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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뛰어나게 만드는 것은 사형 선고뿐이야. 그것만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유일한 것이거든. 마틸드는 이런 생각을 했다. - P-1

..좋은 가문은 많은 자질을 가져다주지. 그런 자질이 없으면 기분이 거슬릴 거야. 예를 들어 쥘리앵 같은 사람이 그렇지. 그러나 좋은 가문이란 사형 선고를 불러올 만한 영혼의 특성을 퇴색하게 한단 말이야. 마틸드는 이런 생각을 했다. - P-1

.."딱한 일입니다!" 쥘리앵이 말했다. "죄를 저지르더라도 즐겁게 저질러야죠. 그것만이 범죄의 미점(美點)이니까요. 또한 그런 이유로만 범죄를 약간 정당화할 수도 있겠죠." - P-1

...쥘리앵은 이 오만한 아가씨에게 단 한 번이라도 무방비 상태로 모욕을 당하는 날에는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어차피 사이가 벌어질 것이라면, 내가 개인적 위엄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면 곧장 뒤따라올 모욕의 표시에 반발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내 자존심의 정당한 권리를 방어하면서 사이가 틀어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 P-1

...귀족 계급의 살롱이란, 거기서 나온 후에 자랑하기에는 적당한 곳이겠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예절 그 자체가 대단해 보이는 것도 처음 며칠뿐이다. 쥘리앵은 실제로 그것을 경험했다. 처음의 매혹이 지나면 놀라움이 찾아온다. 예절이란 것도 거친 태도가 불러일으키는 분노가 없는 상태에 불과한 것이다, 하고 쥘리앵은 생각했다.... - P-1

..위대한 행동치고 시초에 극단적이지 않은 것이 어디 있었던가? 범인(凡人)의 눈에 그런 행동이 가능해 보이는 것은 행동이 완료된 후일 뿐이다. 그렇다, 앞으로는 그런 기적이 따르는 사랑이 내 마음을 지배할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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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p. «파노라마섬 기담»
..히로스케는 예술이란 보기에 따라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저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부여하려는 욕구의 발로인 셈입니다. 가령 음악가는 천연의 바람 소리나 파도소리, 새나 짐승의 울음소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 소리를 창조하려 애씁니다. 화가는 모델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개성에 따라 바꾸고 미화하며, 시인 역시 단순히 사실을 보도하거나 기록하는 사람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이른바 예술가들은 간접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번거로운 수단만으로 만족합니다. 어째서 그들은 대자연에 착안하지 않을까요. 어째서 직접 대자연을 악기로, 물감으로, 문자로 구사하지 않을까요.... - P-1

36p. «파노라마섬 기담»
..그보다 히로스케는 자기 자신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난 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이제 호적에서도 말소되었고, 이 넓은 세상에 일가친척이나 친구 하나 없으며 심지어 이름조차 없는 한 명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전후좌우에 앉은 승객들도, 창밖으로 보이는 길가의 풍경도, 한 그루의 나무도, 한 채의 집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별세계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갓 태어난 듯 매우 산뜻한 기분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이며 이제부터는 외톨박이처럼 홀로 그 감당하기 벅찬 대사업을 완수해야 한다는 형언할 수 없는 고독감에 끝내는 눈물까지 나려 했습니다. - P-1

86p. «파노라마섬 기담»
...잠시 뒤 히로스케가 재촉하는 바람에 지요코가 당나귀에 올라타서 그곳을 떠나려는 순간, 어린 여인 바로 위에 피어 있던 눈에 띄게 커다란 동백꽃 한 송이가 마치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듯이 똑 떨어지더니 어린 여인의 보동보동한 어깻죽지를 타고 미끄러져 늪에 고인 물에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너무 조용해서 늪에 고인 물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파문은 한 줄도 일지 않았습니다.... - P-1

