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당겨진 활시위와 같다는 것은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진리다. 현재의 상태는 여러 가지 상반되는 힘들이 평형을 이뤄 나타난 결과다.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손아귀의 힘이 풀려 화살이 앞으로 튀어 나가게 되면 거기서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새로운 세상의 시작은 과거 세계의 파괴다. 화살의 발사라는 새로운 사건은 당겨진 활시위라는 이전 사건의 종료다.

...아무리 긍정적인 방향의 에너지라고 해도, 한 방향으로만 향하는 에너지는 모든 것을 휩쓸어갈 뿐이다. 그것에 반하는 방향의 에너지는 아무리 그것이 사소해 보일지라도, 심지어 아무리 그것이 사악해 보일지라도 평형이라는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행복을 흘러넘치는 긍정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시각이다. 정신의 행복은 긍정성이라는 물을 안정적으로 담고 있는 부정성의 견고한 그릇을 전제로 한다.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그 행위를 선택하는 데 기초가 된, 혹은 만약 숙고해봤다면 선택의 기초가 되었을 우선적인 이유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중략) 우리의 많은 행위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행위들까지 포함해서, 다소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그 행위들에 대해 우선적인 이유들을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은 사후의 일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렇게 [행위의 이유를 재구성]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스스로를 반성적 행위자로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원인을 넘어서 이유를 찾아 헤매는 존재다. 이유를 잃으면, 이유에 대한 갈망을 잃으면, 그곳에는 더 이상 자유가 없다.

..삶을 소설에 비유한다면, 우리가 겪는 일들은 곧 소설의 소재에 해당할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느끼며 살아가는지는 곧 소설의 표현에 해당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똑같이 놀이동산에 놀러 가서 똑같은 일(소재)을 겪는다고 해도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느끼는지(표현)는 천차만별이다. 소설이 단순히 소재의 나열이 아니듯이, 삶은 단순히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다. 삶은 사건들을 나름의 의미를 가진 하나의 이야기로 조직하고 표현해나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스스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지금 우리가 가진 지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들에 대해서 알게 되거나, 혹은 모든 앎을 멈추고 무로 흩어질 것이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열린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생각보다 사람들 사이에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사실 비슷한 면이 더 많고 차이는 비교적 적다. 상대방과의 차이가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실제로 차이가 압도적으로 커서가 아니다. 그 차이를 바탕으로 상대와 나를 나누고 그 안에서 은밀한 즐거움을 느끼려는 우리의 경향 때문이다. 이런 경향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차이와 우월감이 주는 즐거움은 인간 심리를 지탱해주는 주요인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태를 정확히 보는 것을 방해한다. 상대의 생각을 더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적은 차이를 부풀려서 강조하기보다는 나와 상대방 사이에 놓인 수많은 공통점을 인정하면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사태를 더 정확하게 보는 길이고, 서로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진실한 고찰은 나 자신이 고고하고 접근 불가능한 주관성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이 세계 안의 나의 현존과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드러낸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나는 내가 보는 것들로 이뤄진 존재이고, 나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이루는 장이다. 그리고 나의 몸과 역사적 상황은 나의 존재에 있어서 제약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이 몸과 이 상황 속에 있음으로써, 그것들을 통해,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을 통해 내가 이뤄진다.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따르고 있는 삶의 방식이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방식은 항상 나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누군가의 이득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설정된 측면이 있다.

..소크라테스라는 멘토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특정한 지식이 아니다. 그보다 우리는 지적 겸손 속에서 자유로운 정신으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자신이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이 얼마든지 틀릴 수 있으니 더 좋은 생각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와서 알려달라는 정신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독단적인 견해에 빠져 오직 한 길만을 고집하며 평생을 보내지 않는다. 정답을 빗겨나갈까 봐, 오답을 고를까 봐 노심초사하지도 않는다. 정답은 그리 단순히 얻어지는 게 아니라 기나긴 지적 여정을 통해 차차 모습을 갖춰나간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치와 목표에 대해 영원하고 확실한 정답을 단번에 제시해줄 수 있는 족집게 강사는 없다. 오직 자유롭고 비판적인 성찰과 토론을 통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정답을 찾아나갈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본래적인 나를 마주하는 것은 내 안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 아니다. 본래적인 나를 만나는 것은 세상의 온갖 목소리가 뒤섞여 내 안에 우글거리고 있는 와중에도 결국에는 그 중심에서 언젠가 홀로 죽음을 마주해야 할 자신, 그 고독한 주체를 발견하는 것이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그 세인의 존재를 발견하고 인지하고 장악하는 것이다.

