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됐던 책이다. 저자의 책읽는 방법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팡세>를 읽으면서 멘붕이 왔는데 171페이지의 말이 도움이 됐다.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는 글이 있는지 먼저 찾아봐야겠다. 예전에 철학책 읽다가 이해 안갈때 어린이용으로 말랑하게 각색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팡세를 다룬건 안타깝게도 별로 없어서 슬퍼졌다. 사이토 다카시 책에 팡세로 도배해서 저자에게 살짝 미안하다. 인용구 베스트 3노트는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 적용하기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좋은 퍼실레이터가 되고 싶다.

막상 읽어 보니 내 기대와 다를 수도 있고, 그래서 실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실패를 토대로 그다음에는 어떤 종류의 책을 골라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쌓여 나만의 책 목록을 만들어 가는 것 역시 독서의 즐거움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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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한트케의 <소망없는 불행>이 어머니의 삶을 회고하는 아들의 이야기라면,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는 아버지의 삶을 회고하는 딸의 이야기이다. 감정이 도드라지지 않고 건조하게 쓴 글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느껴진다. 다만 <소망없는 불행>이 어머니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남자의 자리>는 아버지와 딸이 살아가는 세계의 차이에 주목했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농가에서 살았다. 무학자였고 겨우 셈을 할 줄 알았다. 그런 할아버지 아래에서 잠시 학교를 다니며 읽고 쓰는 법을 배웠으나 초등학교는 졸업하지 못했다. 빈둥댄다고 생각한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농가로 보내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답습한 삶을 살아냈고 자녀들이 부지런하게 살며 현실에 만족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딸은 아버지의 빈정거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딸이 사범학교에 들어가 받는 혜택들을 보며 자신이 비난했던 다른 세계에 속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자부심을 느꼈던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잘 살기를 바라면서도 시대의 한계로 익숙한 삶 이상을 꿈꾸지 못했다. 그 벽을 뛰어넘으려는 자녀를 보면서 이해하지 못했고, 불안했으며, 한편으로는 질투했던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생각의 틀안에 가두어두지 않아서 한편으로 다행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아버지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성장하고자하는 욕구와 사고의 틀에 대해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된다.

스무 살이 넘은 처녀가 아직도 학교 책상에 앉아 있는 상황을, 다시 말해서 내가 그 이상하고도 비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는 상황을 아버지는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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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이 사는 사회는 포스터 벽보에 빅브라더의 눈이 쫓아다니며, 텔레스크린과 도청장치로 자유가 없다. 남한 위쪽으로 있는 몇 개의 나라가 떠올랐다. 사상이 불순하다고 지목당하면 오랜시간 사상개조를 당하게 되는데 소설속에만 존재하지 않은 어두운 현실에 슬퍼졌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얼마나 다른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승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유토피아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할 수 있을까. 자녀를 낳아봤자 국가에 노동자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고, 표현할 언어가 제한되어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며, 통제된 성욕은 오직 바깥세계에 분노하는 것으로 해소하는 세상에서 더 나은 패배를 꿈꾸며 겨우 할 수 있는 일탈이 평범한 데이트와 성관계라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라는 것도 결국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선에서의 무엇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조지 오웰의 통찰력에 경탄하며 다른 번역본으로 재독해보고 싶다. 오랜만에 하루키의 1Q84도 읽고싶다.

그건 단지 소극적인 것보다는 적극적인 것을 택했으면 하는 심리가 작용한 탓이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금 벌이고 있는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어. 하지만 같은 패배여도 더 나은 패배가 있는 법이야.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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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작가의 에세이가 읽고싶어 검색하다 눈에 띈 이 시집을 집어들었다.

<새봄>에서는 생명의 약동이 느껴진다. 씨앗이 발아할 때의 에너지는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 화롯불 속에 있는 불씨의 가능성이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좋았다.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무언가가 여기에 있다.

<1945년 8월 15일>은 제목이 모든걸 말해주고 있다. 나가 아닌 우리를 선택한건 광복의 그 날에 마음이 모였기 때문이다. 누구의 손이나 잡고 싶었다는 말에 광복의 기쁨이 넘실댄다.

<고백>은 1행과 2행의 단어의 나열만으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쟁취하기 전과 후의 단어가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화를 기대하던 이 시기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역사적 현실은 못내 아쉽다.

1945년 8월 15일/피천득

그때 그 얼굴들. 그 얼굴들은 기쁨이요, 흥분이었다. 그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요, 보람이었다. 가슴에는 희망이요, 천한 욕심은 없었다. 누구나 정답고 믿음직스러웠다. 누구의 손이나 잡고 싶었다. 얼었던 심장이 녹고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것 같았다.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모두 다 ‘나‘가 아니고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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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대학병원에서 임상심리학자로 일했다. 어느날 스스로 몰래 ADHD 검사를 했고, 다른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다.

심리학, 정신의학계에서도 성별에 따라 다른 진단이 나온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젠더 이슈에 대한 균형을 바로 잡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남자 아이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교실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통제하기 어려운 산만한 아이들은 눈에 금새 띄기 때문에 그 아이들 위주로 권고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사회에서 쉽게 비난에 노출되기 쉬운 유형이라 마음이 쓰인다. 빠른 진단과 치료가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 주변을봐도 아이문제로 병원에 갔다가 부모가 진단받은 케이스도 많은 것 같다. 약물치료와 훈련이 필요한 이들이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여기서 우리는 ADHD를 가진 여자아이와 여성이 정상에 포함되는 일에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성장기부터 시작되는 이들의 분투는 자신의 증상을 숨기는 것을 넘어 보다 나은 대처 전략을 강구하며 주의깊게 살펴볼 만한 성과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학업 성적과 같은 결과는 이들의 문제를 더 눈에 띄지 않게 만든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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