142~143p. «인간 의자»
..의자 안의 사랑(!)이 얼마나 신비롭고 도취적인 매력을 가졌는지 실제로 의자 안에 들어와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촉각과 청각, 그리고 약간의 후각만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암흑 세계의 사랑입니다. 결코 이 세상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악마의 나라의 애욕이 아니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얼마나 괴이하고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정말 상상조차 못하겠습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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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아침 나나에하마의 난바다에 걸친 아름다운 무지개를 바라보며 아이짱은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간 듯한 착각을 느꼈다고 했다. 그날부터 현실을 버리고 비현실적인 세계로 뛰어드는 것 외에 달리 살아갈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소년을 이끌어준 것은, 울기 위해 들어간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자기의 손을 찾아 소리없이 다가온 알지 못할 사나이의 부드러운 손바닥의 미묘한 속삭임이었다……. - P-1

.."이렇게 하루 종일 일부러 시계를 거꾸로 차는 것입니다. 볼 때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제멋대로 지나가 버리는 시간이라는 녀석에게 골탕을 먹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간단한 방식으로 뭔가 다른 차원의 상상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재미있어요. 한번 해보세요." - P-1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지만, 아리오는 이 매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기에 너무나 가슴아팠다. 고지는 꺼림칙한 마조히스트였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그 상대는 소설 같은 데 나오는 검정 타이츠의 예쁜 소녀나 음탕한 귀부인도 아니고, 아이짱이 말했던 어느 건달인 것이 틀림없다. 아무나 배짱있게 할 수 있는 짓은 아니며, 하베로크 엘리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건달 따위에게 시달림을 받고 싶어하는 병적인 성적 욕구가, 고지로 하여금 그런 짓을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P-1

"..다 아는 일이지만, 한 종류의 꽃이라면 파랑‧빨강‧노랑의 세 빛깔이 갖추어져 있지 않거든요. 이를테면 장미나 백일초에는 어느 빛깔도 있지만 파란색이 없어요. 또 나팔꽃에는 절대로 노란색이 없지요. 어떤 꽃이나 한 가지 색은 없는 거예요. 특히 올해—아아, 이제는 작년이군요, 영국‧독일‧프랑스의 대표적인 장미꽃 명인이 일제히 라일락 타임, 마겐타, 프레류드라는 이름의 파란 장미를 저마다 처음으로 발표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노란 나팔꽃도 세다가야(世田谷)의 오사키(尾崎)란 분이 몇 십 년이나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본디 있을 수 없는 색을 무리하게 닮은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하니까, 피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다만, 고지 씨가 죽음을 당한 1954년에, 영국‧독일‧프랑스의 장미 제작 3대 명인이 모두 잇따라 파란 장미를 만들어 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머리를 스쳐가는 찰나에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었으니까, 혹시 내 추리가 맞다고 하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장미의 보고서’라고 할 수밖에 없지요." - P-1

.."가장 원초적인 것이지만 누구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단순하고 강렬한 동기. ……알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그게 말이지요, 단지 고지 씨가 ‘동생’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질투고 열등감이고 이해관계고 아무것도 없지만 고지 씨가 동생이니까 죽였다, 그런 일은 없을까요? 누구든지 모든 ‘형’에게는 이유가 없는 카인의 피가 솟구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놀라운 동기가 아닐까요?" - P-1

.."이것이 피면 이름은 분명히 ‘오프란드 워 네안offrande au néant,’—‘허무에의 제물’로 할 거라고 고지가 말했던 겁니다. 나는 모르지만 발레리의 시에 그런 것이 있다고 했어요."
..‘허무에의 제물’—아리오도 그 방면에 문외한이지만, 다음에 물어 보았더니 《잃어버린 미주(美酒)》라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시였다. - P-1

"...그에게는 쿠바드라는, 지금도 미개인들 사이에는 남아 있는 의만(擬娩)의 끼가 있었던 모양이야. 요컨대 첫 아이가 생겼는데 아내에게만 산고를 겪게 할 수는 없다는 감정이 고조되어, 마치 자기도 낳는 것처럼 함께 괴로움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야...." - P-1

