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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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자의 춤

 

단편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는 표제와 제목이 같은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포함해 열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작가 자신이 여성이기에 여성이 살아온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지만 먼로는 여성의 이야기를 넘어서 보다 깊은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작은 소도시의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결코 배경에 갇히지 않고 모든 걸 뛰어넘어 인간의 모든 면을 깊이 있게 드러내고 있다.

 

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에서는 가장의 고단한 삶을, 사내아이와 계집아이에서는 엄마에게 묘한 경쟁심을 갖고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림엽서에서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잠시 동생에게 다녀온다고 떠나 비밀결혼식을 하고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황당한 사건의 중심인물인 배신당한 여성이다. 휘황찬란한 집에서는 집값과 동네의 미관을 위해 어떻게 하면 허름한 이웃의 집을 합법적으로 허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소시민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이미 할머니가 돼버린 피아노 선생님이 매년 학생들과 학부모를 초대해 조촐한 음악회를 여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먼로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물론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일이 결코 평범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이보다 더 황당하고 기막힌 일들을 만나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내게 어떤 재앙이 덮쳐온다 해도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티타임에서의 화제를 제공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린 세상의 모든 것에 좀 더 초탈해질 수 있지 않을까?

 

휘황찬란한 집에서는 새로 조성된 주택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기존에 살고 있던 한 노파의 집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지를 모의한다. 그나마 약간의 동정심이 있는 메리 루는 열심히 노파를 위해 변명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그저 헛된 메아리에 그친다. 세상의 불공평함에 대해 마음으로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주변의 눈치를 봐가며 그 말을 혼자 삼키고 만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통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런 일들이 습관처럼 굳어져 우린 결국 자신의 이익만 고려하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최대한 손해를 보지 않고 살아간다. 삶에서 어떤 소중한 가치도 발견하지 못한 채 말이다.

 

특히 마지막 작품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희망과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피아노 선생이 여는 음악회에 사람들은 마지못해 참석하지만 그 음악회를 여는 음악선생의 자세는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 무의미해 보이는 그런 것들이 사실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그 무엇이 아닐까? 음악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지적장애아들이 참석해 연주를 한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운 반응을 보인다. 아이의 연주는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소녀에서 여자로, 그리고 나이가 들어 주름투성이 할머니가 된다는 것. 여자의 일생에서 언제가 진정한 여자로서의 삶일까? 먼로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의 삶에서 가슴 설레었던 어떤 순간,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듯싶은 그런 순간들을 보여주는 것이 작가의 매력이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가 마음속 깊이 감춰두고 싶은 비열함과 이기적인 면, 소심함을 낱낱이 보여준다. 하지만 비록 미미하긴 해도 그와 대립되는 가능성들도 함께 보여준다. 인정사랑동정심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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