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북플 이었는지 알라딘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약간의 염려와 협박(?)이 가미된 …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라는 책의 평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책을 선물한 사람까지 싫어질 정도로 최악이라고 썼던가?
여학생들의 가방에 들어가기 위한 목적의, 표지만 예쁜 쓰레기라고 썼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평조차 다시 찾아보기 싫을 정도로 별로였던 것만 기억난다.
더군다나 100만 부 돌파 어쩌고저쩌고 해서 내가 비정상인가 세상이 비정상인가 짜증이 났던 기억도 …
메일은 대충 고발될 수도 있다 이런 내용이었던가?
명예훼손?(사실 적시겠지???)
비방?
하~ 지금은 지워 버려서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의 나는 조금은 쫄았고,
많이 분노했던 느낌이 남아 있다.
이런 걸로 뭘 메일까지 다~
성실들 하시다. 오지랖이고…
나는 지우지 않았고 고치지도 않았다.
여긴 그냥 내 독서기록이고 일기 같은 거니까.
항상 바쁘고 항상 게을렀던 나는 그러고는 잊어버렸다.
이 책을 고른 건 8할은 영화평론가 이동진 때문이다.
(2할은 왠지 철학 책이 당기는 겨울이었고~)
나는 이동진의 안목을 믿는 편이다.
그가 소개하는 영화나 책은 내 취향과 아주 잘 맞았다.
덕분에 인생 영화를, 아끼는 소설을 가지게도 되었다.
그런 그가 이 책을 그 해 최고의 책에 선정하는 바람에 주저 없이 주문했다. 들떠서
받아든 책의 띠지에는 무려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칼의 노래> 만큼 아름답다”
이 얼마나 당찬 선전포고인지~
기대감으로 게이지가 가득 채워졌다.
순식간에 프롤로그를 독파(?) 한 나는 좀 허탈했다.
그런 프롤로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얻다 대고 칼의 노래 운운하는가???
영업용 멘트라 이해는 하나 너무 과하다.
내가 받은 에필로그의 인상은
문학반에 처음 가입한 타 전공자의 그 무엇?
이쁘게만 쓰자 이쁘게만~
온통 분칠된 어색한 얼굴
문장은 형용사들이 조락 조락 매달려 무겁고도 가벼웠다.
이때 약간의 기시감이 들었다.
불현듯 언어의 온도가 생각이 났다.
잊고 있었던 그 메일도 생각이 났다.
물론 이 책이 한~100배쯤은 나을 거다.
그런데 난 왜 그 책이 생각난 걸까?
그래도…이동진 추천이양~하며 본문을 꾸역 꾸역 읽었다.
다 읽기까지 한~ 참이 걸렸고,
이번에는 그의 안목에 동의가 안됐다.
물론 내가 틀렸을 것이다.
안목이 부족해 훌륭한 책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일 것이다.
나는 조금 어려웠고 어지러웠다.
어렵다는 건 수준 높음의 동의어는 아니다.
가독성이 떨어져 어려웠고,
너무 많은 예시들을 욱여넣은 각 장들은
쉼표 없는 글을 읽는 것처럼 숨이 찼다.
나에게 철학 책이라 함은,
읽다 말고 몇 번씩이나 책장을 덮고 허공으로 눈길을 돌리게 만드는 공감.
방안을 서성이게 만드는 불편한 화두
다이어리 귀퉁이에 적어놓고 싶은 폐부를 찌르는 말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쉼’이다.
이 책의 너무 많은 예시와 인용과 용례들은 읽는 내내 나를 좀 지치게 했다. 그게 좀 버거웠다.
결론은 내가 원하는 류의 철학 책이 아니었다는 거다.
칭찬은 단 한 줄 쓰기도 버거워하면서,
험담은 어찌 이리 막힘도 없이 술술 흘러나오는 건지
수위 조절도 안되고(힙합 스피릿이라고 해두자. 아님 락?)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그 감흥이 식기 전 속지에 한 줄 쓰는 습관이 있다.(중고로 팔지도 못하게ㅠ)
책이 많이 쌓이면서 그걸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번씩 오글거리는 문장을 발견하는 게 내 웃음 벨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이동진의 영화 한 줄 평 쓰는 거랑 비슷하네
“상승과 하강으로 명료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ㅋ 요런 오글거림
하지만, 이건 초등학생 때부터 꼬물거리고 써 왔던 거라 온전히 나의 습관이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속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꿰어지지 않고 산산이 흩어진 구슬.
길을 잃게 하는 산만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