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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바이올린
진창현 지음, 이정환 옮김 / 에이지21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에 이끌려 읽고 싶었던 책인데 내게도 읽을 기회가 왔다. 사실 책은 받았지만 한 참 후인 어제에서야 책을 펼쳐서 보게되었다. 그런 나는 참으로 괘씸하다. 그저께 아주 조금만 읽고 어제 4시간동안 이 책에 이끌리듯한장 한장을 읽어치워나갔다. 진창현 선생님의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엄청난 인생이 담겨있는 책이라 읽어가면서 가슴속에 존경심을 비롯해 감탄, 뜨거운 감동 등이 내 가슴속에 쌓여갔다.
우선 목차는 바이올린의 현으로 4현으로 인생의 막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 밑에 자잘한 제목들이 있었다. 제1현, 제2현, 제3현, 제4현 이런식으로..바이올린을 사랑하고 제작하는 사람의 인생 스토리라 막의 제목도 독특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인생에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나는 현으로 표현한 인생의 제목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 분의 어린시절은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얘기를 해주듯이 편안했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동안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다. 순진무구한 진창현 할아버지의 어린시절...진창현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마음이 여렸던 것 같다. 강가에서 작은 은어를 잡는 것 만으로 그 은어들도 나처럼 몸이 약한 녀석이 아닌가 하고 동정심을 느끼고 은어에게 자신의 모습을 겹쳐 생각하면서 은어를 불쌍히 여겼었다. 그 모습에 이 분은 마음이 참 따스하고 여린분 같다. 라고 확신했다. 줄곧 어머니에게 들었던 옛날 시대를 글로 읽으면서 상상해보니 묘한 느낌과 그리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옛날의 여성들은 아들을 낳지 못하면 내 쫓기는 현실을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접하니 마음아팠다. 진창현 할아버지의 어머니도 옛날 시대의 그랬던 여성 중 하나였고 하나뿐인 아들이라 소중한 존재였다. 진창현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마음이 너그러우시고 아들을 감싸주시는 든든한 지원군 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 향수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행동이 겹쳐져서인가...한국의 모든 어머니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어머니를 보더라도 자신의 어머니를 보는 듯한 기분에 그리움이 생긴다. 혹시 나만의 생각일까?
진창현 할아버지가 바이올린과 첫만남을 가지게 된 것은 약장수가 약을 팔기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했을 때 라고한다. 그 당시 처음으로 듣는 아름다운 선율에 약장수가 올때마다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연주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하숙했던 아이카와선생에게 바이올린을 조금 배우고...몇년뒤 일제시대때문에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니기 어려웠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야간학교를 다니셨다. 배움을 위해 힘들더라도 일을해서 학교를 다니는 당시의 학생들의 모습은 현재의 학생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났다. 요즘의 학생들은 학교 가기 귀찮아, 그만두고 싶어 라는 말을 서슴치 않게 뱉고 열심히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거의 학원에 의지해서 다닌다. 정말 딴판이지 않는가. 옛날엔 하나라도 더 배우기위해 학교를 열심히 다녔는데..지금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노동을 하면서 메이지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막노동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갈때 이 대학의 교수의 바이올린 강의를 듣고 어린시절 바이올린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바이올린을 제작하기로 결심하도록 계기가 된 강의였다. 대학시절의 린타쿠 이야기에서 미군들이 서로 자신을 차지하려는 이야기는 꽤 재미났다. 린타쿠란 인력거와 똑같다고 보면 된다. 어느정도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았던 진창현 할아버지는 미군들에게서 인기가 많았다. 진이 아니면 안된다고 하는 미군들을 보고 왠지 내가 더 기분이 좋았다.
산골마을에서 건설회사의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어 판잣집을 만들고 바이올린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고 연구하는 부분에서 두근두근 거렸다. 이제 바이올린을 제작하려고 하는구나! 그 전에 바이올린을 만들거라는 일념 하나로 노동을 반복하며 살아온 인생이 드디어 진가를 서서히 발휘 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제작할때 한번에 멋진 작품이 나오기란 어려웠다. 쉬운게 아니었다. 몇번의 만들어보면서 기술을 터득해야했다. 바이올린을 만드는동안 고물상의 딸과 여러번을 만남들 가지다 결혼하게 되었다. 나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옆에서 지켜봐주고 격려해주는 존재로 인해 진창현 선생님이 더욱 발전 할 수 있었다. 동반자라는 존재가 곁에서 엄청난 힘이 되어줄 수도 있구나..
- “이 집에 정신병자가 살고 있다며?”
- “어머나, 무서워!”
