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p. «파노라마섬 기담»
..히로스케는 예술이란 보기에 따라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저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부여하려는 욕구의 발로인 셈입니다. 가령 음악가는 천연의 바람 소리나 파도소리, 새나 짐승의 울음소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 소리를 창조하려 애씁니다. 화가는 모델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개성에 따라 바꾸고 미화하며, 시인 역시 단순히 사실을 보도하거나 기록하는 사람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이른바 예술가들은 간접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번거로운 수단만으로 만족합니다. 어째서 그들은 대자연에 착안하지 않을까요. 어째서 직접 대자연을 악기로, 물감으로, 문자로 구사하지 않을까요.... - P-1

36p. «파노라마섬 기담»
..그보다 히로스케는 자기 자신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난 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이제 호적에서도 말소되었고, 이 넓은 세상에 일가친척이나 친구 하나 없으며 심지어 이름조차 없는 한 명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전후좌우에 앉은 승객들도, 창밖으로 보이는 길가의 풍경도, 한 그루의 나무도, 한 채의 집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별세계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갓 태어난 듯 매우 산뜻한 기분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이며 이제부터는 외톨박이처럼 홀로 그 감당하기 벅찬 대사업을 완수해야 한다는 형언할 수 없는 고독감에 끝내는 눈물까지 나려 했습니다. - P-1

86p. «파노라마섬 기담»
...잠시 뒤 히로스케가 재촉하는 바람에 지요코가 당나귀에 올라타서 그곳을 떠나려는 순간, 어린 여인 바로 위에 피어 있던 눈에 띄게 커다란 동백꽃 한 송이가 마치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듯이 똑 떨어지더니 어린 여인의 보동보동한 어깻죽지를 타고 미끄러져 늪에 고인 물에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너무 조용해서 늪에 고인 물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파문은 한 줄도 일지 않았습니다.... - P-1

142~143p. «인간 의자»
..의자 안의 사랑(!)이 얼마나 신비롭고 도취적인 매력을 가졌는지 실제로 의자 안에 들어와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촉각과 청각, 그리고 약간의 후각만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암흑 세계의 사랑입니다. 결코 이 세상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악마의 나라의 애욕이 아니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얼마나 괴이하고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정말 상상조차 못하겠습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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