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열쇠»
...그리고 데들랜드의 청색은 일종의 시각적인 침묵이다. 아침에 보면 바위들조차 푸른 서리에 뒤덮여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미(美)일까 추(醜)일까? 나의 내면에서 해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이 거대한 침묵의 일부이다. 단지 그럴 뿐이다.... - P-1

«12월의 열쇠»
...이렇게 해서 생명은, 자신에게 충분히 봉사한 자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 P-1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그 대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을 주식회사로 만들고 그 주식의 40퍼센트를 팔아 치워도 좋다. 그 대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남은 수명 중 몇 년과 교환해도 좋다. 그러나 이런 내기에 응해 줄 초자연적인 상대는 아무래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대답을 몰랐기 때문이다.... - P-1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안 돼. 만약 그런다면, 당신은 나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느끼면서 일생을 보내야 해.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려고 할 걸. 당신이 그러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어. 왜냐하면 우리들은 닮은꼴이고, 나 자신이 바로 그렇게 됐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지금 그 해답을 찾아!」 - P-1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그래서 나는 원색의 리본처럼 내 마음을 비틀었고, 접은 다음,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요란한 크리스마스풍의 장식 매듭을 만들기로 했다.... - P-1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그리고 비밀은 바로 이 말에 있소.」 나는 시를 낭독할 때처럼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가 한 말은 옳았소! 모든 것은 바로 허영이었던 것이오! 중요한 것은 자만이었소! 예언자를, 신비가를, 신을 언제나 공격했던 것은 합리주의의 오만이었소.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고, 또 앞으로도 우리를 지탱해 줄 것은 바로 우리들의 불경스러움이었던 것이오. 신들도 우리 안에 있는 이것을 내심으로는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오. 신의 성스러운 이름들은 모두 입에도 올릴 수 없을 만치 불경스러운 것이란 말이오!」 - P-1

«이 죽음의 산에서»
..나는 내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인간은 왜 산에 오르는 것일까? 편평한 대지가 두렵기 때문에 높은 곳으로 이끌리는 것일까? 인간 사회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고, 그들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을 시도하는 것일까? 갈 길은 멀고 험하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화환을 씌워 줘야 한다. 설령 그가 추락한다고 해도, 일종의 영광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실족해서, 섬뜩한 파멸과 소진의 구렁텅이로 떨어진다는 것은 패자에게는 걸맞은 클라이맥스이다 ─ 이것 또한 산과 마음을 진감하게 하고, 그 밑에 존재하는 사념 따위를 휘저어 놓으며, 패배와 차가움 속의 승리를 상징하는 시든 화환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차가운 탓에, 그 마지막 행위는, 그 동작은, 어딘가에서 영원히 얼어붙은 채, 조상(彫像)처럼 미동도 않고 궁극적 의도와 목적을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는, 우주적인 악의의 개입에 의해서만 좌절되는 의도와 목적을. 모종의 필수적인 미덕을 결여하고 있으면서도 큰 뜻을 품은 성자나 영웅에게도, 언제나 순교자가 될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최후의 순간까지도 정말로 기억하는 것은 최후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산들에 올랐던 것처럼, 카슬라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고, 그 대가가 무엇이 될지도 알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나는 하나뿐인 가정을 잃었다. 그러나 카슬라는 그곳에 있었고, 내 등산화는 신어 달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했을 때, 그녀의 정상 어딘가에 발을 디뎠을 때, 내 밑에서 하나의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승리의 순간이 바로 앞으로 다가와 있다면, 하나의 세계 따위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진실과, 미(美)와, 선(善)이 하나라면, 왜 이들 삼자 사이에서는 언제나 이런 알력이 존재한단 말인가? - P-1

«폭풍의 이 순간»
..그때, 내 대답은 이랬다. 「인간이란 그가 그때까지 한 모든 일, 하고 싶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들,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들, 이 모든 것의 총합이다.」 - P-1

«폭풍의 이 순간»
..이 탓에 오후는 엉망이 되었다. 젖은 발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주차장으로 되돌아갔고, 차로 물을 헤치며 집을 향해 갔다. 원래 희망은 사막에서 낙타를 타는 것이었던 하천 보트의 선장이 된 심경이었다. - P-1

