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C.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라인과 더불어 1950년대의 SF를 대표하는 3대 거장의 한 사람이었던 아이작 아시모프는 『소비에트 과학 소설Soviet Science Fiction』(1962)의 서문에서 현대 SF의 발전 단계를 모험 주류(1926~1938), 과학 기술 주류(1938~1950), 사회 과학 주류(1950~)의 3단계로 나누고 있다.... - P-1

«12월의 열쇠»
...그리고 데들랜드의 청색은 일종의 시각적인 침묵이다. 아침에 보면 바위들조차 푸른 서리에 뒤덮여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미(美)일까 추(醜)일까? 나의 내면에서 해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이 거대한 침묵의 일부이다. 단지 그럴 뿐이다.... - P-1

«12월의 열쇠»
...이렇게 해서 생명은, 자신에게 충분히 봉사한 자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 P-1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그 대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을 주식회사로 만들고 그 주식의 40퍼센트를 팔아 치워도 좋다. 그 대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남은 수명 중 몇 년과 교환해도 좋다. 그러나 이런 내기에 응해 줄 초자연적인 상대는 아무래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대답을 몰랐기 때문이다.... - P-1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안 돼. 만약 그런다면, 당신은 나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느끼면서 일생을 보내야 해.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려고 할 걸. 당신이 그러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어. 왜냐하면 우리들은 닮은꼴이고, 나 자신이 바로 그렇게 됐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지금 그 해답을 찾아!」 - P-1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그래서 나는 원색의 리본처럼 내 마음을 비틀었고, 접은 다음,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요란한 크리스마스풍의 장식 매듭을 만들기로 했다.... - P-1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그리고 비밀은 바로 이 말에 있소.」 나는 시를 낭독할 때처럼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가 한 말은 옳았소! 모든 것은 바로 허영이었던 것이오! 중요한 것은 자만이었소! 예언자를, 신비가를, 신을 언제나 공격했던 것은 합리주의의 오만이었소.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고, 또 앞으로도 우리를 지탱해 줄 것은 바로 우리들의 불경스러움이었던 것이오. 신들도 우리 안에 있는 이것을 내심으로는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오. 신의 성스러운 이름들은 모두 입에도 올릴 수 없을 만치 불경스러운 것이란 말이오!」 - P-1

«이 죽음의 산에서»
..나는 내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인간은 왜 산에 오르는 것일까? 편평한 대지가 두렵기 때문에 높은 곳으로 이끌리는 것일까? 인간 사회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고, 그들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을 시도하는 것일까? 갈 길은 멀고 험하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화환을 씌워 줘야 한다. 설령 그가 추락한다고 해도, 일종의 영광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실족해서, 섬뜩한 파멸과 소진의 구렁텅이로 떨어진다는 것은 패자에게는 걸맞은 클라이맥스이다 ─ 이것 또한 산과 마음을 진감하게 하고, 그 밑에 존재하는 사념 따위를 휘저어 놓으며, 패배와 차가움 속의 승리를 상징하는 시든 화환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차가운 탓에, 그 마지막 행위는, 그 동작은, 어딘가에서 영원히 얼어붙은 채, 조상(彫像)처럼 미동도 않고 궁극적 의도와 목적을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는, 우주적인 악의의 개입에 의해서만 좌절되는 의도와 목적을. 모종의 필수적인 미덕을 결여하고 있으면서도 큰 뜻을 품은 성자나 영웅에게도, 언제나 순교자가 될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최후의 순간까지도 정말로 기억하는 것은 최후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산들에 올랐던 것처럼, 카슬라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고, 그 대가가 무엇이 될지도 알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나는 하나뿐인 가정을 잃었다. 그러나 카슬라는 그곳에 있었고, 내 등산화는 신어 달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했을 때, 그녀의 정상 어딘가에 발을 디뎠을 때, 내 밑에서 하나의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승리의 순간이 바로 앞으로 다가와 있다면, 하나의 세계 따위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진실과, 미(美)와, 선(善)이 하나라면, 왜 이들 삼자 사이에서는 언제나 이런 알력이 존재한단 말인가? - P-1

«폭풍의 이 순간»
..그때, 내 대답은 이랬다. 「인간이란 그가 그때까지 한 모든 일, 하고 싶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들,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들, 이 모든 것의 총합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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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소유물의 관리처럼 인간관계도 자신이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범위에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을 나는 생활비를 재점검하면서 깨달았다. - P-1