..무레타는 이렇게 해서 ‘범인’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지워 없애버렸다. 지금 무레타가 밝힌 말 그대로 고지가 가장 사랑한 어머니를 여읜 뒤에 신의 각인 같은 십자가를 육체에 지니고, 견디지 못하여 어리석은 꿈의 세계로 도피하였다면—그리고 소지가 그것을 계속 감쌌다면, 주위 사람들이 모두 엉뚱한 짐작으로 ‘범인’이라고 말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가엾은 공상 끝에 생긴 ‘고노스 겐지’는 이렇게 안개처럼 사라지고, 그와 함께 ‘히누마 집안 살인사건’도 덧없이 송두리째 종말을 고하려고 하는 것일까. - P-1

..그날을 위해서 뿌리는 썩은 흙 속으로 뻗어가고 줄기는 끊임없이 양분을 빨아 올린다고 생각하니, 식물이 꽃을 피운다는 당연한 생리가 실은 몹시 잔인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아리오는 뭔가를 깨달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히사오는 벌써 자기가 한 말을 잊은 듯이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서향(瑞香)의 향기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잖아."
..여느 때의 언덕 중턱에서 걸음을 멈추고, 저녁 어둠 속에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향기에 숨을 내쉬었다. - P-1

...‘메구로(目黑)’에 사는 그가 ‘메시로(目白)’의 사건에 휘말려, ‘메아오(目靑)’의 방화와 ‘메아카(目赤)’의 살인에 이끌려, 지금 범인인 오지를 가리키는 ‘메오(目黃)’의 부동명왕 앞에 서 있는 것은, 둘도 없는 기이한 인연인 것 같다.... - P-1

"...전부라고는 하지 않지만, 이 1955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 무책임한 호기심이 새로 만들어낼 즐거움만은 당신들 몫이 아니겠어.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그럴싸하게 잔학한 사건이 얼마든지 현실로 툭 튀어나오는 것이 지금의 시대이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만은 안전지대에 있으면서, 구경하는 쪽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처참한 광경이라도 좋아서 바라보는 것이 괴물의 정체라고. 나에게는 무서운 허무로밖에 생각되지 않아. 그 장미의 이름에서 나온 시는 뭔가 우아한 의미가 있는 모양인데, 그걸 음미해 보아도 그런 허무에의 제물을 위해서 나는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어. 내가 도지로를 죽인 것은 인간의 긍지를 위해서 한 노릇이지만, 어떻게 되었던 바다는 말이 없는 거야. 내가 한 짓도 다른 의미로 ‘허무에의 제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 - P-1

"...내가 생각한 것은 한 장의 장대한 벽화를 완성시키는 것이었어. 거기에는 살아서 혈육이 통한 인간을 그대로 새겨 넣고, 무지로 인한 어리석은 비극이 아닌, 순정한 비극이 가진 성격을 빠짐없이 갖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거야. 가령 그것이 실현되어 히누마 집안 살인사건으로 불린다면, 그때는 나도 이름을 드러내 놓고 지금의 일본에는 이런 살인이 필요하다고, 순수한 악, 비극다운 비극이, 거꾸로 이 시대의 인간질서를 돌이킬 것이라고 말할 작정이었어...." - P-1

(해설)
...사실, 한 사람의 작가는 가능한 한 다채로운 작품을 가려 쓰는 능력과 필연성을 지녀야 한다. "언뜻 보기에 아무리 비현실이나 반세계와 관계없는 소설이지만, 내 관심은 늘 죽음과 변신, 이를 꿰뚫는 시간밖에 없었고, 그런 의미로 주제는 무엇 하나 바뀌지 않는다" 라는 작가 자신의 말을, 나는 솔직하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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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p.
...감귤류 열매의 중과피는 껍질 안쪽 하얀 부분, 즉 귤락이다. 귤락의 영문명인 알베도는 주로 물체가 빛을 반사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지만, 감귤류에서는 이와 무관하게 ‘백색‘을 뜻하는 라틴어 albēdō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에서 귤락의 영문명은 언론 기사나 건강 정보 등을 통해 알베도라는 용어로 알려졌지만, 영어권에서는 ‘피스pith‘라는 단어가 더 일반적이다. - P-1

