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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 -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한재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723/pimg_7235811672252295.jpg)
어금니 물고 24시간을 견딘다. 그렇게 오늘 한 일을 내일도 할 수 있는 24시간을 만든다.
퇴사 후 나의 삶은 그런 식으로 굴러왔다. 원하는 바가 있어 직장을 버렸으니, 원하는 바를 잃지 않는 게 중요했다. 자리를 잡고 방석까지 깔아둘 참이던 회사를 나올 땐 그만한 각오가 있었던 거다. 이번만큼은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혹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와 에이 이 못난 것아! 하며 코를 비틀어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외려 더 얼굴을 들이밀어야 한다고.
자존심 버리고 염치는 까먹고 필요하면 간뎅이도 배 밖으로 내놓고 가끔 배도 째라 설치면서 아무튼 버티자고 생각했다. 더는 못 해먹겠다고, 스스로 뒤도 안 돌아보고 다른 길로 나설 때까진 앞으로 가는 거다. 누가 뭐라 하든 일단 내 갈 길로 발부터 뻗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른이 넘어 하는 퇴사에 대한 압박감이 이상한 쪽으로 발휘된 게 아닌가 싶지만 당시엔 정말 그만한 비장함이 있었다. 머릿속엔 온통 전진뿐이었고 나는 곧 성능 좋은 불도저가 되었다. 엄마 말 아빠 말 하나도 들리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영혼을 갈아 넣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만 필사적이었다.
그러고 있는 내 뒷배경으론 꿈이란 낭만적인 말이 민망할 정도로 거대하게 깔려있었다. 죽을 만큼 안 해봐서 못 이룬 거라고 죽을 때까지 미련 떨까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내게 남아있는 유일한 낭만이자 마지막 도전이라 해도 좋았다. 퍽퍽한 성격에 게으르고 모험과 도전이 싫고 매사가 무심하거나 비관적인 나에게 이런 무모함은 다신 없을 테니까. 구독자 수 70명으로 시작된 로맨스 소설 쓰기 같은 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힘들 때가 있다. 잘하고 있고, 더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마구마구 들다가도 문득 여기가 어딘가 싶어졌다. 모른 척 지나쳐 온 찌푸린 얼굴들이 한꺼번에 다 몰려오는 때였다. 나는 내가 뭐라도 되지 않으면 그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로 열심히 해왔는데, 그게 틀렸다고 하면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막막했다. 고질병 같은 시간이었고, 해가 갈수록 심화됐다. 일정 주기도 없이 지 멋대로 들이닥치는 시간이어서 멀쩡하게 잘 걷던 내 무릎을 별안간 꺾어놓기도 했다.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이 내 손에 들린 것도 마침 그때였다. 무릎 꿇려 앉고 보니 이게 다 뭔 짓인가 싶을 때. 여기가 앞인지 저기가 앞인지 몰라서 뒤를 돌아보면 내가 찍은 발자국이 전부 다 똥으로 보이는 한여름에.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은 한재우 작가의 에세이다. 일단 제목이 뼈를 때렸는데 작가의 이력이 또 같은 자리를 쳤다. 서른 살 넘어서부터 꾸준하게 글을 썼다는 건 그렇다 쳐도 주3회 팟캐스트를 몇 년도 펑크도 없이 올렸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주2회 연재를 해봐서 알았다. 꼴딱꼴딱 매일같이 숨이 넘어가서 간신히 살아남았었다. 매일 연재도 해봤는데 그 시간은 기억에 남은 게 없었다. 아마 난 한번 죽었던 것 같다.
남에게 내보일만한 창작물을 제작하는 건 대단한 일이고 그걸 주에 몇 번씩, 약속된 시간을 꼬박꼬박 지켜서 선보인다는 건 더욱더 대단한 일이다. 이 부분은 몇 번을 반복해서 언급해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굉장한 일이니까. 나는 거기서 저자의 버티기 내공을 알아보았다. 저자를 향한 신뢰감이 단박에 머리끝까지 오른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책속엔 34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었다. 무언가를 가르치려기보단 자신의 이야기를 그저 덤덤히 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주장하는 바가 설득력이 있어서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34편 모두가 설득력이 있었다는 뜻이 되므로 그건 그거대로 대단해보였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에게, 달리는 이에게, 넘어진 이에게, 그래도 계속하려는 이에게 차례로 말을 건넸는데, 이중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으므로 결국은 모두를 위한 응원이라고 해석했다. 이거 참 좋은 책이잖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도 재미있는데 배울 것도 많아서 읽는 보람이 있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뜨끔할 때가 더 많았다. 억 또 내 얘기야? 소제목이 나올 때마다 나는 흠칫거리며 경계의 눈초리를 쏘았다. 저격을 하도 당해서 나 저격하려고 쓴 책인가 하는 자의식 넘치는 생각마저 들었다. 뭐……좋은 일이었다. 집 나간 내 자의식이 그렇게라도 돌아왔으니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느껴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제야 나도 좀 내가 제대로 보이는 듯했다. 아 나 씨 또 땅바닥에 퍼져 있어.
이 책은 버티기 힘들 때, 하지만 버티고 싶을 때 버릇처럼 꺼내보기 좋을 책이다. 어느 쪽을 펼친들 그날의 마음을 다지는 문장 하나쯤은 주워 새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멀지 않은 자리에 꽂아두었다. 버티는 삶을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렇고 그런 응원은 쌔고 쌨어도 귀에 들리고 마음으로 들어오는 응원은 만나기 힘들었다. 그래서 곱씹게 되는 문장을 발견하면 그렇게 고맙고 기뻤다. 이 책은 그런 기쁨이 될 확률이 높았다.
“버티는 한 우리는 기대할 수 있다” 는 저자의 말을 꼭꼭 씹다보면 개미 눈곱만한 오늘의 성취도 내일을 위한 커다란 퍼즐 조각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헛된 노력, 헛된 버티기는 없다던 식상한 말이 오늘 처음 들어본 진리처럼 새로워지고, 어느새 나는 무릎을 탁탁 털고 일어나 노트북 앞으로 달려 나간다. 그 결과 이 글이 나왔다. 정신차려보니 어느덧 이만큼이나 써버렸는데, 버티기로 안 읽혀도 좋으니 이불킥으로 남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진짜 왜 이렇게 내 이야기 하는 게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아무튼.
모처럼 깊이 닿는 책을 만났다. 덕분에 일어설 힘을 얻었노라고 여기 써둔다. 미래에 또 퍼져 있을 나는 이 글을 보고 경험을 살려 발딱 일어나기를 바란다.
나의 능력은 내가 그은 한계 안에 머물지 않았으며 한계라고 여긴 곳의 근처에 있지도 않았다. 나는 그보다 훨씬 컸다. 알았건 몰랐건 막상 부딪혀보니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유능했다. - P135
할 수 없다고 여기는 많은 일들 중에서, 단지 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 P135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언덕길에서 수레를 미는 일과 같다. 내버려두면 내려가기 때문에 제자리에서 편히 쉰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쉰다고 생각하는 일이 사실은 퇴보인 이유다. - P158
열정이 안 생기면 책임감으로 열심히 하면 된다. 내 삶에 대한 책임감이다. 어느 쪽이든 묵묵하게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똑같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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