..연극이 끝난 후 텅 빈 무대를 나 홀로 응시하는 경험은 어딘가 야릇한 느낌을 전달해준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나 홀로 고요한 거리를 걷는 것은 어쩐지 모르게 가슴을 간지럽힌다. 이런 정체 모를 감정이 생겨나는 원인은 이 경험들이 죽음의 순간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경험들은 모두 텅 비어 있는 게 특징이다. 평소에 너무나 당연한 듯이 공간과 시간을 가득 매우고 활발하게 움직이던 많은 사물과 사람이 이 경험들에서는 모두 침묵을 지킨다. 그러면서 텅 빈 공간과 시간이 돌연 나의 의식을 강타한다. 처음으로 나는 공간과 시간을 있는 그대로 또렷하게 의식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그 시공간 속에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뒤섞여 살아간다고 해도 결국엔 혼자서 짊어져야 할 짐을 지닌 존재인 나 자신을 말이다.

..반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지만 계속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계속해서 삶이라는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카뮈는 이런 사람을 부조리한 인간이라고 불렀다. 부조리한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누구보다 더 절대적인 자유를 얻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 자체를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흔히 ‘자유’라는 개념은 나의 행동을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오늘 한식을 먹을지 중식을 먹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자유롭다. 이런 의미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삶 쪽을 선택해 계속해서 삶이라는 이야기를 지속시키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자유의 무대로 만들 수 있다.

..반면, 삶에 대한 어떤 의미와 이유도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어떤 것에도 종속당하지 않는다. 이러한 진정한 자유에 대해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조리한 인간]은 희망하는 방법을 잊었다. 이 현재라는 지옥은 그의 최종적인 왕국이 되었다. (중략) 이 점과 관련해 부조리는 나를 계몽한다. 미래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내적 자유의 이유다.
..희망과 미래를 포기한 사람,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삶의 진정한 의미 같은 것은 발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직시하고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오히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희망과 의미로부터의 자유라는 가장 강력한 자유를 얻게 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조리한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에 자유롭게 종속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얼핏 보기에 자유와 종속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종속을 항상 외부의 힘에 의해 억지로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점을 바꿔 생각해보면, 외부의 강압 없이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에 종속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할 절대적인 이유 같은 건 어디에도 없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평생 가난한 사람을 돕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사람을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은 외부의 힘에 의해 종속되는 것이다. 그에게는 타인의 시선이 선행을 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이유로 작용한다. 반면 어떤 절대적인 이유도 없이 스스로 신념을 부여해 선행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본인의 자유 안에서 행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자유와 종속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자유로부터의 자유라는 역설적인 상태. 이것이 부조리한 인간이 걷게 되는 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삶과 이 세상을 크로노스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에 반대하고 카이로스를 자각하는 경험을 다양한 관점에서 표현하고자 했다. 카이로스를 출현시키는 힘은 우리의 주의력과 관심이다. 양적인 시간은 끊임없이 미래로부터 흘러와 과거로 흘러가고, 일상의 수많은 순간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은 채 지나가버린다. 그 시간을 기회의 순간으로, 결단의 순간으로, 의미를 가진 시간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다.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 시간을 응시하고, 말을 걸고, 손짓하면 시간은 우리에게 의미를 되돌려줄 것이다.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닌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인식하는 것. 그러한 경험을 전달하는 게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목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59p.
..일본은 살기 편했다. 길가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도 없었고 거리는 껌 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편의점에만 들어가도 백화점이 무색하게 친절한 점원들이 있었다. 그래도 시아는 문득 추위를 느낄 때가 있었다. 히터로 뜨거워진 공기가 살갗만 바삭바삭하게 덥혀서 피부 밑은 여전히 차갑게 굳어 있는 것처럼. 4월이 다 갈 때까지 전기장판을 치우지 못했다. 하이츠 선플라워 201호는 시아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가끔 시아는 이 작은 집이 자기를 태우고 표류하는 조각배 같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는, 돈을 주고 당당하게 빌린 보금자리. 마음이 어두워질 때는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를 시작했다. 집을 갈고 닦으면 안전해지는 것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오코는 양손으로 감싸듯이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기도하는 모습처럼도 보인다. 전 세계가 아니라 반경 10미터의 세계를 위해.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에 친했던 친구들과도 지금은 거의 만나지 않는다. 선물을 살 상대가 줄어든다. 변화가 없다고 생각한 일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으로 새어 나가 시들해졌다.