71p.
..소설 《1984》,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엽란을 날려라》라는 작품에서 돈이란 이름의 신을 거부하고 맞서는 고든 콤스톡이란 인물을 그려냈다. 이는 궁핍한 환경에서 분투한 자신의 삶을 반영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엽란은 1930년대 영국에서 집마다 기르던 흔한 관상용 식물이자, 중산층의 삶이자, 주인공이 결국 타협하고 마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 P-1

79p.
..뮈즐레는 ‘개 주둥이에 입마개를 씌우다‘, ‘입을 봉하다‘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museler에서 유래했다. 같은 의미의 영단어 muzzle과 어원이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 P-1

114~115p.
..이때 많은 사람이 긴 장화 윗부분에 플라스크를 숨겨 주류를 운반했다. 부츠의 윗부분을 뜻하는 부트레그bootleg(부틀렉)는 금주법 시대를 거치며 밀주 혹은 밀주를 제조·판매하는 행위를 뜻하는 단어가 됐다. 이후 뜻이 더 확대돼 ‘불법으로 만든‘, ‘해적판(의)‘을 의미하게 됐다. - P-1

124p.
..배낭에 대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료는 기원전 3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배낭의 주인은 외치Ötzi, 일명 ‘아이스맨‘으로 불리는 미라다. 이 남성 미라는 1991년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 사이 해발 3,200미터 고도의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되었으며, 약 5,300년 전 청동기 시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빙하에 파묻혀 냉동된 덕에 시신뿐만 아니라 가죽옷과 나무 활·구리 손도끼 같은 소지품까지 온전하게 남았다. 이때 나무 배낭도 함께 발견되었다. 현장에서는 U자 형태로 휜 2미터 길이의 개암나무 막대와 길이 38~40센티미터의 좁은 나무판 두 개가 나왔는데, 학자들은 막대와 나무판을 끈으로 묶어 틀을 잡은 다음, 가죽 자루나 그물을 매달아 배낭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의 지게도 있다. 엄밀히 따지면 배낭은 아니지만, 짐을 얹어서 지고 다닌다는 점에서 빠지면 왠지 섭섭하다. 1690년(숙종 16년)에 나온 《역어유해譯語類解》라는 책에서는 지게의 뜻을 풀어 배협자背狹子라고 적고 있다. - P-1

139p.
..영미권에서는 양말 코핀을 양말 포장 클립socks packing clip이라 부른다. 하지만 양말 코핀 대신 앞에서 설명한 택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대중에겐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고리가 포함된 종이 라벨 포장 방식도 많이 쓰는데, 이는 행택hang tag·양말택sock tag이라고 한다. 브랜드명을 비롯한 각종 정보를 기입할 수 있고 포장·진열에 모두 활용할 수 있어 별도의 브랜드를 가진 양말 전문 업체에서 애용한다. 행택을 양말에 고정하는 역할은 예상했겠지만 우리의 듬직한 친구, 택핀이 맡는다. 양말 중앙을 감싸는 종이 라벨은 양말 띠지wrap label라고 한다. 덧신 양말(페이크 삭스) 안에 모양 잡기 용도로 들어간 두꺼운 마분지 ‘그거‘의 이름은 속대다. - P-1

176p.
..개인적으로는 노루발보다는 말발굽이 더 적당한 우리말 단어라고 본다. 포유류의 하위 분류군 중 우제목偶蹄目과 기제목奇蹄目이 있는데 발굽이 짝수냐 홀수냐가 기준이 된다. 노루는 굽 앞쪽이 갈라져 두 개로 나뉘는 우제목 동물인 반면, 말은 한 개의 굽을 가진 기제목 동물이다. 노루발장도리나 재봉틀 부속 등 노루발이란 이름을 가진 사물들을 떠올려보면, 공통적으로 노루의 발굽처럼 두 갈래로 나뉜 모양임을 알 수 있다. 도어스토퍼에서 바닥에 닿는 부분의 형태는 노루발보다는 말발굽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말 호칭도 후자가 적합하다고 혼자만 생각하고 있다. - P-1