- 그리고 재빨리 도망친다. 물론 아이들만이 아니다. 좁은 마을에서는 소문은 즉시 퍼져나가 마을사람들 전체가 길에서 나를 만나면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눈을 흘깃거리거나 비웃음을 흘렸다. 정신병자 취급을 받은 나는 그때마다 고독감을 느끼며 슬픔에 젖었다. 인간이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결국 그런 고통을 잊도록 해준 것도 바이올린 소리였다. 새롭게 제작할 때마다 소리가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것이 유일하게 내 마음을 지탱해 주었다. - p195
타국에서의 외로운 생활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슬픔에 젖었다는 부분에서 눈물이 나올정도로 안타까웠다. 아는 이 하나없이,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란 어렵다. 오직 바이올린만이 자신을 위로해주고 즐겁게 해 주었을만큼 바이올린에 대한 사랑이 컸다. 글을 읽는동안 그 사랑이 짜릿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진창현 선생님이 197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국제 바이올린, 바올라, 첼로 제작자 콩쿠르에서 6개 부문 중 바이올린 세공, 비올라 세공과 음향, 첼로 세공과 음향부분 5개 부분에서 금매달을 획득했다. 6개중 5개나 금매달을 획득했다니...놀라웠다. 내가 상상으로만 생각해보았을 그런것을 실제로 획득한 사람이 진창현 선생님이다. 나는 5개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청춘을 바이올린에 대해 바쳤고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보다 나은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서 금매달을 획득하고 전 세계 다섯 명박에 없는 ‘무감사 마스터메이커 제작자’중 한명으로,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제작하는 바이올린 제작의 제 일인자가 되었다. 멋지다....아무런 지식없이 바이올린에 대한 애정하나로 열심히 만들어 기술을 쌓아왔는데 열심히 노력한 결과 이렇게 멋진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분의 노력과 인내에 큰 박수를 치고싶다.
진창현 할아버지의 바이올린은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피나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다른 바이올린 과는 다른 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같다. 진창현 할아버지만의 특별한 아름다운 음색이라던지...열심히 만드려고 노력했으니까 이렇게 좋은 음색을 내는 것 같다.
내겐 생소했던 바이올린 이야기 이지만 진창현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점점 익숙한 존재로 바뀌었다. 진창현 선생님께 익숙한 존재인 만큼 내게도 바이올린이 익숙한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다고 바이올린을 배우거나 할 것은 아니지만...지금도 살아계신분이라 만나뵙고 싶다. 하지만 일본에 계신지라 만나기가 어렵다.....아쉽다. 내가 어른이 되어 만나려면 이 분은 돌아가실것만 같은 생각이든다. 언론에서라도 지켜볼 수 있도록 오래오래 사시면서 명 악기들을 많이 만드시길 바란다.
이분의 인생은 하나라도 부족한 점이 없다. 손색이 없을만큼 멋진 인생을 살아오셨다. 이 위대한 인생을 책으로 읽게 되어 영광스럽다.
에필로그에 그분이 한말 중 깊게 와닿은 말이있다. 자신이 몸소 실천한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 아무리 결과가 보이지 않는 희망일지라도 정열을 가지고 진지하게 도전하여 끈기 있게 지속한다면 언젠가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메시지로 남기고 싶다. -p339
라고 하셨다. 이말을 왠지 믿고싶다. 그러나 나는 못할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진창현 선생님의 인생기를 보면서 확실히 보이지 않는 희망이라도 정열을 가지고 진지하게 끈기 있게 지속한다면 반드시 길이 열리는 것을 봤지만 나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못할 것 같지만 내가 이런상황에 놓였다면 이 말을 되새겨 한번 실천 해 보고 싶다.
-조선인 이라면 말조차 붙이지 못하게 했던 그 시절 내게는 ‘조센징’ 이라는 거북이 등짝지 같은 사형수의 수인번호보다 더한, 낙인을 지고 다녀야 했다.
바이올린 제작 기술을 사사박으려 해도 내게는 누구 하나, 반겨주는 일본인 제작자는 없었다.
부는 바람에 귓볼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추운 겨울 산골짜기 외딴 기차역에서 바깥보다 더 냉기가 도는 칠일 밤을 지내며, 나는 언 몸보다 더한 민족의 설움에 차마 울어 보지도 못한 채로 목 안으로 삼켜야 했다.
한국인도 아닌 조센징으로 개만도 못한 쓰레기 신세로 대접아닌 처분을 기다리면서도 내게는, 바이올린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고야 만다는 하늘의 소명이 있었다. - 뒷 책갈피
세계적으로 위대한 장인의 인생...쉽게 안 만들어진다. 위의 글처럼 저런 아픔과 고통 슬픔을 겪어보면서 성장하는것이다...저런 인생을 겪었기에 실력이 쌓이고 인생의 경험자가 된다. 전쟁이라는 안 좋은 상황에서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있던 진창현 선생님의 서러움은 글에서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가슴이 아리다....한국인 이라는 이유로 여러군데를 찾아다니다 결국 스승을 못 만나고 혼자서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것이 마음아팠다. 이런 경험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데 토대가 되어 지금은 무감사 마스터베이커 제작자 중 한명으로 불린다. 젊을 땐 고생이지만 지금은 젊을때의 고생이 뒷받침해주어서 바이올린 하나를 팔더라도 엄청난 가격으로 팔리니까 이젠 고생을 하지 않으셔도 되고 인생을 편하게 사실 수 있으실 것 같아 흐뭇하다.
책을 다 읽고 뜨거운 감동이 끊임없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