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담아줘 새소설 2
박사랑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한도전 토토가216년 만에 재결합한 젝스키스의 리더 은지원은 이후 열린 젝스키스 단독 콘서트에서 팬들을 향해 다들 너무 잘 컸다. 너무 예뻐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연하게도 그 말은 많은 팬들을 울렸고, 안방에서 콘서트 후기를 실시간으로 줍줍하다 듣게 된 나 역시도 울컥하게 했는데, 이는 비단 그의 다정한 목소리가 뒷머리를 쓰담쓰담 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짧은 말이 젝스키스라는 그룹을 알게 된 이후의 19년이란 세월을 한방에 다 끌고 온 여파가 컸다. 울고 웃고 실망하고 기대하고 욕하고 짜증내다 잊기도 하다 다시금 돌아보고 울고 웃길 반복하던 시간들.

 

좋았던 시간만큼 안 좋았던 시간이 많았고 개중엔 락스칠을 해서라도 싹싹 지워버리고 싶은 흑역사도 더러 있었지만 그래도 헛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지금 그 오빠의 팬클럽 회원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헛된 일에 그토록 긴 세월을 박박 긁어오는 힘이 있을 리 없었다.

 

세월을 박박 긁어왔다는 건 곧 그 모든 시간에 오빠들이 있었다는 뜻과 같았다. 그러니까 너무 잘 컸다, 라는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있어도 사실은 이어져있던 내 아이돌이 그를 알아온 지난 나의 19년을 긍정해주는 말과 같았다. 잘 해왔다고, 지금 정말 예쁘다고.

 

박사랑의 우주를 담아줘는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에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현장을 오가는 21세기 덕후라면 특히 더 재미있게 읽을 것 같은데, 그만큼 덕질의 현장이 생생하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작가님 뭐하시는 분이지본진이 어디심요?’라는 말이 무시로 튀어나오곤 했다. 작가의 정보를 이렇게까지 궁금해하며 읽었던 책이 있나 싶었다. 덕심, 이렇게까지 잘 알 일인가.

 

소설에는 세 여자가 등장한다. 디디와 얭, 제나.

3 겨울, 좋아하던 그룹의 팬사이트에서 처음 만나 함께 콘서트를 간 이후로 10년째 우정을 이어온 덕질메이트. 덕질하는 오빠들은 바뀌어도 세 사람은 굳건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를 연상시켰다. 로필에서 다루는 연애&섹스 이야기를 아이돌 덕질로 바꾸면 딱 이 책이 될 것 같았다. 덕질로 배우는 인생사, 저마다 퍽퍽한 하루살이, 별일 있을 때마다, 아니 아무 일 없어도 자석처럼 찰싹 모이는 막역한 친구 사이.

 

웃기고 먹먹하고 재미있다. 누군가의 팬인 적 있던 사람이라면 쉽게 빠져서 읽을 만한 책이었다. 빠심이 지나치게 뻐렁치는 구간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뭐 어때 싶었다. 뭔가에 홀딱 빠진다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 다만 그때마다 스윽 나타나던 중딩 나는 좀 지우고 싶었다. 어찌나 놀랐던지 호다닥 쫓아버리곤 했다.

 

 

 

그들은 별이고 꿈이었다. 꿈 없이 일상에만 갇혀 살아가는 내게 그들은 우주를 건네주었다. - P267

나도 그들 중 하나이고 싶었다. 너를 기다리고 너와 함께 노래하고 박수로 너를 맞아주는 점 하나. - P137

아이돌은 몰래보는 작은 창 안에서도 빛나고 그 빛남으로 나를 잠시 웃게 했고 그 웃음으로 오늘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71p - P71

너를 발견한 것은 내가 나에게 준 선물 같았다. - P1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