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필요한 시간 - 전시 디자이너 에세이
이세영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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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전 간만에 서울에 갔다. 큰 목표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국립극장에서 하는 체호프의 희곡 <벚꽃 동산> 관람하기, 또 하나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를 보기였다. 시청역에서 내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언덕을 약간 오르니 미술관이 보였다. 평일에도 사람이 많아 붐볐다. 전시 팸플릿을 챙기고 안내를 따라 2-3-1층 순으로 호퍼가 남긴 온갖 작품을 보고 그 옆에 있는 설명을 읽었다. 인터넷으로 많이 본 호퍼의 대표작보다는 오히려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화가가 되기까지 거쳤던 과정, 그리고 그때에 남긴 습작, 화가가 되기 전 업무였던 잡지 표지와 판화 같은 게 오히려 더 기억에 남았다. 왜 호퍼 전시회의 명칭을 잭 캐루악의 소설『길 위에서』와 같은 것으로 정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번 전시회의 의도는 거장 화가 호퍼가 그린 대표작이 아니라 그를 세계적인 화가로 이끈 과정을 충실히 설명하는 것인데, 그 의도에 딱 부합하는 제목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던 중에 마침 호퍼 전을 담당한 전시 디자이너의 에세이가 출간될 거라는 소식을 접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작품을 선별하는 건 큐레이터가 하는 업무다. 그나마 큐레이터에 관해서는 다른 매체에서 접한 적이 몇 번 있지만 그에 비해 전시 디자이너란 직업은 내게 너무 낯설었다. 전시는 종합 예술이다. 그저 유명하고 희귀하고 값비싼 작품을 전시한다고 해서 좋은 전시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관람객과 전시 작품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 그 때에 관람객이 어떤 경험을 하도록 만드는지는 결국 전시 공간이 좌우하는 문제다. 전시라는 종합 예술에서 밑바탕을 담당하는 전시 디자이너가 어떤 일을 하고, 또 어떤 시선으로 예술 작품과 공간을 대하는지 궁금했다. 


  교환 학생으로 해외 생활을 하던 5년 전, 나는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반드시 한 번은 그 지역에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갔다. 그렇지만 내가 가본 곳보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훨씬 더 많다. 이 책에서 소개된 공간은 서울시립미술관을 제외하면 전부 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라서 거의 모든 내용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과 리움 미술관은 다음에 서울을 가면 꼭 가볼 마음이 생겼고,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에 가보면 굉장히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문화 예술 시설이 많은 뉴욕, 런던, 파리 같은 대도시 외에도 텍사스에 있는 저드 재단,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 홍콩 아우펑 예술촌이란 곳을 새로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책에 실린 사진은 한두 페이지 전체에 인쇄되어 더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정말 그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공간을 소개하고 그 다음 꼭지에는 한 페이지로 그곳을 찾아가는 방법과 주변에 같이 둘러보기 좋은 곳을 소개해줘서 여행 가이드북 같은 느낌도 들었다. 


  미술에 관해서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보다 더 적확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식견이 많이 부족해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작품이 있는 공간을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마로니에북스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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