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니에르 드 부아르 11호 Maniere de voir 2023 - '자유' 없는 자유 ㅣ 마니에르 드 부아르 Maniere de voir 11
안세실 로베르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4월
평점 :
품절
제목부터 무적 강렬하다. 그리고 역설적이다. 자유에 '자유'가 없다면, 우리는 그걸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뒷받침한 인권선언문에 자유(Liberté), 평등(Egalité), 우애(Fraternité, *. 일본어 번역투인 '박애'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 의미인 형제에, 동포애를 충분히 포함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라는 3가지 개념을 정의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자유'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평등'이란 법이 모든 사람에 대해, 그것이 보호이건 처벌이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을 뜻한다. 흔히 자유, 평등, 우애를 동일선상에 놓지만 기실 자유와 평등은 상충하는 가치다. 대혁명 이후 특권층이었던 귀족, 사제 계급을 대신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권리를 원했던 부르주아들은 자유를 '공세적 이념'으로, 이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들은 평등을 '수비적 이념'으로 택했다.
이처럼 자유와 평등은 한 쪽이 커지면 한 쪽은 작아지는 제로섬 게임에 놓인 셈이다. 어느 한 쪽만 편들기도, 그렇다고 반대 가치를 버리기도 힘들다. 자유와 평등 모두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애가 필요하다. 헤겔이 주장한 변증법에선 정, 반, 합, 즉 상충하는 가치를 묶어주는 매개 인자가 있다. 자유와 평등 사이에 있는 간극을 메꿔주는 것이 우애다. 같은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힘은 정말 강력하다. 각종 반전 시위와 민주화 운동 같은 성공 사례가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민의 결집이 위축되는 것 같다.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홍콩의 민주화 운동,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위는 정부로부터 강력한 압박과 통제를 받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시위 진압을 넘어 정부는 통제 불가능한 권리를 '공공'의 이름을 빌려 '합법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불거진 코로나 팬데믹 국면부터다. 어딜 가든 어플로 출입 기록을 모으고, 코로나 증상을 체크하고,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한다. 개인의 권리는 공공의 이익 앞에서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평등에 맞서 자유가 크게 힘을 얻은 건 몇 년 전부터 능력주의에 관한 담론이 크게 유행한 이후가 아닌가 싶다. 지역, 여성, 장애인, 기초수급자 등 여러 제도적 장치를 통해 평등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조치가 오히려 역차별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최우선으로 고려해야할 사항은 능력인데 왜 다른 잣대를 계속 들이대냐는 논리다. 공공 의대, 대입 수시 비중 확대 같은 논란이 스쳐 지나간다. 마땅한 정답이 없기에 어려운 문제지만 계속 생각하고 논의해야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기도 하다.
*. 마니에르 드 부아르 11호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