로부터 강력한 압박과 통제를 받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시위 진압을 넘어 정부는 통제 불가능한 권리를 '공공'의 이름을 빌려 '합법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불거진 코로나 팬데믹 국면부터다. 어딜 가든 어플로 출입 기록을 모으고, 코로나 증상을 체크하고,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한다. 개인의 권리는 공공의 이익 앞에서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평등에 맞서 자유가 크게 힘을 얻은 건 몇 년 전부터 능력주의에 관한 담론이 크게 유행한 이후가 아닌가 싶다. 지역, 여성, 장애인, 기초수급자 등 여러 제도적 장치를 통해 평등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조치가 오히려 역차별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최우선으로 고려해야할 사항은 능력인데 왜 다른 잣대를 계속 들이대냐는 논리다. 공공 의대, 대입 수시 비중 확대 같은 논란이 스쳐 지나간다. 마땅한 정답이 없기에 어려운 문제지만 계속 생각하고 논의해야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기도 하다.



*. 마니에르 드 부아르 11호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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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3.5 20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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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레 산티아고의 교통지옥

  칠레는 남아메리카에서 최초로 OECD에 가입한 나라이며 대륙 내 최부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은 법이다. 칠레는 경제 발전 과정에서 불평등 해결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수도 산티아고의 인구는 약 710만명인데, 이는 칠레 전체 인구의 1/3에 달한다. 한국도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여러 부작용을 겪고 있듯 칠레에도 그 문제가 고스린히 드러난다. 1900년대에는 30만명이던 인구가 60년 후엔 200만명으로 폭증하면서 산티아고 당국은 선진국 주요 도시처럼 전철 도입 계획을 세웠다. 

  원래 계획은 전철 노선을 교외에 있는 빈민 구역까지 잇는 거였지만 피노체트 정권은 전철 노선을 부유층 거주 지역에 한정했다. 산티아고는 동북부 구역을 집중 개발해 도심으로 만들었다. 일자리를 위해선 왕복 3-4시간 통근을 감내하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전철이 지나지 않는 구역도 많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야한다. 문제는 칠레 시내버스가 민영화를 거치면서 요금에 비해 노선과 서비스의 질이 형편없어졌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선택지는 없다. 전철 요금은 버스보다 3배 더 비싸다. 이런 와중에 칠레 정부가 2019년에 전철 요금 인상안을 발표했으니 시위가 격화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정부는 올해도 요금 인상을 예고했다. 

  대중교통은 공익에 부합해야 하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산티아고에서 대중교통이 주는 수혜는 오히려 부유층이 누리고 있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과 양극화 심화. 비단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그나마 대중교통이 정말 저렴하고, 노선도 많이 유지되고 있는 한국에 살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만 교통비를 비롯해 공공요금 인상이 예고되어 있으니 참 갑갑해진다.



2. 마사이족을 추방하는 탄자니아 정부

  마사이족은 동아프리카 일대에 넓게 거주하는 민족이다. 이 거주 지역은 세렌게티 국립공원처럼 유명한 곳도 포함한다. 탄자니아 정부가 원주민인 마사이족을 몰아내고 있다. 이들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명분을 갖다붙였다.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사이족이 환경 파괴라니? 환경 파괴는 이 지역을 관광 자원으로 개발할 탄자니아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마사이족은 '관광 자원'으로 취급되어 삶의 터전을 떠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마사이족의 권리도 의미가 없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아내고 나라를 확장했던 미국이 생각난다.



3. 폴란드가 이민자를 대하는 이중 잣대

  폴란드와 벨라루스 국경에 위치한 비아워비에자(Białowieża) 숲은 유럽 최대의 원시림이다. 이 험난한 삼림지대를 통해 전세계에서 이민자들이 폴란드와 유럽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폴란드 정부는 강경한 태도로 이들을 '사냥'한다. 트럼프가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운 것처럼 폴란드는 장벽과 군인, 경찰을 집중 배치했다. 이민자들을 받아들여도 나중에 범죄자가 될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난민 400만명을 일시에 수용했다. 외국인 혐오가 만연해 극우 정당이 득세해도, 우크라이나인들과 다른 나라 이주민들의 목숨은 다른 가치가 있나보다.



4. 코소보의 첨예한 민족 갈등

  이번 호에서 내게 가장 어려웠던 기사다. 구 유고슬라비아의 민족 구성과 90년대에 발발한 내전, 유엔 평화유지군의 개입, 코소보 사태,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민족 간 갈등을 모두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르비아가 자행했던 인종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알바니아계가 다수인 코소보에서는 세르비아의 흔적을 조금씩 지우고 있다. 독일, 영국, 미국이 개입하여 두 민족이 화해할 물꼬가 트였지만, 외부 개입 없이 두 민족이 먼저 화해할 순 없는걸까? 이런 순진한 생각은 코소보를 둘러싼 이웃 나라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의 대립, 그리고 비슷한 상황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한반도 문제를 생각해보면 여간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 더욱 막막해진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코리아 5월호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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