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새 - 살 곳을 잃어 가는 모든 생명들에게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114
최협 지음 / 길벗어린이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집에 오는 길에는 공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공원이라고 기억하지만, 기실 울타리가 둘러진 잡초밭이던 것 같습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간에, 그곳에는 잠자리가 참 많았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친구들과 잠자리도 잡고, 가끔씩 메뚜기나 사마귀도 발견하고, 귀뚜라미도 찾았지요. 그래서 우리의 하굣길은 늘 등굣길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집에 온 후에도, 우리는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길가에 핀 풀도 뜯어 소꿉장난도 했습니다. 겨울이면 빈터에 꾸며진 밭에 쌓인 눈을 뭉치며 눈싸움도 했지요. 봄에는 강낭콩의 싹이 올라오고, 여름에는 강아지풀도 가득했습니다. 식사 때는 밭에 나가서 상추를 뜯어 오기도 했고요. 시골의 어느 마을 같지만, 그곳의 주소지는 그때도 지금도 서울특별시로 시작합니다. 온갖 아파트와 상가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곳으로 바뀌었을 뿐이지요. 위치는 그대로인데, 더 이상 풀이 자라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흔했던 생명들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 <흔한 새>는 시냇가에 살던 노랑할미새입니다. 길이 20 cm 정도인데, 우리나라의 3월과 7월에 지나가는 철새라고 합니다 (나무위키). 참새처럼 사시사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물가에서 흔히 보던 새. 땅을 울리며 나타난 포클레인에 맑은 물이 흙탕물로 바뀌고, 냇가 풀숲은 단정한 시멘트 둑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새는 잘 보이지 않지요.


최협 작가님의 책에서는 "그립다"던지, "보고 싶다"던지 하는 말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그런 새가 있었지, 물가에 물이 흐르고, 새가 살았고, 물고기가 있었더랬지." 하며 읊조릴 뿐입니다. 글만 떼어내고 보면 너무나 담백한데, 흐르는 물, 조약돌, 물고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짧은 책 안에서 보고 있자니 담백한 글 속에 눈물이 흐르는 듯 합니다. 앞뒤 간지에 그려진, 예전과 지금의 동네의 모습을 번갈아 보고 있으면 더욱 착찹하지요.


너무나 흔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맑은 공기, 뚜렷한 사계절, 새벽마다 울어주던 집 앞의 새들, 철마다 찾아오던 잠자리, 메뚜기, 귀뚜라미, 밤하늘에 빛나는 별. 흔했고, 당연했지요. 단 한 번도 이것들이 없는 순간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만, 인식도 못한 채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계절이 바뀌어 봄이 오면, 미세먼지가 또 덮쳐 올 것입니다. 어느새 여름과 겨울은 길어졌고, 봄과 가을은 시작되는가 싶으면 끝나버립니다. 여름밤 숨죽이고 들었던 풀벌레 소리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메뚜기는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보던 별은, 정신을 집중해서 찾아야만 겨우 하나 보일 정도고요.


저 역시 문명의 발전 속에서 편안하게 살면서도 가끔은 잡초들과 함께 서 있던, 그 울타리가 생각이 납니다. 철망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잠자리를 잡던 기억도 아련하고요. 아마 우리 아이들은 그런 기억조차 갖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별을 보기 위해 멀리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봄이 오면 진달래보다 공기청정기를 먼저 떠올릴 수도 있겠지요. 제 유년 시절에 당연했던 일들이 아이들에게도 당연한 일로 남을 수 있을까요? 이미 마스크 없이 밖에 나가는 시간마저 기억 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자신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면, 어느 순간 사라집니다. 그것이 자연이든, 사람의 마음이든, 당연하게 여길수록 고마운 마음이 없어지니까요. 당연히 내 곁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들. 잃고 나니 이제야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들. 그들이 떠난 후에 느끼는 이 고마움을 전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