..계절이 바뀔 무렵의 바람은 슬프다. 야요이는 걸어가면서 그 바람을 크게 들이마셨다. 감정을 담으면 울음이 터질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흥미로운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질이 한층 높아졌다는 것이다. 미추나 성별, 나이, 인종과 국적이 얼굴에 바로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서 상징에 가까워진 얼굴은 한 사람의 정체성과 상상력을 불순물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쳐 있고, 피로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피로감으로 젊은 사람들이 늙어 있었다. 변하지 않는 세계, 나눠주지 않는 세계, 가혹한 방향으로 나빠지기만 하는 세계에서 노화는 가속화된다. 무슨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에서 심리 테스트를 받았더니 은퇴자의 심리에 가깝다고 해서 웃었다. 결과를 보니 삶의 질을 가장 우선시한다며, 벌써 그러면 안 된다고 강사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삶의 질을 희생시키고 얻을 게 있어야 스스로를 연료 삼아 불태울 게 아닌가? 한때 좋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한테나 통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p.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자연 속에서 가장 달콤하고 다정하며, 가장 순수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친구를 발견할 수 있다. 딱하게도 사람을 몹시 싫어하거나 심한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자연에 살면서 모든 감각을 고요히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해로운 우울증이 찾아올 수 없다.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폭풍우도 ‘바람의 신‘의 음악으로 들릴 뿐이다. 그 무엇도 소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에게서 통속적인 슬픔을 자아낼 순 없다.

29~30p.
..평범한 사교의 값어치는 너무 싸다.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나는 바람에 서로를 위한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도 확보하지 못한다. 우리는 하루 세끼 식사 때마다 만나서 우리 자신이라는 오래되고 곰팡내 나는 치즈 맛을 보게 한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을 견딜 수 있고, 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예의범절과 공손함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규칙들에 합의해야 했다. 우리는 우체국에서 만나고, 사교 모임에서 만나고 또 매일 밤 난롯가에서 만난다. 우리는 조금의 틈도 두지 않은 채 서로의 길을 막기도 하고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살고 있다. 그 결과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만나도 충분히 중요하고 속내를 다 털어놓는 의사소통을할 수 있었을 텐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꿈속에서도 혼자 있지 못할 것이다. 내가 사는 이곳처럼 2.6제곱킬로미터에 한 사람씩 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사람의 가치가 피부에 있는 건 아니니 굳이 누군가와 스치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

107~108p.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없고 성가신 존재가 되어가는 이 쇠락기에 스스로에게마저 그런 존재가 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면 수치스러워지도록 자신의 이성과 양심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다스리자. 쿠인틸리아누스는 말했다. "인간이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청년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장년은 선을 행해야 하며, 노년에는 모든 공적인 의무에서 물러나 자기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라고말했다.

114p.
.."자네는 지금까지 물에서 둥둥 떠다니면서 헤엄치며 살아왔네. 이제 항구로 돌아와 삶을 마치게나. 인생의 전반부를 빛 속에서 살아왔으니 여생은 그늘에서 보내게나. 자네가 일의 결실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일에서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지. 그러니 명성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게. 과거 활동에서 나오는 광채가 자네를 너무 환하게 비추다가 은둔처까지 들어갈까 두렵군. 다른 쾌락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인정으로부터 오는 만족도 버리게. 자네가 가진 지식과 자네가 맡은 새 역할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게. 거기서 결실을 거둘 수 있다면 그 지식과 역할의 효과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자기가 머무는 소굴의 입구까지 이어지는 모든 흔적을 없애버리는 동물들을 본받게. 세상이 자네에 대해 하는 말에 개의치 말고 자신에 대해 자네가 하는 말에 신경 쓰게. 자네의 영혼을 다스리면서, 거기에 일정한 선을 그을 줄 알고, 자네가 누리는 진정한 축복을 전적으로 이해해야 하네. 그런 축복을 더 많이 즐길수록, 그걸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명성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도 더 오래 살고 싶은 마음도 사라질 걸세."

145p.
..루이자는 그날 밤 혼자 조금 흐느껴 울었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 산책하면서, 마치 여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의 왕국을 뺏길까봐 두려워했다가 그것이 확실히 자신의 것임을 알게 된 왕국을 본 여왕이 된 기분.

