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칠레 산티아고의 교통지옥
칠레는 남아메리카에서 최초로 OECD에 가입한 나라이며 대륙 내 최부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은 법이다. 칠레는 경제 발전 과정에서 불평등 해결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수도 산티아고의 인구는 약 710만명인데, 이는 칠레 전체 인구의 1/3에 달한다. 한국도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여러 부작용을 겪고 있듯 칠레에도 그 문제가 고스린히 드러난다. 1900년대에는 30만명이던 인구가 60년 후엔 200만명으로 폭증하면서 산티아고 당국은 선진국 주요 도시처럼 전철 도입 계획을 세웠다.
원래 계획은 전철 노선을 교외에 있는 빈민 구역까지 잇는 거였지만 피노체트 정권은 전철 노선을 부유층 거주 지역에 한정했다. 산티아고는 동북부 구역을 집중 개발해 도심으로 만들었다. 일자리를 위해선 왕복 3-4시간 통근을 감내하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전철이 지나지 않는 구역도 많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야한다. 문제는 칠레 시내버스가 민영화를 거치면서 요금에 비해 노선과 서비스의 질이 형편없어졌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선택지는 없다. 전철 요금은 버스보다 3배 더 비싸다. 이런 와중에 칠레 정부가 2019년에 전철 요금 인상안을 발표했으니 시위가 격화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정부는 올해도 요금 인상을 예고했다.
대중교통은 공익에 부합해야 하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산티아고에서 대중교통이 주는 수혜는 오히려 부유층이 누리고 있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과 양극화 심화. 비단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그나마 대중교통이 정말 저렴하고, 노선도 많이 유지되고 있는 한국에 살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만 교통비를 비롯해 공공요금 인상이 예고되어 있으니 참 갑갑해진다.
2. 마사이족을 추방하는 탄자니아 정부
마사이족은 동아프리카 일대에 넓게 거주하는 민족이다. 이 거주 지역은 세렌게티 국립공원처럼 유명한 곳도 포함한다. 탄자니아 정부가 원주민인 마사이족을 몰아내고 있다. 이들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명분을 갖다붙였다.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사이족이 환경 파괴라니? 환경 파괴는 이 지역을 관광 자원으로 개발할 탄자니아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마사이족은 '관광 자원'으로 취급되어 삶의 터전을 떠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마사이족의 권리도 의미가 없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아내고 나라를 확장했던 미국이 생각난다.
3. 폴란드가 이민자를 대하는 이중 잣대
폴란드와 벨라루스 국경에 위치한 비아워비에자(Białowieża) 숲은 유럽 최대의 원시림이다. 이 험난한 삼림지대를 통해 전세계에서 이민자들이 폴란드와 유럽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폴란드 정부는 강경한 태도로 이들을 '사냥'한다. 트럼프가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운 것처럼 폴란드는 장벽과 군인, 경찰을 집중 배치했다. 이민자들을 받아들여도 나중에 범죄자가 될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난민 400만명을 일시에 수용했다. 외국인 혐오가 만연해 극우 정당이 득세해도, 우크라이나인들과 다른 나라 이주민들의 목숨은 다른 가치가 있나보다.
4. 코소보의 첨예한 민족 갈등
이번 호에서 내게 가장 어려웠던 기사다. 구 유고슬라비아의 민족 구성과 90년대에 발발한 내전, 유엔 평화유지군의 개입, 코소보 사태,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민족 간 갈등을 모두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르비아가 자행했던 인종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알바니아계가 다수인 코소보에서는 세르비아의 흔적을 조금씩 지우고 있다. 독일, 영국, 미국이 개입하여 두 민족이 화해할 물꼬가 트였지만, 외부 개입 없이 두 민족이 먼저 화해할 순 없는걸까? 이런 순진한 생각은 코소보를 둘러싼 이웃 나라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의 대립, 그리고 비슷한 상황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한반도 문제를 생각해보면 여간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 더욱 막막해진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코리아 5월호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