..예를 들어 매장에서 구매하려고 집어 든 옷을 계산대에 가지고 가기 전에 머릿속으로 ‘이 쇼핑은 소비·낭비·투자 중에 어디에 해당할까?’라고 순간 멈춰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쓰던 게 다 떨어져서 사려고 하는 소비인지, 집에 이미 있는데 더 사려고 하는 낭비인지 확실히 자각할 수 있다. 투자인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이 소비나 낭비다. - P-1

..상상 메모는 ‘저걸 사면 이렇게 될지도 몰라’라며 자신의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자세히 기록하고 소비 습관을 다듬어 나가는 방법이다.
(...)
..상상 메모를 쓰다 보면 어린 시절 갖고 싶은 옷이나 신발을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림으로 그렸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은 돈을 써서 원하는 것을 바로 손에 넣으려고 하지만, 사실 이상적인 이미지를 상상할 때가 가장 즐거운 것 같다. - P-1

..갈팡질팡하지 않으려면 지금 가진 물건으로 지내는 습관이 필요하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건널목 앞에서 일단정지’ 규칙이다. 건널목을 계산대나 지불 행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 P-1

..자신의 만족이 세간의 기준과는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위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생활의 만족도가 오른다. 무엇이 어떻든 마음에 편한 쪽을 의식주의 기본으로 하면 생활 전체 비용이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 P-1

..자가소비 시스템에서 내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작은 만족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해준 일, 돈을 내고 얻은 것에는 자칫 불만이 생기거나 지나친 요구가 따를 수 있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요구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다. - P-1

..내가 저소비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우선 시작한 일은 절약을 의식하는 것에 더해 과밀하지 않은 장소와 시간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혼잡한 장소나 시간대를 철저히 피하자 이전의 내가 상당히 사람들의 움직임이나 장소의 분위기에 휩쓸려 움직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 P-1

..떠나려고 해도 붙잡는 것이 많은 세상이 되었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그런 환경에서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점점 자신이 아닌 다른 요소에 휘둘리게 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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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저녁부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비는 그녀의 생애에 밀어닥친 최초의 큰 슬픔이었다. - P-1

..그녀는 땅에 씨앗을 뿌리듯, 사방에 추억을, 그 뿌리가 죽을 때까지 뻗을 그런 추억을 흩뿌렸다. 마치 골짜기 굽이마다 자기 마음을 조금씩 던져 놓는 것 같았다. - P-1

..우연한 사정으로 같은 부류 사람들에게 권한을 행사하도록 부름을 받은 더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인간의 마음을 다루다 보면 획득하게 되는 무의식적인 교활함 덕분에 사제는 남들의 환심을 살 줄 알았다. - P-1

..그녀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는 전혀 없었다. 자기 근친들에게조차도 말하자면 탐사되지 않은 미지의 존재같이 머물렀으며, 죽는다 하더라도 집 안에 구멍이나 빈자리가 생길 것 같지 않은 존재, 주위 사람들의 생활이나 습관이나 애정에 끼어들 수 없는 그런 존재들 가운데 하나였다. - P-1

..그동안 먼 고장에 대한 그녀의 그리움도 차츰 약해졌다. 어떤 물이 침전되어 석회층을 형성하는 것처럼 습관이 그녀 삶에 체념의 층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일상생활의 오만 가지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한 일종의 관심이, 단순하고 시시한 규칙적인 일들에 대한 근심이 그녀의 마음속에 다시 생겨났다. 일종의 명상적인 우수(憂愁)가, 산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환멸이 그녀의 마음속에 퍼져 나갔다. 그녀에게는 무엇이 필요했던가? 그녀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알 수 없었다. 어떤 사교적 욕구도 그녀를 사로잡지 않았다. 쾌락에 대한 어떤 갈구도, 있을 수 있는 기쁨을 향한 어떤 충동조차도 없었다. 도대체 어떤 기쁨이 있단 말인가? 세월에 빛이 바랜 낡은 거실 의자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보기에 모든 것이 서서히 퇴색하고, 소멸하며, 희미하고 암울한 색조를 띠어 가는 것이었다. - P-1

..그러나 모든 가구가 천에 싸인 채 쓰이지 않는 넓은 거실의 검게 변한 높은 천장 아래 옹크리고 앉은, 그렇게도 작고, 그렇게도 깨끗하고, 그렇게도 단정한 남녀가 잔느에게는 귀족 계급의 통조림처럼 보였다. - P-1

...사람은 때때로 죽은 이들을 슬퍼하는 것만큼 환상에 대해서도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마련이다. - P-1