167~168p.
..기나긴 생의 부침 속에서 당시를 기억해보니, 내가 가장 즐겁고 기쁘게 살았던 때는 가장 생생한 추억이 남는 환희를 맛본 때가 아님을 알게 됐다. 그 넘쳐흐르는 기쁨과 정열의 순간이 아주 강렬하고 매력적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삶의 행로에 드문드문 찍힌 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순간들은 드물기도 하거니와 순식간에 지나가버려서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다. 내가 그리워하는 행복이란 그런 일시적인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는 숨이 막히게 황홀한 면은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매력이 커져 결국 지상 최고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211p.
.."Ne te quaesiveris extra(당신 자신을 당신 밖에서 찾지 말라)"

215p.
..자연이 어린아이, 갓난아이, 심지어 짐승의 얼굴과 행동이라는 텍스트에 쓴 신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린아이, 갓난아이, 짐승에게는 분열되고 반항하는 마음, 감정에 대한 불신이 없다. 그런 반항과 불신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적과 대조되는 곳에 자신의 힘과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계산속에서 나온 것이다. 아직 분열되지 않은 그들의 마음은 온전하고, 아직 이런 계산을 할 줄 모르는 그들의 눈은 순수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당황한다. 젖먹이는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으며, 외려 모두가 그에게 복종한다....

217p.
..이렇게 어느 무리와 한편이 되겠다는 맹세를 일절 거부할 수 있는 사람. 주변 사람이나 사물을 냉정하게 관찰한 후에 변함없이 편견을 갖지 않고, 뇌물로 매수할 수 없으며, 두려움 없이 우직하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무적이 된다. 이런 사람이 현안에 관한 의견을 말하면, 사적인 게 아니라 꼭 필요한 의견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귀에 쏙쏙 들어가 박히면서 종내에는 두려운 존재가 된다.

219p.
..유일하게 옳은 일이란 내 기질에 따라 사는 것이며, 그것에 어긋나면 다 잘못된 것이다. 제대로 된 어른이란 어떤 반대에 부딪혀도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은 유명무실한 찰나의 것으로 생각한다.

220p.
...당신의 선량함에 날이서 있지 않다면, 그건 선량함이 아니다. 징징거리는 사랑의 교리에 맞서려면 증오의 교리를 설교해야 한다....

222p.
..하지만 나는 속죄하며 살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은 나를 위한 것이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니까. 불안정하지만 화려한 삶보다는 지체는 낮더라도 진실하고 평등한 삶을 훨씬 더 선호한다. 나는 식사량을 줄이거나 피를 뽑을 필요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나는 당신이 인간이라는 근본적인 증거를 원하지, 지금까지 이런저런 일을 했다는 호소는 듣고 싶지 않다. 이른바 탁월하다는 행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내가 직접 겪어서 알고 있다. 내가 타고난 권리를 지닌 곳에서 특혜를 누리고 있다면서 나에게 그 대가를 치르라는 요구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내 재주가 적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실제로 여기 존재하는 인간이니, 그런 나도 괜찮다는 스스로의 확신이나 동료들의 말은 필요 없다.

226p.
..우리를 겁주어 자기 신뢰를 막는 또 다른 두려움으로 일관성이 있다. 일관성은 우리가 과거에 한 행동이나 발언을 숭배하는 태도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행로를 찾아보려 할 때는 과거에 한 행위라는 자료밖에 없고, 우리는 그런 그들을 실망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228p
..아무도 자신의 본성을 거스를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려 해도 결국 자신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안데스산맥과 히말라야산맥의 고저기복을 지구의 거대한 곡선과 비교하면 사소해지는 것과 같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판단하고 시험하는지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람의 성품은 애크로스틱 체나 알렉산드리아 시구와 비슷하다. 앞에서 읽든 뒤에서 읽든 혹은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읽든 언제나 같은 글자가 나오는 식이다.

240p.
...내 창문 밑에 핀 장미는 전에 핀 장미나 더 좋은 장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장미는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장미는 오늘 신과 같이 있다. 장미에 시간이란 없다. 그저 장미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매순간 완벽하다. 장미는 잎눈이 트기 전부터 그 생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꽃이 활짝 피었다고 해서 그 생기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잎이 없는 뿌리 상태라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장미의 본성은 충족되고, 자연도 모든 순간에 충족된다. 하지만 인간은 뒤로 미루거나 추억한다. 그는 현재에 살지 않고, 눈을 뒤로 돌려 가버린 과거를 한탄하거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풍부한 은총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저 까치발을 선 채 미래를 훔쳐보려 애쓴다. 그도 장미처럼 시간을 초월해서 자연과 함께 현재에 살지 않는 한 결코 행복하고 강해질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