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p. ..다만 나는 유감스러운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태연한 척했지만, 끝내 태연할 수 없었던 거짓말이, 유감스러워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럴 리가 없다. 분명, 이럴 리가 없다. 작가란 「한심함」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임을, 당신은, 더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46p. ..『사람은 평생, 동일한 수준의 작품밖에 쓰지 못한다.』 장 콕토Jean Cocteau가 했던 말로 기억한다. 오늘의 나 또한, 이 말을 구실로 삼는다. 한 편 더 보여 주시오, 딱 한 편만 더 보여 주시오, 떠들썩한 시장의 외침에 나는 대답한다. 『똑같소. —멍석을 깔아 주시오. —마음에 들 것이오. —그리워지면 찾아오시오. 나는 봉투 안에서 견본 일곱 편을 꺼내, 다시 한 번 보여주면 그만이오. 나는 그 일곱 편에 들이부은 내 피와 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소. 보면 알 것이오. 이미 벌써 나에게는 선택받을 자격이 있소.』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지?
48p. ..그렇지만, 어느 날 문득,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봤더니, 웬걸, 이 문장은 참으로 평범한 사실을 서술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 후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문학에 있어서 「난해함」은 있을 수 없다. 「난해함」은 「자연」 안에만 있는 것이다. 문학이란, 그 난해한 자연을, 각각 자기 스타일의 각도에서 데꺽 자르(는 척 하)고, 그 절단면의 깨끗함을 뽐내는 행위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79~80p. ..배니티vanity. 그 강인함을 얕봐서는 안 된다. 허영은, 어디에나 있다. 절 안에도 있다. 감옥 안에도 있다. 무덤에도 있다. 그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해서는, 안 된다. 똑바로 뒤돌아서서, 자신의 배니티를 마주하고 이야기해 보는 게 좋다. 나는, 타인의 허영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자신의 배니티를 거울에 비추어 잘 살펴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살펴본, 결과는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말할 필요 없다. 그러나, 한 번은, 똑똑히, 거울 앞에 서서 확인해 둘 필요는, 있다. 한번 본 사람은, 그 사람은,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겸손해질 것이다. 신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168~169p. ..사정이 그러하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할 말이, 하나도 없다. 딱 하나, 좁쌀만 한 프라이드가 있다고, 조금 전에 썼는데, 그것도 지금은 지워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쓸데없는 고생은, 자랑이 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지푸라기 한 가닥에 매달리는 기분으로, 여태껏 어리석은 고생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해야만 한다. 만약 할 말이 있다면, 단 하나, 그것뿐이다. 나는 이런 쓸데없는 고생을 하고도, 그러고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으므로, 적어도 여러분만이라도, 자중하여 이런 바보짓은 하지 말라는 지극히 소극적이고 무력한 충고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등대가 도도하게 밝은 빛을 내뿜는 것은, 등대가 자기를 뽐내기 위함이 아니라, 여기는 위험한 곳이니 다가오면 안 된다는 충고의 의미인 것이다.
199~200p.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해도 되는 말과 하면 안 되는 말의 구별을, 필자는, 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덕적 능력」이라고나 할까, 그걸 아직까지 터득하지 못한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있다. 진정, 말하고 싶다. 그때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자네, 결국에는 자네의 자기변호가 아닌가.』
200~201p. ...친구 사이에서는, 내 이름은, 「곰손」으로 통한다. 쓰다듬어 위로해 준답시고, 할퀸다....
217~218p. ..그러나 나는, 여기를 떠나, 다른 고장으로 갈 생각은 없다. 어딜 가든, 마찬가지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틀려먹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플로베르의 한탄인데, 『나는 언제나 눈앞에 있는 것을 거부하고 싶어진다. 어린아이를 보면, 그 아이가 노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고, 요람을 보면 묘비를 생각한다. 여자의 알몸을 보는 동안, 그 해골을 공상한다. 즐거운 것을 보면 슬퍼지고, 슬픈 것을 보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나 마음속으로 울어서, 밖으로 눈물을 흘릴 수가 없다』는 둥 말하면, 좀 야단스럽고, 중학생의 센티멘털한 악취미를 드러내는 셈이 되어 버리지만, 내가 여행을 하면서 풍경에도 인정에도, 별로 감동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은, 그 고장의 사람들의 삶을, 곧바로, 알아채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들, 분위기 깰 정도로, 아등바등 산다. 시냇가 외딴 찻집에도, 조상 몇 대에 걸친 암투가 있을 것이다. 찻집 걸상 하나 새로 만드는 데에도, 한 집안의 남다른 각오가 있었을 것이다. 하루 매상이, 어떻게 집안사람들에게 분배되고, 일희일비가 되풀이될 것인가. 풍경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그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산에 나무 한 그루, 시냇가 돌멩이 하나가 전부 생활과 직접 이어져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풍경은 없다. 일용할 양식이 보일 뿐이다.
248p. ...의심하다 실패하는 것만큼 추한 삶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믿습니다. 한 치 벌레한테도, 다섯 푼 진심이 있습니다. 억지로 웃어서는, 안 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믿는 자만이, 근심이 없습니다. 저는 문학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믿어서 성공할 겁니다. 부디 안심하시길.
262p. ..『요즘 나는, 사람을 너무 막다른 곳에 몰아세우지 않으려고 하네. 도망칠 구멍을 하나, 만들어 주지 않으면—』하고, 앞서 말한 그 눈을 껌벅거리면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요즘, 이부세 씨는, 남의 아픈 곳을 그다지 건드리지 않으려 하시는 것 같다. 그 사람에 대해 너무 잘 알게 되어서, 오히려, 건드리지 않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이부세 씨를 보고, 이부세 씨를 물러 터졌구만, 하고 얕봤다간,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280p. ..거참, 모두들, 아름다운 말을 너무 많이 쓰십니다. 미사여구를 남용하는 감이 있습니다. 모리 오가이가 멋진 말을 했습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효모를 홀짝거리지는 말 것.』 ..고로, 나는 좋아하는 말이 없다.
329p. ..나의 현재 입장에서 말하자면, 나는, 좋은 친구를 원해 마지않지만, 아무도 나와 어울려 주지 않기에, 자연히 「고저」할 수밖에 없다. 라고 하는 건, 그건 거짓말이고, 나는 내 나름대로 「패거리」의 괴로움이 예감되어, 차라리 「고저」를 택하는 편이, 물론 그것도 결코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차라리 「고저」한 쪽에서 사는 편이, 마음 편하다고 생각되어, 애써 사교활동을 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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