..그리고 그녀는 아마도 자기 자신의 생각에 화답하는 것처럼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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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p.
..Psychologists have studied this, by the way, the sweet salve that collecting can offer in times of anguish. In Collecting: An Unruly Passion, psychologist Werner Muensterberger, who counseled compulsive collectors for decades, notes that the habit often kicks into high gear after some sort of "deprivation or loss or vulnerability," with each new acquisition flooding the collector with an intoxicating burst of "fantasized omnipotence." Francisca López-Torrecillas, who has been studying collectors for years at the University of Granada, noted a similar phenomenon, that people experiencing stress or anxiety would turn to collecting to soothe their pain. "When people have this feeling of personal inefficiency," she writes, "compulsive collecting helps them in feeling better." The only danger, Muensterberger warns, is that—as with any compulsion—there seems to be a line where the habit can switch from "exhilarating" to "ruinous." - P-1

25p.
..Indeed, in his writings Agassiz is clear: he believes that every single species is a "thought of God," and that the work of taxonomy is to literally "translat[e] into human language... the thoughts of the Creator." - P-1

42p.
...Darwin had observed so much variety in creatures traditionally assumed to be one species that his sense of a hard line between species had slowly begun to dissolve . Even that most sacred line, the supposed inability of different species to create fertile offspring, he realized was bunk. "It cannot be maintained that species when intercrossed are invariably sterile," Darwin writes, "or that sterility is a special endowment and sign of creation." Leading him finally to declare that species—and indeed all those fussy ranks taxonomists believed to be immutable in nature (genus, family, order, class, etc.)—were human inventions. Useful but arbitrary lines we draw around an ever-evolving flow of life for our "convenience." "Natura non facit saltum," he writes. Nature doesn‘t jump. Nature has no edges, no hard lines. - P-1

64p.
..There are things in this world that are real. That do not need our words to be real. - P-1

65p.
..One important rule about holotypes. If one is ever lost, you cannot simply swap a new specimen into the holy jar. No, that loss is honored, mourned, marked. The species line is forever tarnished, left without its maker. A new specimen will be chosen to serve as the physical representative of the species, but it is demoted to the lowly rank of "neotype." - P-1

90p.
...He says that the problem with spending one‘s time pondering the futility of it all is that you divert that precious electricity gifted to you by evolution—those sacred ions that could make you feel so many wonderful sensations and solve so many scientific puzzles—and you flush it all down the drain of existential inquiry, causing you to literally "die while the body is still alive." - P-1

146p.
..This was what Darwin was trying so hard to get his readers to see. There is no ladder. Natura non facit saltum, he cries in his scientist‘s tongue. There are no "jumps." The rungs we see are figments of our imagination, more about "convenience" than truth. To Darwin, a parasite was not an abomination but a marvel. A case of extraordinary adaptability. The sheer range of creatures in existence, great and small, feathered and glowing, goitered and smooth, was proof that there are endless ways of surviving and thriving in this world. - P-1

158~159p.
..I wanted to have some amazing retort. Some grandstandy way of telling him how wrong he was. That we matter, we matter. But as soon as I‘d feel my fist lifting, my brain would tug it back. Because of course, we don‘t. We don‘t matter. This is the cold truth of the universe . We are specks, flickering in and out of existence, with no significance to the cosmos. To ignore this truth is, oddly enough, to behave exactly like David Starr Jordan, whose ridiculous belief in his own superiority allowed him to perpetrate such unthinkable violence. No, to be clear-eyed and Good was to concede with every breath, with every step, our insignificance. To say otherwise was to sin, to lie, to march oneself off toward delusion, madness, or worse. - P-1

162p.
..To some people a dandelion might look like a weed, but to others that same plant can be so much more. To an herbalist, it‘s a medicine—a way of detoxifying the liver, clearing the skin, and strengthening the eyes. To a painter, it‘s a pigment; to a hippie, a crown; a child, a wish. To a butterfly, it‘s sustenance; to a bee, a mating bed; to an ant, one point in a vast olfactory atlas.
..And so it must be with humans, with u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stars or infinity or some eugenic dream of perfection, sure, one human life might not seem to matter. It might be a speck on a speck on a speck, soon gone. But that was just one of infinite perspectives. From the perspective of an apartment in Lynchburg, Virginia, that very same human could be so much more. A stand-in mother. A source of laughter. A way of surviving one‘s darkest years.
..This was what Darwin was trying so hard to get his readers to see: that there is never just one way of ranking nature‘s organisms. To get stuck on a single hierarchy is to miss the bigger picture, the messy truth of nature, the "whole machinery of life." The work of good science is to try to peer beyond the "convenient" lines we draw over nature. To peer beyond intuition, where something wilder lives. To know that in every organism at which you gaze, there is complexity you will never comprehend. - P-1

