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코끼리
황경신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입 코끼리: 어른이 되는 것의 힘겨움

 

그 어떤 것이라도 다 믿을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수한 시절이 있었다. 어른이 될수록 아무나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어른이 되면 뭐든 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른은 뭐든 다 가능한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어른이 되니 할 수 없는 게 오히려 더 많다. 어른이 되면 모든 걸 다 알게 되고,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꼬마 때의 믿음이 점점 무너지며 배신당한 느낌이 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매일 밤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그 시절을 느긋하게 즐길 걸 그랬다.

 

<한 입 코끼리>에서 작가는 <어린왕자>보아뱀과 함께 그림 형제의 동화들을 다시 읽으며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어느 날 외갓집 창고에서 어린왕자를 읽던 8살짜리 는 코끼리를 삼켜 버린 보아뱀을 만나게 된다. 보아뱀은 코끼리를 소화시켜야 하니 6개월을 기다려달라고 하고, 6개월 후 와 보아뱀은 좋은 친구가 되어 함께 그림 형제의 동화를 읽는다. ‘는 주로 질문을 던지고, 보아뱀은 거기에 대답해 주는 식이다. 두 사람이 함께 읽는 동화, ‘가 던지는 여러 질문들. 그 질문들 가운데는 우리가 동화를 읽으면서 한번쯤은 가져보았을 법한 것도 있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그런 것도 있다. 우린 동화가 단순한 선악 구도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동화도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착하게 살면 모든 걸 다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며, 어떤 선택이 좋은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아이들에게 동화는 매우 중요하다. 동화는 아이들이 장차 나아갈 세상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은 동화를 읽으며 주인공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보며 장차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마음을 정하게 된다. 그리고 동화 속 이야기는 무의식에 오래 남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요즘 창작동화가 유행이고, 오히려 옛 이야기의 인기는 다소 시들해졌다. 하지만 브루노 베텔하임이라는 학자는 <옛 이야기의 매력>이라는 책에서 아이들에게 왜 옛 이야기가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 의하면 어린이는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데, 주인공과 더불어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다가 마지막에 승리하면, 자기도 함께 승리하였다고 상상한다. 어린이들은 이런 동일시를 통해, 주인공의 내적 외적 투쟁으로부터 억은 도덕률을 마음 깊이 새기는 것이다.”

 

삶에서 힘겨운 일을 만났을 때, 어릴 때 읽었던 동화들을 한번 떠올려 보자. 주인공의 빛나는 승리를. 그리고 그 동화를 함께 읽었던 보아뱀도 함께 떠올려보자. 순수한 그 시절, 우리에겐 누구나 보아뱀처럼 좋은 친구가 있었다. 우리의 힘겨움은 보아뱀과 이별한 그 순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 죽음, 이별, 배려, 이해... 이런 단어들이 가진 난해함을 이해하려 들면서부터. 8살에게 성장통이 있을까 싶지만, 되돌아보면 우리는 그 시절 세상의 의미와 보편적 법칙들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것들을 겪어내야 했다. 애완동물의 죽음, 이별을 어린 머리로 받아들여야 했고,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며 합리화해야 했다.

 

작가는 우리가 언젠가부터 질문을 잊어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무례하고, 건방진 일이 되어버렸다. 세상은 ?”가 아니라 .”라고 말하는 사람을 원한다. 하지만 질문을 잃어버리면서, 귀중한 가치들도 함께 잃어버리고 말았다. 세상은 여전히 질문이 필요하다. 그 질문이 아무리 유치한 것이라도 말이다. 작가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성장의 이야기가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절절한 허구같은 삶을 기어이 살아내야만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

 

한우리 북카페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