«폭풍의 이 순간»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 끊임없이 쉬운 데로 도망칠 궁리를 하는 소도 결국은 도살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그 여정은 다른 소들에 비해 조금 더 즐거워진다고나 할까. - P-1

«폭풍의 이 순간»
...시간의 복수는 기억이고, 당신이 아무리 오랫동안 눈과 귀를 가리고 있어도, 다시 깨어날 때 과거는 역시 당신과 함께하고 있다. 그런 다음 취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완전히 변해 버린 세계에 있는 당신 아내의 이름 없는 무덤을 방문하고, 예전에 고향이었던 장소에 이방인으로서 되돌아오는 일이다. 그러면 당신은 또다시 그곳에서 도망치고, 이윽고 조금은 잊을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의 실제 인생에서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렵 당신은 외톨이가 되어 완전한 고독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절망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알았던 것은 바로 이때의 일이었다. 나는 책을 읽었고, 일했고, 마셨고, 여자를 샀지만, 다음 날 아침이 오면 나는 언제나 나였고, 혼자였다. 다른 곳에 가면 심기일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나는 별에서 별로 도약을 거듭했지만, 변화를 겪을 때마다 나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 P-1

«폭풍의 이 순간»
...용기의 에센스란 결국 그런 것이다. 당신이 그때까지 했던 모든 일, 하고 싶어 했거나 싶어 하지 않았던 일들, 그리고 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하거나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의 총합에 의해 이미 결정된 무의식적인 순간이자, 순간적으로 척추 신경을 타고 오르는 불꽃인 것이다. 고통은 그 뒤에 찾아온다. - P-1

«성스러운 광기»
..이미 해버린 일을 원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하늘 아래에서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대신 고뇌하고, 기억하고, 회개하고, 저주하거나, 잊을 수는 있다. 단지 그뿐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는 불가피한 것이다. - P-1

«루시퍼»
..불빛은 별과는 달랐다. 별들을 모두 때려눕히고도 남을 정도로 강렬했다. 불빛은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던 도시의 화려하고 질서 정연한 별자리였다. 규칙적으로 늘어선 가로등, 광고판의 조명, 치즈 상자를 닮은 아파트의 창문들을 밝히는 등불, 바늘처럼 뾰족한 마천루의 측면을 솔리테어의 카드처럼 여기저기서 밝히고 있는 반짝이는 사각형의 불빛, 도시 상공에 드리워진 구름층을 뚫고 빛의 안테나를 회전시키고 있는 서치라이트의 불빛. - P-1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라인과 더불어 1950년대의 SF를 대표하는 3대 거장의 한 사람이었던 아이작 아시모프는 『소비에트 과학 소설Soviet Science Fiction』(1962)의 서문에서 현대 SF의 발전 단계를 모험 주류(1926~1938), 과학 기술 주류(1938~1950), 사회 과학 주류(1950~)의 3단계로 나누고 있다.... - P-1

...굳이 구약의 창세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름이 곧 파워[魔力]라는 사상은 모든 원시 사회에 공통된 믿음이며, 이 믿음을 가장 고전적인 형태로 형상화한 것은 마법사 게드를 주인공으로 한 르귄의 『어스시Earthsea』 4부작이다. 곧잘 J. R. R. 톨킨의 대하 판타지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3부작과 비견되곤 하는 〈어스시〉의 세계에서, 사람의 하나밖에 없는 이름은 곧 그 인물의 에센스이며, 삼라만상의 진정한 이름을 알아내는 일은 곧 세계를 이해하는 행위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호학(記號學) 지향이 강한 딜레이니는 장편 SF 『바벨-17』을 통해 비교 언어학의 새피어-워프 가설 ─ 인식의 많은 부분은 해당 언어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는 현대판 언령 신앙 ─ 을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의 모티프로 삼는다는 폭거(?)를 감행했고, 결국 『바벨-17』은 대니얼 키스의 『앨저논에게 바치는 꽃다발Flowers for Algernon』과 함께 1966년 네뷸러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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