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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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소는 사람을 부른다. 사람이 장소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장소가 스스로 다가와 있다. 피 맺힌 땅들이 주로 그런다. 거기엔 항상 남은 이야기가 있다. 파헤치기만 하면 되는 이야기가. 파헤칠수록 발목이 꽉 잡힌 채 질질 끌려들어가는 암울한 구덩이 같은 이야기가.

 

오싹한 일이다. 지금 읽기 딱 좋다. C. J. 튜더라는 타이밍의 귀재는 본인이 돌아올 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얄미울 정도로 적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근 1년의 기다림이 전혀 아깝지 않아졌다. 기다리길 잘했다. ‘스티븐 킹의 강력추천!’여자 스티븐 킹이라는 사실이 확장되었다!’로 바뀐 카피 위로 손을 얹고 묻고 싶어지는 맘이다. 자 그래서 다음 작품은 언제 나온다고요, C. J. 튜더 킹?

 

소설은 주인공인 조지프 손이 의문의 메일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본격적인 포문을 연다. 솔직히 식상하다. 그런 일을 겪은 스릴러 주인공이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올해만 벌써 셋인지라 이건 2019년 트렌드인가 싶을 정도다. 그래서 저자도 몇 가지 장치를 설치한 건지 모르겠다. 아이의 머리를 박살내고 자신의 머리를 쏴 죽은 여자의 살인현장을 프롤로그로 먼저 깔아둔 거나, 고향으로 돌아온 우리의 주인공은 하필 딱 그 집을 계약해서 살기로 한다거나, 그 사건이 또 하필 그의 동생에게 일어난 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직감을 빡!

 

무엇보다 주인공이 심상치 않다. 도박꾼이고 빚쟁이에 쫓기는 처지인데 교사 면접을 보러 왔다. 사기꾼 냄새가 폴폴 풍기고, 그래서인지 절뚝거리는 한쪽 다리의 역사가 한층 더 복잡해 보인다. 등장만으로도 독자의 경계심은 바짝 솟아오른다. , 이 인간 뭔가 있는데. 그리곤 바로 아차 싶지. 아 설마 나 벌써 당한 거?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학교 선생님이라는 주인공의 직업, 네 명의 어릴 적 친구와 그들의 동요. 밝혀지는 과거와 더럽혀지는 유년기의 순수와 우정 등 전반적인 구도가 전작인 초크맨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미스터리에 훨씬 더 치중되어 있어서 꼭 공포영화를 보는 듯하다. 공포영화에 나올법한 소재들도 다수 등장한다. 인형이나 벌레, 무덤, 뼈 같은 거. 호러라면 질색하는 나로서는 뭐 하나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상상하고 싶지 않아도 눈앞으로 영상이 펼쳐지는 게 소설의 마법이므로, 이따금 알 수 없는 탄성을 뇌까리며 몇 가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야잇 너가 왜 거기서 나와? , , ! 뭔데? 이번엔 또 뭐가 오고 있는 건데?

 

공포 영화가 그렇듯 이론적으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더러 일어난다. 그런 일들은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기에 더 무서운 건데, 그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 등장해서 나는 또 야 이씨 저 이씨하며 온 사방의 이씨들을 찾았다. 진짜 사람이 무섭다. 특히 나는 글로리아가 너무 무서워서, 그 사람이 등장할 때마다 다음 장 읽기가 무지 떨렸다. , 그렇다고 소설이 무섭다는 소린 아니다. 공포영화에 비유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현실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현실주의자거나 사건의 명료한 인과 관계를 중요시하는 독자들에겐 아쉬운 부분일 것 같기도 한데, 나 역시도 소설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했을 땐 증발해버린 개연성을 찾느라고 툴툴 거렸었다. 이게 말이 되냐? 싶었는데 그래 일단 말이 된다고 치자, 하고 읽어 나가니 오싹하고 쫄깃한 게 이 작가 또 작정하고 썼구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구성도 좋고 문장도 좋다. 막판엔 기대도 안 하고 있던 반전이 후루룩 쏟아져서 정신이 멍해질 수도 있다. 장르 특성상 내용을 더 언급하고 싶진 않고 하나만 딱 더 덧붙이고 끝내야겠다. 이 작가 다음 책 나오면 또 사서 볼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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