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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할레드 호세이니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로 읽는다. 작년에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라 단번에 그의 팬이 돼버렸다.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첫 작품이라 다음 작품은 얼마나 기다려야하나 싶었는데 올해 말, 그의 작품이 출판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었다. 보고 싶었던 작가가 후작을 들고 왔기에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이번 작품 또한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전개 되는데 두 여자의 이야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마리암은 열다섯 어린 나이로 마흔 다섯의 구두장이 라시드에게 팔리듯이 시집을 간다. 강제로 하게 된 결혼이었지만 남편의 다정함으로 버림받은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가던 마리암,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계속되는 유산과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남편 라시드의 구타로 그녀의 삶은 끔찍해진다.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삶, 그렇게 마리암은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모진 세월을 견뎌낸다. 전쟁으로 인해 옆집에 폭탄이 떨어져 지식인의 딸인 열세 살짜리 소녀 한 명만 살아남는다. 소녀의 이름은 라일라. 라시드는 소녀를 구하고 마리암과 함께 돌봐준다. 가여운 아이를 돌봐준다고만 생각했던 마리암과 달리 평소 라일라의 아름다운 외모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라시드는 그녀를 둘째부인으로 삼는다. 지식인 부모를 가졌고 사랑하는 연인도 있는 라일라였지만, 부모의 죽음과 뒤이은 연인의 사망 소식, 그리고 자신의 뱃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연인의 아이 때문에 라일라는 라시드와의 결혼을 받아들이고 만다. 결혼 후, 라일라는 뱃속의 아이를 라시드의 아이로 속인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전쟁은 그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전작 <연을 쫓는 아이>가 주인공이 전쟁을 피해 외국에서 살았다면 이 책은 주인공이 그 나라에서 몸소 전쟁을 겪는 내용이라 전쟁의 참혹함이 적나라하게 들어났고, 호소력이 강하다. 게다가 그 책은 소년의 성장과 죄의식에 관한 내용이 대다수였다면 이 책은 전쟁 자체가 내용이 대다수다. 실제로 전쟁을 느껴보진 못했지만 작가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겪었던 전쟁을 경험으로 써 나갔는지라 전쟁의 흉포함은 훨씬 충격적이었다.
국민들을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탈레반들의 이기심에 화가 났고 그 나라의 문화를 내가 관여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여자들의 삶이 옛 조선의 여자들의 삶보다 더욱 하등 시 됐고 남편의 폭력에도 그저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는 아프간여인네들의 비애가 몸소 느껴졌었다. 여자들에겐 결코 피할 길이란 없는 나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마리암과 라일라가 남편의 폭력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은 측은하기도 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잘못된 의식으로 화가 났다. 아프간 여인들의 삶은 불공평한 것 같다. 여자들에겐 인권 따윈 없는 나라. 그래서 더 슬픈 나라.
책 표지에 두 여자의 아름다운 우정이라기에 중반주 까진 책을 읽으며 왠 우정일까? 싶었는데 결말까지 보고 난 후 아, 그제 서야 두 여자의 찬란하디 찬란한 우정이란 말에 동감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가슴 찡한 우정이다. 한편으론 마리암이 살아온 인생이 더 행복해지지 못해 끊어져 안타깝기도....마리암의 희생으로 라일라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옛 연인과 재혼하여 자신의 불쌍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그들은 행복하지만 나는 울어버렸다. 마리암의 희생이 생각났었다.) 줄곧 읽는 동안 주인공을 비롯해서 아프간 여인들의 비참하고 불공평한 생활에 분개하며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살더라도 결말엔 주인공들이 행복해져서 화선지에 물이 스멀스멀 스며들 듯, 내 가슴도 함께 그렇게 스르륵 스며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평화롭게 책을 읽는 동안 아직도 지구촌 어디엔가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1세기가 왔건만 전쟁은 여전하다. 이 책에서 나온 것처럼 아프간을 비롯해서 아직도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에스파냐, 미국과 이라크에선 책에서 나온 전쟁 장면이 실제로 나오겠지. 비로소 전쟁이 어떤 것인지 실감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쟁의 흉포함에 시달리는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어서 전쟁 없는 행복한 나라가 찾아왔으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대부분 이슬람 문화에 대해 해박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와는 먼 나라이고 교류가 활발한 나라가 아니므로 일본이나 미국만큼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저 이슬람 종교이고 여자들이 히잡을 쓰고 다닌다는 사실밖에...나 또한 <연을 쫓는 아이>를 읽을 땐 그랬으나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아프간이 친근한 나라같다. 다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으니 이젠 아프간 문화에 대해 알고 있다 자부해도 좋을 정도로 소설 배경 속에 묻어나온 아프간 문화 지식을 많이 섭렵했다. 멀고 낯선 나라를 단번에 나와 가까운 나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책의 힘은 놀랍다. 그 나라에 대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받고 그 나라에 친근감을 비롯한 애정을 가질 수 있다니. 앞으로 아프간에 더욱 지대한 관심을 가질 것 같다.
호세이니의 전작과 후작을 비교하자면, 나는 연을 쫓는 아이가 더 괜찮았던 것 같다. 이 책처럼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비참해지고 슬픔 삶은 가슴이 미어지기 때문이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읽지 못하겠다. 그렇게 산전고수를 겪은 탓에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행복해지는 장면은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감정이 생길 수 있는 과정을 읽고 있는 건 너무 힘들다.
책을 읽으며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가,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해주며, 나는 상관없이 친구가 더욱 행복하길 바라고 선뜻 자신이 희생할 수 있는 우정....아,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 벅찬 우정이여. 주인공들의 자세에서 많은 걸 배웠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같은 그녀들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