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 아이 러브 오베!

 

 

 

  “젠장. 팔이 없는 놈이 백내장에 걸렸어도 너보다는 후진을 잘 할 거다.” (31p)

 

   아니, 할아버지 후진 한 번 못했다고 그렇게 심한 말씀을 하시다니요. 오베를 처음 보면 아마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이 할아버지 좀 지나치게 까칠하다. 이야기 시작부터 등장한 ‘아이패드를 사러 간 오베’를 보라. 매장에서 이 정도면 진상취급받기 십상 아닌가. 꼬박꼬박 6시 15분 전에 일어나 누가 시키지도 않은 동네 시찰을 하는 것, 문고리는 항상 세 번씩 당겨 확인하는 것 등을 보면 약간의 강박증세도 보이고, 동네 길고양이에게조차 자비가 없는 걸 보니 아주 인색한 노인이 분명하다. 더 괴이한 것은 천장에 고리를 설치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남자는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

 

   처음엔 나 역시 이런 괴짜 주인공에 꽂혀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어디서도 쉽게 주워듣기는 힘들 오만가지의 불평불만을 목격하며 시원시원하게 책장을 넘겼다. 정말 보통 분이 아니시군요, 하다가도 그 폭풍 잔소리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인 양 속 시원하기도 했고 이따금은 꼭 나한테 하는 소리인 양 내심 찔리기도 하고. 흥미로운 진행이었다. 조금 더 지나서는 마음을 다해 파르바네를 응원하고 있었다. 아니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여러분, 모두 좋습니다, 지금 아주 좋아요. 지금 그대로 오베의 자살계획을 망쳐주세요! 그의 말대로 “동네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고 있”(53p)었다. 그리고 아내를 잃고 무채색의 삶을 살고 있는 오베의 인생의 질서가 마구마구 무너진다. 굿잡!

   “저 동물한테는 온갖 역겨운 질병에 광견병이나 뭐 그런 게 잔뜩 있다고요!”

   오베는 고양이를 보았다. 그리고 금발 잡초를 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당신도 그럴 거고. 하지만 우린 그거 때문에 당신한테 돌을 던지진 않잖아.” 78p

 

   “내가 사람들과 싸우면 당신 진짜로 속상해하는 거 알아. 하지만 사실은 일이 이렇게 된 거야. 내가 당신한테 올라갈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줘야겠어. 당장은 죽을 시간이 없거든.” 399p

 

   “남자애라도, 뭐. 요즘은 남자애들도 분홍색 쓰잖아. 아냐?”

   파르바네가 연푸른색 아기침대를 보았다. 그녀가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울면 안 줘.” 오베가 경고했다.

   어쨌거나 그녀는 울기 시작했고, 오베는 한숨을 쉬고는 ―“젠장, 여자들이란.”― 몸을 돌려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402p

 

 

   오베가 예의 그 경찰용 권총 같은 손가락을 공중에 푹 찌르더니 점원에게 똑바로 겨눴다.

   “야! 나는 걔한테 제일 좋은 걸 주고 싶다고! 알아들어?” 430p

 

 
 

   프레드릭 배크만. 처음 보는 작가지만 감히 단언하는데 그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타고난 기질이 있다. 한 소설에서 많은 캐릭터에 반하기에는 쉽지 않는데,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에게 반해버렸다. 진솔하지 않은 캐릭터가 없었다. 마음이 기울지 않는 캐릭터도 없었다. 하물며 고양이까지 나를 휘어잡았다. (아, 하얀셔츠. 당신은 좀 고민을 해봐야겠다.) 캐릭터들이 저마다들의 개성과 매력으로 나를 울리고 웃겼다.

특히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프레드릭 배크만은 사랑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말이지 사랑을 사랑하는 인물일 것이다. (아니라면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로맨틱한 남자들을 써낼 수 없을 테니까!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 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189p

 

   아마 그는 그녀에게 시도 써주지 않을 테고 사랑의 세레나데도 부르지 않을 것이며 비싼 선물을 들고 집에 찾아오지도 않을 테다. 하지만 다른 어떤 소년도 그녀가 말하는 동안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좋다는 이유로 매일 몇 시간 동안 다른 방향으로 가지는 않았다. 207p

 

   소냐의 어미는 소냐를 낳자마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재혼하지 않았다.

   “난 여자가 있어. 지금 집에 없다 뿐이지.” 가끔 누군가 감히 그 질문을 던지면 그는 그렇게 툭 내뱉었다. 209p

 

 

   “지금보다 두 배 더 날 사랑해줘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오베는 두 번째로―또한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가 지금껏 그녀를 사랑했던 것보다 더 그녀를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음에도. 232p

 

   “그래서, 공구는 있고?” 그가 물었다.

   젊은이는 고개를 저었다.

   “공구도 없이 자전거를 어떻게 수리할 건데?” 오베가 놀랐다. 마음이 동요했다기보다는 순수하게 놀란 쪽에 더 가까웠다.

