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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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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의 ‘아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무런 의문 없이 살아가다가도, 예상치 못한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누구나 그동안 가져보지 못했던 의문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와 같은 질문들이 가슴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커다란 외부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각성을 가져오지 못한다.
2014년 4월 16일. 하루 종일 뉴스는커녕 스마트폰조차 들여다 볼 수 없을 만큼 바빴다. 저녁 회식자리에서야 뒤늦게 “세월호” 관련 뉴스를 봤다. 옆에 있던 선배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다 구했다고 하던데,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겼다. 걱정이 됐지만 나는 ‘국가’를 믿었다. 다 구해냈을거야. 일부 사망자가 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다 구할 수 있을거야. 우리나라가 후진국도 아니고, 설마.
하지만 나의 이런 낙천적인 기대는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단 ‘한사람’도 구하지 못했다. 그들은 가족들에게 단 ‘한사람’도 돌려주질 못했다. 구조가 길어지고, 제대로 된 조치가 취해지지 못하고, 구조과정에서의 문제점이 드러나며 사건의 양상은 복잡해졌다. 이건 그냥 배 한 척이 가라앉은 그런 ‘사고’가 아니었던 것이다. 남은 것은 절망뿐이다. 정말 ‘바닥’을 봤다는 말이 아니면 다르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인간성의 바닥, 절망의 바닥, 고통의 바닥.
바꿔야 한다는 데, 무엇을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는 걸까? 아니, 다들 바꾸고자 하는 의지는 있는 걸까?
<눈 먼 자들의 국가>는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글을 엮은 책이다. 김애란, 김행숙, 김연수, 박민규, 진은영, 황정은 등을 비롯해 12명의 글을 모았다. 책 한 권이 아니라 열 권으로 써도 모자랄 이야기다. 우리가 바꾸지 않는다면 이런 ‘사건’은 앞으로 얼마든지 더 일어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정경유착, 비정규직 문제에서부터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이 하나의 ‘사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가 평소 아무렇지 않게 보고 넘겼던 문제들이 결국 어떤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를 보여준 것이다. 지겹다, 그만해라, 그냥 사고 아니냐,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이들이 이 책을 꼭 읽고 ‘사건’의 본질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결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박민규는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를 ‘사고’가 아닌 ‘사건’으로 기억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자꾸만 ‘사고’로 축소하려는 자들이 있다. 세월호가 ‘사건’이 아닌 ‘사고’로 기억된다면 우리 사회의 비극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는 현대판 ‘금기’가 돼버렸다. ‘금기’를 다룬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경고한다. 무언가를 알려고 들지 말라고. ‘금기’를 깨는 순간, 엄청난 재앙이 벌어진다. 하지만 인간은 호기심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이다. ‘금기’를 들춰봐야 속이 후련한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현대인들은 더 이상 그런 ‘금기’를 어기려고 들지 않는다. 호기심은 온데간데없고, 말 잘 듣는 착한 국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세월호 승객들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내려진 명령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가만히 있으라.
사실 이런 명령이 내려지기 전부터 우린 이미 가만히 숨죽이며 살아왔다. 누가 어떤 일을 당해도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직 난 괜찮으니까, 라며 절대로 그런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내가 안 괜찮을 때는 어찌할 것인가? 정말 본인은 계속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세월호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세월호는 그만두어야 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이야기되고, 더 많이 논의되어야만 한다. 이 책은 그런 논의를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차마 쏟아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여전히 가슴 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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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리 북카페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 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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