191p.
..The best way of ensuring that you don‘t miss them, these gifts, the trick that has helped me squint at the bleakness and see them more clearly, is to admit, with every breath, that you have no idea what you are looking at. To examine each object in the avalanche of Chaos with curiosity, with doubt....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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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p. «장엄한 매질»
...그러다 그 눈빛이 사라지며 다른 것이 차오른다. 옹달샘에서 낙엽을 치우면 물이 차오르듯이. 아버지의 눈에 혐오와 쾌락이 차오른다. 로즈는 그것을 보고 알아차린다. 분노가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뿐일까? 그녀는 아버지의 눈에 분노가 차오른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 혐오가 맞다. 쾌락이 맞다. 아버지의 얼굴이 풀어지고 변하고 점점 젊어진다.... - P-1

37p. «장엄한 매질»
..이때 이후로 로즈는 살인과 살인자에 대한 궁금증을 품었다. 끝장을 봐야 하는 이유는 결국 부분적으로는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서인 걸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다고, 가장 무시무시한 허튼짓도 정당화될 수 있고 그 행위에 어울리는 감정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한 사람의 관객에게—교훈을 깨닫더라도 깨달음을 표시할 수도 없을 상대에게—증명하기 위해서일까? - P-1

39p. «장엄한 매질»
...이런 상태에서는 사건과 가능성들이 멋진 단순성을 띠게 된다. 선택은 자비로울 만큼 명백하다. 어물쩍 얼버무리는 말은 전혀, 조건을 붙이는 말은 거의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결코‘라는 단어가 갑작스레 확고한 권리를 얻는다. 그들과 결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증오가 담기지 않은 눈길로는 결코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벌할 것이고 끝장내버릴 것이다. 이러한 결의와 온몸의 통증에 감싸인 채로 그녀는 자기 자신도, 책임도 초월하는 묘한 편안함 속에 둥실 떠 있다. - P-1

57p. «특권»
...시간이 흘러 로즈는 책이나 영화에서 백치의 성녀 같은 인물이 나오면 프래니를 떠올렸다. 책이나 영화를 만드는 남자들은 그런 인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듯하지만, 로즈가 보기에 그들은 인물을 너무 깔끔하게 그려놓았다. 숨소리와 침과 치아를 다 생략하는 건 사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은 위안을 주는 텅 빔과 상대를 가리지 않는 환대라는 개념에서 만족을 얻기에 급급해 역겨움이 주는 최음적 자극을 고려하지 않으려 했다. - P-1

95p. «자몽 반 개»
.."글쎄요." 로즈가 말했다. 그녀는 그것도 싫었다. 사람들이 뭔가를 암시했다가 바로 철회하는 짓. 그 음흉함. 사람들은 주로 죽음과 섹스에 대해 그런 짓을 했다. - P-1

102~103p. «자몽 반 개»
..그녀의 아버지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헛간은 잠겼고 그의 책들은 다시는 주인의 손길을 받지 못할 것이며 내일은 그가 마지막으로 신발을 신는 날이 될 터였다. 그들은 모두 이런 생각에 익숙했고, 어떤 면에서는 그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일어날 때보다 일어나지 않을 때 더 불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묻지 못했다. 그런 질문을 했다면 아버지는 주제넘은 짓, 극적인 과장, 방종한 짓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로즈는 아버지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웨스트민스터병원, 늙은 병사들을 위한 그 병원에 갈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남자들의 음울한 분위기, 침대 둘레에 쳐진 누렇게 바랜 커튼, 점점이 얼룩진 오물받이 등을 대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리고 그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그녀는 바로 그 순간보다 더 아버지와 가까이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뒤로 찾아온 뜻밖의 깨달음은 아버지가 그보다 더 멀리 있는 날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 P-1

131p. «거지 소녀»
..헨쇼 박사의 집이 해낸 일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고향집의 자연스러움, 당연시하며 받아들였던 배경을 파괴한 것이었다. 그곳에 돌아가는 것은 말 그대로 조악한 조명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 P-1

157p. «거지 소녀»
...바다에 면한 식사실의 벽 한 면은 전체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돌출한 내닫이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두꺼운 곡선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면 꼭 병 밑바닥을 통해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벽에 놓인 찬장 역시 가운데가 곡선형이고 광택이 났으며 보트처럼 커 보였다. 어디를 가나 크기가 눈에 띄었고 특히 인상적인 것은 두께였다. 수건과 러그, 나이프나 포크 손잡이의 두께, 그리고 침묵의 두께. 그곳에는 사치와 불안이 만연했다.... - P-1