   젊은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요.”

   “그럼 수리는 왜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젊은이가 눈을 걷어찼다. 민망한 듯 손 전체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사랑하니까요.” 310p

 

   “다른 집 아내들은 자기가 머리를 새로 한 걸 남편들이 못 알아본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잖아요. 제가 머리를 하니까 우리 남편은 내가 달라졌다고 며칠 동안 짜증을 내더라고요.” 353p

 

   오베가 대신 화를 냈다. 어쩌면 그는 사악한 만물이 자기가 만났던 단 한 사람, 그에게는 과분했던 그 사람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누군가 그녀 편에서 화를 내야 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세상 전체와 싸웠다. 354p

 

 

    그리고 프레드릭 배크만은 그야말로 이야기꾼이다. 오베라는 남자의 인생을 통해서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너무도 다양하고 풍부하고 감동적이다. 그리고 매 회 재미있다. 이 굉장한 소설은 그의 블로그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만일 연재식이었다면 나는 주저 없이 구독해두고 스마트폰 어플을 누를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의 블로그를 눌러댔을 것이다. 하루에 하나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건 아주 특별한 유희라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들이 재미를 넘어 감동까지 선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을 강력히 추천한다.

   그녀는 그가 자기 말을 듣는 태도가 좋았다고, 그녀를 웃기는 것도 좋았다고, 자기는 그거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그에게 삶에서 정말로 원하는 게 뭐냐고, 만약 원하는 걸 고를 수 있다면 뭘 택하겠냐고 물었다. 그는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집을 짓고 싶다고 대답했다. 집을 건설하고 싶다고, 도면을 그리고 싶다고, 부지에 집을 세울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계산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그녀는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웃지 않았다. 그녀는 화를 냈다. “그럼 왜 안하는 거죠?” 그녀는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했다.

   오베는 그 질문에 딱히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188p

 

   그녀는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영웅이신걸요!”

 

   “정신병자가 틀림없어, 저 여자.” 오베가 고양이에게 말했다. 고양이는 반대하지 않았다. 263p

 

   오베가 자기 주변에 모인 인간들을 보았다. 마치 자기가 유괴라도 당해서 평행 우주로 납치된 듯. 잠시 그는 방향을 홱 틀어 도로를 벗어날까도 생각해봤지만, 이내 최악의 경우 이 인간들 모두가 그와 함께 사후 세계까지 동행하게 되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을 얻자 그는 속도를 줄이고 자기 차와 앞차 사이의 간격을 충분히 벌렸다. 285p

 

   “들어봐요.” 오베가 조심스레 문을 닫으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애도 둘이나 낳았고 곧 셋째도 뽑아내겠지. 엄청나게 먼 나라에서 왔고, 아마 전쟁이나 박해나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피해 왔을 거요. 낯선 말을 배웠고, 교육도 받았고, 누가 봐도 무능한 인간들과 가족도 이뤘어. 지금까지 당신이 뭐 빌어먹을 거 하나라도 두려워하는 꼴을 본 적이 있다면 난 급살이라도 맞을 거요.”

   오베가 그녀의 눈에 시선을 고정했다. 파르바네는 여전히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오베가 그녀의 발아래 페달을 도도하게 가리켰다.

   “내가 뇌수술을 하라는 것도 아니잖소. 차를 운전하라고 하는 거라고. 차에는 액셀러레이터, 브레이크, 클러치가 달려 있어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멍청이들도 이걸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았다고. 그러니 당신도 할 거요.”

   그리고 그는 다섯 단어로 된 말을 내뱉었다. 파르바네가 오베에게 들었던 가장 사랑스러운 칭찬이라고 언제까지나 기억하게 될 말을.

   “왜냐하면 당신은 완전히 멍청이는 아니니까.” 323p

 

   개인적으로 요즘 이런저런 사정으로 뷰티블로거들의 블로그를 많이 보는데. 그들식대로 표현해보자면, “이건 무조건 사요, 그냥 사요!” 다. 이런 소설은 읽어줘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따뜻해지지. 아, 거기까진 너무 오바인가. 그게 아니라도 적어도 읽는 사람의 마음은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따뜻해진다. 이런 온기가 너무도 고맙고 기쁘다. 솔직히 말해서 모든 페이지가 완전 다 웃기다! 라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꼭 읽어야 할 만큼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것만큼은 꼭 말하고 싶다.

 

   많이 웃고 엄청 울었다. 이런 소설을 만나서 참 기쁘고 고맙다. 다소 이상한 결론인 것도 같지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삶의 아름다운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희망을 전달받은 기분이다. 오베처럼 누구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할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 물론 그처럼 까칠해지는 건 좀 곤란하겠지만.

 

   마지막으로, 아이 러브 오베. 진짜 최고. 할아버지 내 스타일!

 

   사람들이야 당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되는 대로 말하겠지요, 오베. 하지만 당신은 제가 들어본 것 중 가장 별난 슈퍼히어로예요. 259p

    -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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