181~182p.
..아일랜드 식탁·페닌슐라형 카운터의 등장은 주방 및 부엌이란 공간의 위상 변화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본디 주방은 집의 중심이었다. 구석기 시대 후기부터 출현해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가 된 수혈주거竪穴住居, pit-house를 살펴보자. 움집이라고도 하는 수혈주거는 땅에 깊고 평평한 구덩이를 만들어 그 위에 지붕을 덮은, 선사 시대 반지하식 주택이다. 이 원시적인 가옥 중앙에는 불구덩이hearth가 있었다. 집 바닥에 불을 피워놓고 돌·진흙 따위를 둘러 구획을 만든 것이다. 지붕에는 연기 구멍을 만들어 연기를 빼냈다. 불구덩이는 난로이자 주방이었다. 추위를 물리치는 온기와 허기를 달래주는 따뜻한 음식, 어둠을 밝히는 빛까지 제공하는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 hearth라는 단어는 현재까지 살아남아 난로와 가정생활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 (보통 ‘hearth and home‘이라고 표현)가 됐다. - P-1

195p.
...빗장은 경관 혹은 염이라고도 하는데 재미있게도 경扃·관關·염​扊·이​扅 네 글자 모두 문빗장을 뜻하는 한자어다. 포도 포葡와 포도 도萄가 합쳐진 포도와 유사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포도처럼 중국이 서역에서 들여온 새로운 문물을 지칭하기 위해 두 개의 새로운 한자를 묶어서 만든 단어를 연면사連綿詞라고 하는데, 연면사는 낱자로는 쓰이지 않고 함께 써야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 P-1

228p.
..콘페티의 순우리말로 ‘꽃보라‘를 추천하는 의견도 있다. ‘떨어져서 바람에 날리는 수많은 꽃잎‘을 뜻하는 꽃보라와 콘페티의 이미지가 제법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미 ‘경사스러운 일을 축하할 때 뿌리는 여러 색깔의 작은 종잇조각‘이란 의미로 꽃보라를 쓰는 곳이 있다. 바로 북한이다.... - P-1

255p.
..팬그램은 알파벳의 모든 글자를 사용해 만든 문장이다. 한글에서는 초성·중성·종성의 조합을 전부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자음 혹은 모음을 포함한 문장을 팬그램으로 친다. 낱자 전체를 망라하므로 서체 예문으로 자주 쓰인다. 윈도 OS에서 폰트의 예문으로 쓰이는 "다람쥐 헌 쳇바퀴에 타고파."(한글 모든 자음 사용)나 "The Quick Brown Fox Jumps Over The Lazy Dog." 등이 대표적인 팬그램이다. - P-1

314p.
..​산포체의 영어 표기인 ‘diaspore’는 ‘흩어지다(이산離散)’를 의미하는 그리스어διασπορά에서 유래했다. 단어를 더 쪼개보면 ‘너머’를 뜻하는 dia와 ‘(씨를) 뿌리다’라는 뜻의 spero가 합쳐진 말이다. 같은 뿌리를 가진 단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자·타의로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민족 집단과 그 이동 현상을 뜻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다. - P-1

332p.
..@의 독특한 모양 때문에 나라·언어권마다 호칭이 다양하다. 원숭이 꼬리(네덜란드), 돼지 꼬리(노르웨이), 코끼리 코(덴마크), 거미원숭이(독일어), 작은 개(러시아), 원숭이(폴란드·불가리아), 달팽이(이탈리아), 쥐(대만), 청어 절임(체코), 고양이 꼬리(핀란드), 벌레(헝가리), 사자(말레이시아) 등이다. 동물의 사육제가 따로 없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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