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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났다, 그림책 ㅣ 책고래숲 3
김서정 지음 / 책고래 / 2021년 12월
평점 :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주 작은 글씨가 빽빽한 책-아주 작은 삽화가 수록된-을 읽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림책이라는 분야를 처음 접했을 때 정말 생소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글이 적고 그림만 많은 책은 왜 볼까?’라는 생각을 했지요.
아이를 기르면서, 나름 그림책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최숙희 작가님의 책에 빠졌습니다. 그림책이라는 것이 읽을수록 마음이 찡한 부분이 있더군요. 아이를 기르면서 반성하는 부분도 있고, 뭐랄까. 저를 더 키워주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잊고 있던 기억도 떠오르고, 모르던 것도 알려주고. 해묵은 상처를 떠올려 다시 만져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림책의 매력에 빠지고, 그림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보고, 그림책의 가치를 어렴풋이 느낄 때, 김서정 작가님께서 쓰신 <잘 만났다, 그림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총 93권의 그림책 (또는 어린이책)에 대한 평론집입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서평을 평론이라고 한다지요. 서평이라고 하면 무언가 딱딱한 느낌이 들고, 왠지 작가의 의견과 내 의견을 첨예하게 비교해야 할 것만 같지만, 여기에 문학이 포함되면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집니다. 거기에 그림책이라니. 그저 평온한 마음으로 접할 수 있어서 좋기만 합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집니다. <1부, 어른들이 더 뭉클할 것 같아요>, <2부,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것 같아요>, <3부, 함께 배울 게 있는 것 같아요>. 목차만 봐도 정말 이 책을 얼마나 고심해서 구성하셨는지 마음이 찌릿해집니다. 저는 큰 목차를 보면서 “그림책은 더 이상 아이들만은 위한 책이 아니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1부에서 어른들에게 그림책을 맛깔나게 느끼도록 알려주고, 2부에서 아이들을 위한 책, 3부에서 함께 즐기도록 구성하신 것 같았거든요.
<1부, 어른들이 더 뭉클할 것 같아요>는 다시 여섯 부분으로 나뉩니다. 가슴 먹먹한 인생, 세상을 돌아본다. 자연을 돌아본다. 아이를 돌아본다, 뭔지 철학적이네, 그림책-이런 예술. 이렇게 나뉜 여섯 부분에 걸쳐 총 37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내 이름은 자가주(퀜틴 블레이크)>를 시작으로 함민복 시인님의 시를 그린 <흔들린다>까지. 한 권 한 권, 그 책이 갖는 의미와 역사, 작가님들이 이야기까지.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가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풀려 나옵니다. 정말 작가님의 스토리텔링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2부,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것 같아요>는 먹는 이야기, 노는 이야기, 안심되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 동물들의 이야기, 총 여섯 부분에 걸쳐 42권의 책이 소개됩니다. 사노 요코 작가님의 ‘나는 고양이라고!’, 문승연 작가님의 ‘안녕, 달토끼야’, 백희나 작가님의 ‘장수탕 선녀님’ 등등. 너무나 유명해서 몇 번을 읽어본 책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부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한 존 버닝햄 작가님이나 모 윌리엄스 작가님, 이수지 작가님의 책도 소개됩니다. 특히 143쪽부터 151쪽까지, ‘백희나의 음식’이라는 부제 아래 백희나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너무나도 재미있게 써 주셨습니다. ‘아! 평론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도록, 백 작가님에 대한 깊은 고찰이 가득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 왠지, 백희나 작가님의 책을 한 켠에 쌓아두고 밤새 읽고 싶은 생각이 가득 듭니다.
마지막 <3부, 함께 배울 게 있는 것 같아요>에서는 ‘자연에서 배워요’와 ‘아픔에서 배워요’ 두 부분에 걸쳐 14권의 책이 소개됩니다. 여기부터는 조금씩 분량이 늘어나서, 그림책과 어린이책이 섞여 있습니다. <청딱따구리의 선물 (이우만 글, 그림/보리출판사)> 책을 소개해주실 때는 논픽션 그림책에 대한 소개도 간략하게 넣어 주셨습니다. ‘아픔에서 배워요’ 부분에서는 역사, 환경, 성폭력, 원폭투하 등과 관련된 다소 무거운 주제의 그림책이 소개됩니다. 역시 그 안에 담겨 있는 많은 문제들 또한 하나의 스토리로 엮여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꼭!>이라고 표시해 놓은 책들을 샅샅이 찾은 것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중고서점에서,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는 것은 대출 신청을 해 놓고,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주문을 했지요. 93권의 책을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 안의 책을 다 읽고 싶네요.
총 93권의 책을 93개의 다른 이야기로 풀어 놓은 책. <잘 만났다, 그림책>을 보면서 읽는 내내 정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림책 자체가 갖는 힘에 작가님의 깊은 생각이 더해지니 시너지가 나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다 아름답지만, 특히 마음에 와닿은 한 부분을 적으면서 이 리뷰를 마치고 싶습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인간이든,
살아가는 일 자체가
남을 위해 몸을 바치는 일이란다,
이런 말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그건 비극이 아니다.
꽃 피운 상추에서 받은 상추씨가 그 삶을 되돌려준다.
그렇게 생명은 이어져가고
그 가운데 한몫을 담당하는 일은
충분히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상추들이 말해준다. -p13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