159p. «거지 소녀»
...로즈는 패트릭의 어머니가 대화에 상상이나 추측이나 추상적인 말이 끼어들면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물론 로즈의 수다스러운 말투도 싫어했을 것이다. 눈앞에 실재하는 것—음식, 날씨, 초대장, 가구, 하인들—에 대한 사실 관계를 넘어선 관심은 어떤 것이든 부실하고 본데없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푸근한 날이네요"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런 날에는 예전에 이러저러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라고 하는 건 괜찮지 않았다. 그녀는 기억이 떠오른다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 P-1

237p. «장난질»
...으레 그러하듯, 인생은 작은 효과를 위해 엄청난 소동을 피우는 법이다. - P-1

251p. «섭리»
...로즈는 겁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어두운 칸막이 안에 갇힌 채로 거친 객차용 담요를 덮고 그런 무자비한 풍경을 지나 어디론가 실려간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제아무리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기차의 진행은 항상 안전하고 적절하게 느껴졌다. 반면 비행기는 언제라도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닫고 질겁하여 외마디 저항도 못하고 바로 떨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 P-1

261p. «섭리»
...그녀는 자랑스러웠다. 자식을 위해 소리지르고 욕하고 분탕질을 하는 빈민가의 맹렬한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빈민가의 엄마들은 너무 피곤하고 얼이 빠져서 좀처럼 맹렬하게 굴지 않는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힘을 내고 고자세로 압박할 수 있게 한 것, 집주인을 두렵게 한 것은 그녀의 중산층다운 확신, 정의에 대한 기대였다. - P-1

280p. «사이먼의 행운»
..그 무렵의 로즈는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그 여자처럼 꾸며낸 행동을 하는 것 같고, 방들을 내숭스럽게 꾸며놓았다고 느껴지며, 그들의 삶의 방식이 유난히 거슬릴 때(그 거울, 퀼트 이불, 침대 위에 걸린 일본 춘화, 거실에서 들려오는 아프리카 음악), 대개 그것은 그녀가, 로즈가, 그곳에서 바라는 관심을 받지 못한데다 계속 그럴까봐 걱정되고, 파티에 섞여들어가지 못했으며, 그렇게 이런저런 판단만 하면서 주변에서 맴돌 거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임을. - P-1

308p. «사이먼의 행운»
...그 일련의 과정이 시작되기 전의 풍성하도록 명료한 삼십 분 동안 그녀는 생각했다. 사랑은 세상을 지워버린다고, 사랑이 잘되어갈 때만이 아니라 망가지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놀라울 것도 없는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정말 놀라운 것은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아이스크림 접시처럼 두껍고 평범하게 제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그녀가 달아나며 벗어나려 하는 것은 실망, 상실, 파경만이 아니며 그와 정반대되는 것, 즉 사랑의 축복과 충격, 그 눈부신 변화이기도 한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이 안전하다 해도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둘 중 어떤 경우라도 결국엔 뭔가를, 자신만의 균형추이건 진실성의 작고 메마른 알맹이이건, 빼앗기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생각했다. - P-1

312p. «사이먼의 행운»
..사이먼의 죽음은 로즈에게 그런 어긋남으로 다가왔다. 터무니없었다, 부당했다, 그런 정보가 뭉텅 빠져버렸다는 것은. 로즈가 이 나이를 먹고도 오로지 자신만이 아무런 권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은. - P-1

332~333p. «스펠링»
..플로를 보니 로즈는 진통을 느끼기 시작한 산모가 생각났다. 그녀의 집중, 결연함, 급박함이 그러했다. 죽음이 자기 안에서 아기처럼 움직이다 곧 몸을 찢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음을 느끼는 거라고 로즈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언쟁을 포기했고, 옷을 입고 서둘러 짐을 싼 뒤 플로를 차에 태워 양로원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죽음이 곧이라도 찢고 나와 플로를 해방시킬 거라는 로즈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 P-1

364p.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그녀는 텔레비전 인터뷰 진행자로 일하던 시절, 자신감과 매력으로 환심을 사려 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다른 어디보다 이곳에서는 그것이 속임수라는 것을 다들 알 것이 틀림없었다. 연기는 또다른 문제였다. 그녀가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은 그녀가 수치스럽게 여길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덜렁거리는 맨가슴이 아니라, 자신이 파악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실패였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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